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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sil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somsi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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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2018년 9월
적 그리스도의 출현과 대환난

① 하늘에 천국잔치가 시작되고 진행 될 때 이 땅은 하늘에서 쫓겨난 사탄이 지배하게 되고 대환난에 떨어진 성도와 구원받지 못한 당시의 사람들은 전무한 고난을 받게 된다.

(계12:9-10)--<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났고>

(계12:12-13)--<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 갔음이라 하더라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단9:27)--<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계13:1-18)--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

주님 공중 재림하실 때 이 땅에 대환난이 시작되고, 사탄, 용, 마귀, 적그리스도가 출현하여 하나님을 대적한다.

창세기 25장-27장 5절<

창세기 25장부터 이삭과 리브가를 통해 에서와 야곱이 출생하게 되고 여기서부터 야곱의 이야기가 중심적인 줄거리로 이어진다. 이삭은 헌제 사건으로 십자가에서 대속의 제물로 바쳐질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었고 이삭을 이어 계속되는 야곱과 그 12자녀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르쳐주는 중요한 내용이 된다. 창세기 25장부터 창세기 27장 5절까지에 야곱이 가나안 땅에서 부모 밑에서 살았던 야곱의 전반생이 기록된다.

1. 에서와 야곱의 출생

(1) 에서와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이미 야곱은 선택받은 축복의 아들이 되고 에서는 축복에서 제외된다.(창25:21-26) 이 사건은 구원사에서 하나님의 예정의 섭리, 곧 선택의 섭리를 처음 보여주는 예표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롬9:6-13)

(2) 선택은 인류 중의 얼마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기 위한 영원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의도이다. 선택의 섭리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① 선택의 작정은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 그의 신적 기쁘심의 표현이다. 선택의 작정은 사람 안에 있는 어떤 예견된 신앙이나 그 행위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다. (롬 9:11, 딤후 1:9)

② 선택의 작정은 불변적이며, 따라서 선택은 구원을 확실하게 한다. 선택된 자들의 구원은 그들의 불확실한 순종에 의거되지 않으며, 선택된 자들은 그리스도의 객관적 사역과 성령의 주관적 사역에 의해 마침내 구원된다. (롬 8:29-10, 11:29, 딤후 2:19, 요 10:28) ③ 선택의 작정은 영원부터이다. (롬 8:29-10, 엡 1:4-5)

④ 선택의 작정은 무조건적이다.

선택은 Arminians가 가르치는 것같이 선택된 자들의 예견된 신앙이나 선행에 의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된 것이다. (롬 9:11, 행13:48, 딤후 1:9, 벧전 1:2) 모든 사람들은 죄인들이며,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했음으로 구원받을만한 기초가 사람에게는 없다. 믿는 자들의 신앙과 선행도 은혜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엡 2:8, 10, 딤후 2:21) 선택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주권적 행위시다.

⑤ 선택의 작정은 불가항력적이다. 선택된 자는 하나님의 선택을 뿌리칠 수 없다. 선택된 자는 하나님이 그 영혼에 감화를 주어 그로 하여금 이를 의지하게 하며 이 모든 것은 불가항력적이다.(시 110:3, 빌 2:13)

⑥ 선택의 작정은 불공평하다고 비난할 수 없다. 사람은 모두가 죄인이요,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이 그중에서 누구를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행사시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이 불공평하시지는 않다. (마 20:14-15, 롬 9:14-15)

2. 이런 하나님의 선택의 섭리는 야곱과 예서의 일생을 통해 잘 예표가 된다.

① 에서는 이삭의 장자로 태어나서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을 통해 내려오는 이 땅에서의 번성과 모든 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위치에 있었지만 에서는 이 축복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팥죽 한 그릇으로 야곱에게 장자 권을 판다.(창25:29-34) 반대로 야곱은 이런 하나님의 축복을 귀하게 여겨 배고픈 형 에서에게 팥죽으로 장자 권을 사고, 후에 어머니 리브가와 함께 눈 어두운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이삭의 축복의 기도를 대신 받는다. 그리하여 결국은 아브라함에게 내려주신 하나님의 축복은 이삭을 통해 야곱에게 계승된다.

