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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sil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somsi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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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4장 35장

창세기 34장에는 야곱이 에서와 헤어진 후 세겜 땅에 머므는 동안 그의 딸 디나가 세겜의 왕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고 이 사건으로 야곱의 아들들이 그의 누이 디나를 세겜에게 주는 조건으로 세겜 성의 모든 남자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고, 세겜의 남자들이 할례를 받아 고통 중에 있을 때,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성에 들어가 하몰과 세겜과 세겜 성의 모든 남자들을 다 죽이고 저들의 아내와 재물을 다 빼앗아 오는 큰 사건이 발생한다. 이 일로 세겜 주변의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들이 연합하여 야곱의 집을 위협하는 위험이 닥친다. 이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도록 명하셔서 야곱은 가족들과 종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우상들을 거두어 땅에 묻고 모두 의복을 바꾸어 입고 자신들을 정결케 하고 벧엘로 올라가 벧엘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경배한다.

야곱은 이 벧엘을 엘벧엘, 곧 벧엘의 하나님이라 부른다. 이 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렇게 축복하신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창35:9-12)

① 창세기 34,35장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교훈은 하나님은 야곱과 늘 동행하셨고 환난 날에 야곱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으로(35:3) 성도가 가는 길에 하나님이 늘 동행해주신다는 것이다.

② 야곱이 형 에서의 노여움에서 구원 받은 다음 바로 벧엘로 올라가야 했다. 그런데 야곱은 세겜에 가축의 우리를 짓고 머물러 산다. 그리고 이 세겜에서 딸 디나가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생긴다. 구원받은 성도가 성화의 과정에서 하나님께 드린 서약을 저버려서는 안 되고 또 성도가 머물러서 되는 곳이 있고 머물지 말아야 할 곳이 있는데 머물지 말아야 할 곳에 머물게 되면 성화의 삶이 망가지게 된다.

롯은 소돔 땅에 머물렀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가 심판 받을 때 패가망신하였다. 성도는 직장과 사업과 주거지를 다 하나님 중심으로 결정해야 한다.

③ 야곱이 세겜, 곧 받단아람에서 벧엘로 올라왔을 때 하나님은 야곱을 야곱이라 부르시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르신다. 그리고 벧엘에서 이스라엘이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했을 때 아브라함과 이삭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 다시 내려진다.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창35:10-12)

구원받은 성도는 이스라엘이다.(롬9:8, 엡2:12-20) 항상 벧엘 중심, 제단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④ 창세기 35장에 이스라엘의 12 아들 곧 이스라엘 12 지파의 조상의 이름이 나온다. 이스라엘 12 조상 가운데는 이방 여인 빌하와 실바의 아들도 포함된다.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이방인에게도 미칠 것을 예표 하는 것이다.

24. 창세기 제36장

이해할 수 없지만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

기독교는 하나님을 완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알려질 수 있으며, 구원에 필요한 지식 가운데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포함한다고 가르친다.

1. 소발과 이사야는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욥 11:7, 사 40:18, 사 55:8-9)

2. 그러나 예수님은 <영생이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 스도를 아는 것이라.>(요 17:3) 말씀하신다. 또 요일 5:20은 <또 아는 것은 하나님 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 이시오, 영생이시라.> 말하고 있다.

3. 이상의 두 개념은 교회에 늘 공존해 왔다.

4. 스콜라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실유(실제적 존재)와 성질을 구별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본체적 실유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속성을 계시하실 때 하나님의 성질 얼마를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보았다.

5. Luther는 계시된 하나님과 숨겨진 하나님을 말하였고

6. Calvin은 하나님의 본체에 대한 지식은 불가능하나 그의 성질에 대한 지식은 알 수 있다고 보았다.

7. 스콜라 학자들과 종교 개혁자들의 차이점은, 종교 개혁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성질 의 인식에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강조한 점이다.

8. Schleiermacher와 그 추종자들은 하나님의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는 부정되며, 사람은 사람 자아 자신의 본연에서, 물질적 우주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한다고 본다.

참고: 1) 슈라에르마허(Schleiermacher)

르네상스로부터 시작된 현대 사상은 18세기 유럽 지성계를 지배했다. 이것은 세속적이며 과학적이며 낙관적인 세계관을 형성했으며 과학적 경험주의와 역사적 상대주의가 그 특징이었다. 이 현대적 세계관은 기독교 신앙에 중대한 도전으로 대두되었다. 이는 성서의 역사적 확실성과 가치를 비롯한 전통적인 신학의 모든 전제들을 문제시하고 집중적으로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교회나 신학은 이런 도전에 의해 무력해지고 고립되어 그 토대마저 흔들릴 정도였다. 이런 위기에 직면한 19세기 초의 신학적인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활력을 회복하고 활기 인고 창조적인 미래를 위한 신학의 토대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즉 현대 세계에서 존립할 수 있는 신학이 어떻게 가능하며, 어디에서 그 토대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슐라이에르마허였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인간의 정신에는 세 가지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는 것(knowing), 행동하는 것(doing), 느끼는 것(feeling)이 그것이다. 감정은 지식이나 행위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이며 독특한 정신 기능인 동시에 보다 심원한 존재의 단계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감정을 종교가 발견되는 장소로 보았다. 그가 <종교론>에서 종교를 <무한자에 대한 감각과 맛> 또는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으로 정의한 것이나 <신앙론>에서 종교를 느끼는 것 또는 직접적인 자기의식의 수식으로 종교의 본질을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 감정>으로 정의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이러한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관은 종교연구의 새로운 길과 방향을 제시했다. 종교를 연구하는 것은 종교인의 신앙과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 자신, 즉 그의 종교적인 감정의 기원과 발전을 연구하는 것이 되었다. 이것은 종교연구에 있어서 코페프니쿠스적인 변화였다.

