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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정 박사의 정신건강 칼럼 http://blog.kcmusa.org/park29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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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지방에 기운이 무척 세고 덩치가 큰 젊은이가 살았다. 그는 좋은 규수와 결혼하여서 두 아들을 갖게 되었는데 , 첫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서 장대한 체구에 용감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 지역에서 세력을 기르던 영주가 자신을 부르자, 그는 이를 거절하였다. 왜냐하면 전국을 힘으로 제압하여 왕이 되려는 야심을 눈치 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아들이 그의 휘하에 들어가서 충성을 맹세하려는 것은 막지 못하였다.

그의 아내가 사망하자 젊은이는 두 번째 부인을 맞아들였고 다시 두 아들이 태어났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의 첫아들은 많은 공을 세워서 사방에 명성이 높아졌고 재산도 늘었다. 영주의 총애를 받는 그를 무척이나 미워하며 시기를 한 것은 배다른 그의 이복동생들이었다.

영토 확장과 세력을 늘리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던 영주에게, 두 이복동생들은 그들의 맏형이 영주를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되려 한다는 거짓을 고하였다. 분격한 어리석은 영주의 명에 의해 살해된 첫아들의 슬픈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가족과 노비들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 항해를 시작하였다.

아무도 살지 않는 새로운 땅을 찾아가는 그들을 뒤쫓아, 영주가 보낸 배가 가까이 다가왔다. 분노에 불이 붙은 그는 이미 노구의 몸인데에도 불구하고 마치 커다란 야수처럼 변하고 힘이 세어져서, 상대방의 배로 뛰어 올라갔다.

그리고 도끼를 휘날려서 자신의 아들을 죽인 영주의 부하들을 차례로 살해하였다. 그러나 적이 없어진 순간, 그의 기운도 쇠퇴되었다. 야수처럼 기운이 왕성하던 그는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음을 알고서 동행하던 둘째 아들 그림(Grim)에게 자신의 시체를 바닷물에 던져서 장사 지내 달라고 부탁했다.

며칠 후 새로운 육지를 발견해서 해안가에 이른 후에 아버지의 관이 떠내려 온 땅에 그들은 정착하였다. 그리고 이들이 살아가며, 이룬 새 나라가 발틱 제국들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섬나라, 아이슬란드이다.

이상의 전래 설화는 에길의 사가(Egils Saga)라 불리는데 노르웨이의 첫 번째 왕의 탄압을 피해서 새로운 땅을 찾아온 바이킹 족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건국 설화 중 하나이다. AD 892년경에 세워졌다는 이 바이킹의 나라 이야기에서 나는 두 가지 흥미있는 점을 발견하였다.

첫 번째는 남성 위주의 족보였다. 남성인 나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 때에 나의 재산을 물려받는 첫 번째 상속자는 아버지, 두 번째는 아들, 그 다음으로 삼촌, 친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순이다. 그런데 이 순서는 재산 상속만이 아니라 원수를 갚아줄 의무를 이행할 때도 해당된다. 즉 아들의 원수를 갚는 것이 아버지의 첫째 의무이다. 그러니 늙은 아버지는 야수처럼 변해야 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 나의 흥미를 이끈 것은 바로 감정이 고조되고 이성을 잃는 경우 인간은 동물같이 변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바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우리 일행들이 방문한 이 나라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안내를 맡은 삼십대의 남성은 부모를 따라 중국에서 이주한 이민자이고 그의 부인은 월남 태생이란다. 우리나라보다 약간 크지만 거의 비슷한 땅덩어리 안에 삼십 삼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단다.

그런데 설화에서 본 남성 위주의 과거와는 달리 전 세계에서 가장 여성 존중의 경제제도를 갖고 있었다. 즉 남성과 여성 직장인이 받는 보수가 1:1로 정확하게 동등하다는 것이다. 문명이 발달되었다고 자처하는 미국에서도 똑같은 일을 하는 남성의 봉급에 비해 여성은 70센트에 불과한 현실에서….

현재 이 나라의 대통령은 여성이다. 팔월의 한여름인데 산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고, 바닷가 벌판에는 가축 사료용 풀들만이 자라고 있었다. 주업이 어업인데, 동태가 많이 잡혀서, 햇볕에 말리는 모습이 강원도에서 본 그대로이다.

세 번째 갔던 작은 도시에서 만난 농부는 자신의 집을 보여 주었다. 세 아이를 모두 교육시키며 길러내느라 수도인 레이캬비크까지 눈길을 수없이 다녔는데, 한 번은 앞에 가던 아내의 차와 자신의 차 사이에 눈사태가 발생하여서 큰 고생을 한 적도 있었단다.

