Bad $rs in GetInsertSQL. Connection or SQL invalid. Try using $connection->debug=true;

somsil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somsil11
   2018년 9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전체보기
월별로 보는 포스트
자주 가는 링크
메모박스
새로운 포스트 새로운 덧글 새로운 트랙백
사이드바
본문 제목 2018년 9월
대환난은 언제 이루어지고 대환난의 장소는 어떤 곳인가

답 :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잘 알아야 한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 바로 알려면 계시록에 대한 바른 지식이 필요하다.

1. 계시록의 구조

① 계시록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계시다. (계1:15)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 리라 아멘>

② 계시록은 세상 교회를 상징하는 7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이어 7인을 떼는 계시, 7나팔을 부는 계시 7대접을 쏟는 계시가 중심이 되어 있다. 이 세 계시를 계시록의 삼대 계시라 말한다.

③ 7인의 계시와 7나팔 계시, 7대접 계시 사이에 중간 계시가 나온다. 이 중간 계시에는 대환난 때에 일어날 하늘의 사건과 땅의 사건들, 주님 재림시의 양상들이 기록된다. 계시록의 이 3대 계 시의 구조가 특이하다. 7인의 계시 중 마지막 제 7인의 계시에 7나팔 계시가 들어가 있고, 나 팔 계시 중 마지막 나팔 곧 제7나팔 계시에 7대접 계시가 들어가 있다. 이 말을 다시 설명하면 제7인에 7나팔 계시와 7대접계시가 다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계시의 연결은 제7인이 떼어지는 때가 제 1나팔 불리어지는 때요, 제 7나팔 불리어지는 때가 동시에 제 1대접이 쏟아 지는 때이다.

④ 계시록에서 인의 계시는 주님 재림하실 때, 곧 마지막 때의 비밀을 상징하고, 7인은 완전한 비밀을 상징한다. 여기서 제7인은 마지막 비밀이다. 이 마지막 비밀 속에 7나팔 계시가 들어 있 다. 나팔 계시는, 경고(여러 사건으로 주님의 재림을 알려주는)로 마지막 나팔, 제7나팔은 마지막 경고다. 그리고 이 마지막 경고 속에 7대접 계시가 들어감으로 제7나팔이 불리어지기 시작하며 동시에 7대접 계시가 시작된다.

⑤ 계시록에서 대접은 하나님의 진노를 뜻한다.

(계16:1-)--<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7인의 계시, 제1인---제7인=7나팔계시,제1나팔---제7나팔=제1나팔---제7나팔=7대접계시,제1대접---제7대접.

제7인 속에 나팔계시가 다 들어 있고, 제7나팔(마지막 나팔) 속에 7대접 계시가 들어 있다. 그러니까 제 7인 속에 모든 계시가 다 들어 있는것이다.현재는 제 7인중 마지막 나팔 계시가 시작되기 전이다. 마지막 나팔 계시가 시작되면 주님 공중 재림하시고 하늘에는 천국 ,이 땅에는 대접 쏟아지는 대환난이 시작된다.하늘의 왕국(천국)과 대환난은 동시에 시작되고 동시에 끝난다.

2. 계시록의 삼대 계시

가. 제1인, 제7나팔

① 계시록에서 제1인이 떼어지는 때가 이 땅에 주님의 교회가 탄생하는 오순절이다.

(계6:1-2)--<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제1인이 떼어질 때 흰말을 탄자가 활을 쏘며 이기려고 한다. 이 말씀에 대한 몇 가지 해석이 있지만 마튜 헨리의 주석대로 제1인은 복음이 승리하기 시작하는 오순절 사건을 가리킨다.

② 주님 재림의 때는 제 7나팔, 마지막 나팔을 불 때다. 이 때 주님은 재림하시게 되고 살아 있던 성도는 변화되고 죽은 성도는 부활하게 된다.

(고전15:51-52)--<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린도 전서는 계시록 보다 수 십 년 먼저 기록되었다. 계시록에 나팔 계시가 기록되기 전 고린도 전서에 기록된 이 <마지막 나팔(고전15:51)>이란 말은 해석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후에 계시록이 기록됨으로 이 해석은 너무 분명해졌다. 마지막 나팔 불 때가 주님 재림하실 때요 성도가 부활할 때다. 성도는 이 때 부활하여 그 중 얼마가, 그 당시에 땅에 살아 있다가 벼화를 입은 성도와 함께 공중으로 끌어올려(휴거-휴거라는 말은 성경에 없다. 부활한 성도가 공중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휴거라 말한다)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되지만 구원 얻은 성도 중 얼마가 이 잔치에 못 들어가고 천국잔치와 동시에 함께 시작되는 대환난에 들어간다.

(살전 4: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빌 3: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나. 천국잔치, 대환난의 시작

창세기 23장

창세기 23 장에는 사라의 죽음과 에브론의 막벨라굴의 구입의 사건이 기록된다.