한편 슐라이에르마허는 신조나 교의 또는 성경 본문이 아닌 인간의 종교적 경험 혹은 기독교인의 자기의식을 신학의 토대로 간주했다. 그는 교리적인 신조 배후에 있는 살아 있는 경험으로 돌아감으로써 신학의 새로운 토대를 확립하려 했다. 신학의 과제는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발견되는 종교적인 감정을 기술하는 것>이다. 신학은 사변학이 아니라 기술학이기 때문이다. 또한 슐라이에르마허는 신학을 과거의 도식의 단순한 반복으로 간주하지 않고 현대 세계와의 살아 있는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교의 신학은 주어진 시대의 기독교회에서 널리 유행하는 교리를 체계화하는 학문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현대의 상황에서 신학의 발전을 문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관을 수용하고 그 관점으로부터 기독교 진리를 재 진술한 최초의 신학자였다. 그는 인간의 경험을 신학의 주된 자료로 받아들임으로써 신학에 새로운 활기와 관심을 불어넣었다. 또한 인간 감정에 나타난 자기의식과 하나님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라고 주장함으로써 사변적인 철학으로부터 신앙과 신학의 독립을 확립했다.

[출처] (펌) 현대신학의 아버지--슈라이 에르마허-작성자 하늘사랑

구원 받은 성도들 중 일부가 대환난에 들어가는 것을 가르쳐주는 성경이 있나

답 :

1) 한 달란트 받은 자, 예복을 벗은자, 기름을 준비 못한 신부, 나무나 풀이나 짚 같이 신앙의 집을 지은 자, 곧 구원은 받았어도 신앙생활, 교회생활, 회개를 계속 못한 성도는 주님 재림 시 공중혼인잔치에 못 들어가고 대환난에 들어간다.

2) 구원 받은 성도들 중 일부가 대환난에 들어가는 것을 가르치는 성경들

① (마5: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바리새인과 서기관 보다 나은 의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보다 더 의롭게 사는 것이 아니고 회개하는 의다. 회개하지 아니하는 의는 교만이다)

② (마 7:21-23,)--<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③ (롬2:5-8)--<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④ (계2:21-22)--<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⑤ (계11:1-2)--<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

⑥ 참조 (단9:26-27)

( 여기서 지팡이 같은 갈대로 성전을 측량하는 것은 주님의 자로 성도들의 공력을 심판하는 것을 뜻한다. 성전 밖 마당은 외소로 구원 받고도 아직 성소의 생활, 향로 곧 기도, 등대 곧 회개, 떡상 곧 말씀의 생활을 못하고 외소, 곧 희생 제물이 죽어 제사 지내는 곳, 곧 십자가 보혈 공로만 의지한 성도들은 공력 심판에서 제외되어 사탄이 지배하는 마흔 두 달의 대환난에 들어간다)

3) 계7:14(대환난에서 나오는 성도가 있다);

4) 마24:15-22(주님이 택한 자들을 위해 대환난의 날을 감하신다)

5) 구원 받은 성도 중 천국의 상급을 못 받고 대환난을 통해 부끄럽게 구원 될 성도는 성도 의 약 1/3이다.

⑦(계12:1-4)--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

⑧ (계12:12)--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 갔음이라 하더라>

⒜ 대환난의 기간에 땅에 내려온 마귀가 하늘의 별 1/3을 땅에 떨어뜨린다.

⒝ 계시록에서 별은 성도다(계1:16에 주님이 그 손에 7별을 잡고 있는데 이 7별은 7교회로 성도들이다) 그런데 마귀가 이 별들 중, 곧 성도들 중, 1/3을 땅에(대환난에) 끌어 던진다 . 구원 받은 성도 중 약 1/3이 성화에 실패하고 세상에 돌아가 천국의 상급 못 받고 대환난에 들어간다.

⑨ (롬5:9-10--(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 피를 인하여 구원 받은 것은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구원을 받은 사람도 다시 주님의 진노(진노의 7대접 쏟아지는 대환난)에서 구원을 얻어야 한다.

⑩ (골1:17-23)--<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이 말씀에서 주님 앞에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세움 받으려면 십자가로 화평케 된 구원만 가지면 되는 것 아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여기서 믿음에 거하고, 믿음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믿음으로 구원 받았어도 흔들려 세상으로 가면, 영생과 영원한 구원은 없어지지 않지만 천국잔치에 들어갈 흠 없는 자격을 잃어버린다.

이상 여러 성경 말씀이 구원 얻었어도 성화(회개) 없는 성도는 대환난에 들어간다고 말씀한다.

질문 8) 구원 받은 성도들 중 일부가 대환난에 들어간다는 주장에 반대는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