그의 집에는 소가 16마리, 양이 백 마리가 있는데 주요 수입원은 5월에 이곳으로 날아오는 철새들이 지은 새 둥지에서 주워 모으는 새털들이란다. 보글보글하게 뭉쳐져 있는 털들을 깨끗하게 세탁하면 따뜻한 다운 이불이나 외투 속에 넣어서 큰 이익을 남기게 되는데, 8월 초순이면 남쪽 나라로 돌아가 버려서 짧은 세 달 동안에 열심히 모아야 한다.

이제 8월이 지나면 더욱 추워지고 비가 많이 오며 어둠에 쌓인 이 땅에서 가축들을 돌보며 고기잡이로 살아가는 이들의 국민 개인당 GDP가 5만 9천 달러라니, 그들의 근면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고, 남한의 2만 7천5백 달러와 비교가 되었다.

비록 해적들의 후예이며, 화가 나면 짐승같이 되는 조상들이었지만 집안의 가계를 존경하고 족보를 가졌던, 그리고 여성을 존중하는 이 민족에게 앞으로도 계속된 번영을 빈다.


수잔정 박사(카이저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
제인은 성격이 명랑하고 외향적인 적극성 때문에 근무하는 크루즈 여행사에서 누구에게나 호감을 받는 젊은 아르메니안 직장여성이다.

그런데 그녀가 아이를 분만한 후에 많은 문제가 생겼다. 우선 잠을 잘 수가 없게 되었다. 물론 아기가 밤에 자주 깨기 때문에 젖을 주려면 엄마도 잠을 깨게 되지만, 아기가 잠이 든 후에도 본인은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는단다. 혹시 자신이 잠이 든 사이에 아기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입맛이 없어지고, 아기에게 줄 젖이 줄어들어서, 억지로라도 먹으려 하지만 구역질이 심하단다. 화장실 가는 시간에도 아기만 혼자 놓아두면 불안해서, 변비가 되었다.

직장에서 온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좀 쉬고 싶지만 그것도 어렵다. 남편은 아기가 조금이라도 불편해 하거나 울면, 금방 엄마에게 되돌려주며, 자신도 직장 일 때문에 피곤해서 쉬어야 된단다. 엄마의 불안을 눈치 챘는지 아기도 예민해지며 한시도 엄마로부터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기 출산 후 거의 사오 개월을 그녀는 바깥출입을 하지 못하였다.

친정어머니는 본인의 직장 일로 바쁘기 때문에 아기를 맡길 수가 없었다. 아기 출생 후에 받는 3개월의 출산 휴가 기간이 지나서 직장에 돌아갈 날짜가 가까워올수록 제인은 점점 자신을 잃어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기와 떨어져서 하루 종일을 지낼 일이 두려웠다.

산부인과 의사의 권고로 정신과를 찾아 온 그녀에게 나는 과거에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가 있었는지 물었다. 많은 소녀들이 초경 당시에 경험하는 우울이나 불안 증상도 경험한 적이 없고, 비교적 순탄한 청소년기를 거쳐서 대학교에서 만나 현재의 남편과 결혼 생활을 하였단다. 그리고 아기도 두 사람이 같이 계획하여서 임신 합병증이나 다른 문제없이 분만하였는데 왜 본인이 이토록 아이에 대해서 걱정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하며 울었다. 이런 자신의 불안감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편이 야속해서 가끔은 결혼한 것이 후회된단다. 그녀는 과거에 가지고 있던 자신감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했다. 그래서 직장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며, 자꾸 병가를 연기해 달라고 졸랐다.

“그러다가는 아마 다시 직장 생활하기가 힘들어질 거예요.”

그리고 내가 과거에 만났던 일본인 친구 이야기를 해주었다.

내가 남부 도시인 뉴올리언스에 살 때에 우리 아파트에 이웃으로 살던 미쯔꼬는 실력이 있는 사회사업가였다. 그녀는 박사학위를 공부하는 백인 남자와 결혼하여 예쁜 여자 아이를 낳은 후에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자신의 갓난둥이 아기를 맡기에는 주위 사람들은 너무나 생소했었단다. 그렇다고 일본에 계신 부모님을 모셔올 처지도 못 되었고 남편의 부모님은 동양인인 자신과 결혼한 아들을 못마땅해 했단다.