(1) 아브라함은 그의 이웃인 헷 족속에게 매장지를 요청을 했다(3,4절).

(2) 헷 족속은 아브라함을 우리 중 하나님의 방백이라고 말하며 헷 족속의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자기 밭을 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밭에 대해 충분한 값을 지불하겠다고 말한다.

에브론이 땅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겠는 가고 다시 거절하지만 아브라함은 모든 이웃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은 사백 세겔을 에브론에게 주고 에브론의 막벨라 굴과 주위의 모든 산림을 매입하여 이 곳에 사라를 매장한다. 이 에브론의 막벨라 굴이 있는 땅이 헤브론으로 후에 헤브론에서 다윗이 왕이 된다.

(3)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소유한 최초의 땅은 이 에브론에 있는 사라의 매장지였다. 앞으로 이 나라 땅 전체가 아브라함과 자손에게 주어질 땅이었지만 지금 아브라함이 얻은 땅은 이 매장지뿐이었다. 이 장지는 거처가 일정하지 않은 유목민인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마음의 고향이 된다. 이 에브론은 사라, 아브라함은 물론 이삭과 야곱의 장지가 된다. 믿음의 사람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본향을 사모하고 산다.

[히 11:16] (16)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구원받은 성도는 다 순례자들이다. 성도의 순례 길에 교회가 마음의 고향이다. 성도는 교회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1. 루터의 성만찬

루터의 성만찬에 대한 입장은 초기에는 화체설에 가까운 이해를 가지고 있다가 후에 쯔빙글리와의 논쟁을 거쳐 공재설(Consubstantiation)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루터가 이야기하는 성만찬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성도의 교제이다.

사죄의 은사를 말한다. 루터는 성만찬 때에 그리스도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만찬을 통해 이미 획득된 용서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며 따라서 성만찬 안에는 죄의 용서가 있다고 말한다.

셋째, 성만찬이 죄악 속에서 괴로워하며 비탄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힘과 위로를 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루터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신앙을 돕고 촉진시키는 표적이며 성만찬의 효과는 자체의 작용에 의해서가 아닌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2. 쯔빙글리의 성만찬

쯔빙글리는 무엇보다도 말씀에 강조를 두었고, 성만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으로 그래서 그는 루터가 쓰던 성만찬의 모든 예식을 간소화했다. 이러한 쯔빙글리의 신학은 지금의 성만찬 경시풍조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3. 칼빈의 성만찬

칼빈이 1542년 제네바에서 발간한 칼빈의 예배의식

말씀의 예전 (The Liturgy of the Word)--예배의 말씀 / 죄의 고백 / 용서를 구하는 기도 / 운율시편 / 성령임재를 구하는 기도 / 성경봉독 / 설교 다락방 예전 ( The Liturgy of the Upper Room)--구제헌금 / 중보기도 / 성물준비 / 사도신경 / 봉헌기도 / 성만찬 말씀 / 권면 / 성체분할 / 분병분잔 / 성만찬 참여 / 성찬 후 기도 / 시므온의 찬미 / 아론의 축도.

이 제네바 예배의식은 칼빈이 예배의 핵심적 요소를 말씀과 성만찬으로 보고 가능하면 초대교회의 예배내용을 살리려고 노력하였던 것을 보여준다. 성만찬은 먼저 집례 자가 받고 그 다음 다른 교역자들과 회중의 순으로 받도록 하였으며 성만찬에 참여할 때는 성찬대(Holy Table)앞으로 나와서 무릎을 꿇거나 또는 선자세로 받도록 하였다. 이러한 칼빈의 예배의식은 후에 대륙지역에서는 프랑스, 스위스, 남부독일, 네덜란드, 덴마크등지의 칼빈 계열교회들의 예배모범이 되어졌다.

4. 웨슬리의 성례관과 성찬

A. 성례관

웨슬레는 성찬을 예배의 두 큰 요소로 보았다.

<그리스도의 가시적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이 교회에서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며,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바에 따라 성례전이 정당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 웨슬레가 1784년 미국 감리교회를 위하여 제정한 25개 신조 안에 있는 교회의 정의)

웨슬레는 성례전은 <내적인 은혜의 외적 표상이요, 그것을 받는 수단이다>고 말한다.

B. 성찬

성찬은 <성령의 모든 은총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혼에 전달되는 큰 통로>라고 하였다. 성도는 성찬에 자주 참여해야 하며 그 이유는 첫째, 이는 그리스도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둘째, 신자들에게 많은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육체가 떡과 포도주로 강하게 되듯이, 영혼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뜻하는 성찬에 의해서 강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찬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다. 웨슬레에게 성찬은 현재의 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대속을 상징하는 표적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적용하여 확증케 하는 인증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찬에서 <주님의 성육신과 고난이 주는 모든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동시에 성찬은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우리에게 확신시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가질 천국 잔치에 대한 보증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성찬을 통해 주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서약이 된다고 보았다.

5) 성만찬 예배 회복의 필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