②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하려고 하였지만 야곱에게 속아서 야곱에게 복을 빌어주었고 이 축복대로 에서는 복에서 제외되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야곱을 통해 유다에게로, 그리고 유다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예정대로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예정의 섭리, 구원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인간들의 잘못, 곧 야곱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축복을 받는 사건, 그리고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는 사건, 그래서 야곱이 하란 땅으로 도망가는 사건들이 개입한다. 그러나 인간들이 어떤 일을 해도 하나님의 예정과 섭리는 바꿔지지 않고 하나님의 예정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이 사건이 보여준다.

③ 이 사건을 인간 쪽으로 보면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등한히 여겨 이 축복을 잃어버렸고, 야곱은 이 하나님의 축복을 귀하게 여기고 사모하여 결국 이 축복을 쟁취하게 된다. 성도는 늘 하나님의 축복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신학적 측면

성만찬에 담겨있는 중요한 신학적 용어는 감사, 기념, 성령의 임재, 교제, 종말론적 식사, 이다

첫째, 성만찬은 인류의 구속을 이루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의 예배이다. 성만찬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을 회고하여, 사죄에 대한 확신을 가지며,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둘째, 성만찬은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과 십자가의 정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예식이다.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명령하셨다. 성만찬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의 몸에 동참하는 기념행위인 것이다.

셋째, 성만찬은 성령의 임재를 비는 제사이다. 우리는 성만찬 예배를 통해서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다. 하나님의 부재, 하나님의 침묵, 하나님이 없는 것 같은 현실 속에서 성만찬을 통하여 하나님의 임재, 임마누엘을 체험한다.

넷째, 성만찬은 수직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수평적으로 이웃과 연대하며, 모든 피조물을 관리하고 돌보는 교제의 시간이다. 우리는 성만찬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인 성도와의 친교에 참여한다. 식음의 행위는 친교의 행위이다. 신의(神意)가 깃든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마심으로써 신앙공동체는 하나가 될 수 있다.

다섯째, 성만찬은 하나님의 나라의 축복과 은총을 미리 맛보고 누리는 종말론적 식사이다. 성만찬은 하나님의 나라의 잔치이다.

이와 같이 성만찬은 기독교 예배를 감사제, 기념제, 기원제, 화목제, 종말론적인 축제로 만든다. 성만찬이 없이는 이와 같은 의미를 예배에 담기가 어렵다. 피상적이고 말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성만찬은 반듯이 예배에 꼭 있어야 한다.

6) 현 한국교회가 당면한 문제

1. 현재 많은 교회들이 일 년에 두 번 정도 성찬예식을 거행한다.

2. 교회가 대형화되고 예배가 1부 2부 3부--하는 식으로 늘어나게 되어 사실상 매주일 예배에 성만찬을 행하기가 힘들어졌다.

그러나 이미 여러 번 언급한대로 성찬 없는 예배는 예배의 의미를 반으로 줄인다.

주의 만찬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행하는 구원의 은총을 계시해 주시는 사랑의 성례전이며,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그 구원의 은총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케 하는 감사의 성례전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성만찬은 사랑과 감사의 성례전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성만찬의 의미를 두 가지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성만찬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차원>이요, 다른 하나는 성만찬을 받은 <신도들의 차원>이다.

① 하나님 차원에서

<성만찬은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내 주는 성례전이다.> 그 본성이란 선행하는 구원이 은총으로 인간에게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본성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공급하시려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여기에 타락한 인간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이 온다. 성만찬은 죄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갈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선포요 사랑의 확증이다.

➁ 성도의 차원에서

성만찬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친교의 식사요. 장차 있을 하나님 나라의 식사임을 예표 해 주는 것이다. 성만찬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몸 된 우리들과 영적으로 만나기 위하여 베풀어주신 친교의 식사이다. 이 친교의 식사에 참여하는 신도들은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었음을 알게 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됨을 경험하게 된다.

(교회론, 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