그녀의 마음이 자꾸 초조해 가고 아이와 떨어져서 직장에 나갈 장면을 상상할 때면 죄의식이 커져서 그만 울어 버렸단다. 불안하고 우울한 엄마를 지켜보는 어린 아기도 자연히 심신이 날카로워 질 수밖에…. 아이는 점점 엄마에게만 붙어 있으려 하고 저녁에 돌아 온 아빠에게 가는 것 마저 피하기 시작하였다. 결국 자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던 직장을 단념하고 집에서 이제는 네 살이 된 딸과 다른 아이들의 베이비 씨팅을 하며 간신히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기들하고만 있다 보면, 산후 우울증 치료가 더딜 수가 있지요. 왜냐하면 어른들과 달리 아기들은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도, 엄마를 칭찬하는 것도 못하니까요. 워낙 아기들은 백퍼센트 어른에게 기대어 살아야만, 생명을 유지하게 되니 엄마의 가진 것을 모두 소진하게 되지요. 반면에 적당한 보모를 구해 놓고 직장에 나가게 되면 주위의 어른들은 자신들과 같이 일할 동지가 나왔으니 얼마나 반갑고 기쁘겠어요? 그러니 엄마의 잃었던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는 어른들이 있는 직장으로 나가는 것이 빠를수록 좋고 기분 좋게 돌아온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아기에게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고, 지쳐있는 남편에게도 활력소가 되겠지요. 항우울제 약물 복용을 시작하려면 우선 그간 사오 개월 주었던 모유 대신에 질이 좋은 우유를 소아과 의사와 상의해서 주도록 하세요. 기쁘게 웃는 엄마가 먹여주는 우유는 불안하고 우울한 엄마가 억지로 짜내어주는 모유보다 아기의 심신을 더욱 건강하게 지켜 줄 겁니다. 그리고 규칙적 운동으로 과거의 몸매와 활발한 성격을 되찾으시면, 남편과의 결혼생활도 한걸음 더욱 성숙한 단계로 올라가게 될 겁니다. 부모가 되었으니 이제 팀이 되어서 건강한 아기를 기를 터전을 닦으셔야겠죠. 모유를 안 먹이면 아기에게 해로울 거라고요? 천만에요. 아기는 이미 출생할 때에 엄마로부터 받은 면역 항체를 일 년 간 지니고 있고 명한 엄마와 행복한 아빠 사이에서 무럭무럭 클 거예요.”


수잔정 박사(카이저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
16살의 라틴계 소녀가 엄마와 함께 나를 찾아왔다. 지난 삼 년간 남성 정신과 의사를 보다가 자신과 같은 성의 여자 의사를 원했기 때문이란다. 이런 현상은 그리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데 이 소녀의 경우에는 남자 의사에 대한 감정이전 현상(transference)이 의심되었다. 즉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아버지처럼 느껴진 의사에게 전이된 것일지도 모른다.

소녀의 아버지는 멕시코 출신으로 술을 많이 마셨고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없었단다. 엘살바도르 출신의 엄마가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공부하던 시절에 집을 떠나 버린 후에는 다른 여자 친구와 살고 있단다. 그러니까 여섯 살 이후에는 결석해 버린 아버지인 셈이다. 대부분 이런 감정이전 현상은 무의식적이므로 본인은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프로이드 같은 정신과 의사는 정신과 치료 중에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여겼다.

“왜 닥터 S와의 치료를 그만두고 싶었지?”라는 나의 물음에 소녀는 답했다.

“그분은 나의 감정 상태를 항상 엄마에게 물었으니까요. 제 마음은 저에게 물어 보아야지요.”

그녀의 엄마는 가정 치료사(Marriage & Family Therapist)이다. 소녀는 아마 자신의 말보다 의사가 엄마에게 더욱 관심을 보였다고 느꼈나 보다.

소녀는 월경을 시작했던 아홉 살 때부터 이유 없이 우울해서 울기를 잘하고 공연히 불안해지고 자신을 미워했단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의 생활도 불규칙해지고 친구들과의 불화도 많아져서 13살 때부터는 면도칼로 자신의 손목을 긋는 자해 행동을 시작했었단다. 아마 이때쯤에 그녀는 처음을 닥터 S를 만난 듯했다.

“그럼 마지막에 자해를 한 것은 언제쯤이었지?"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팔목을 내보였다. 양쪽 팔뚝에 수없이 많은 면도칼 자국이 있는데, 그 사이사이로 구불구불한 글자들도 있었다.

“이 글자들은 무슨 내용이지?” 한 쪽은 weak (나약함), 또 한 쪽 팔에는 ugly(못생김) 라는 단어였다. 그녀 자신이 갖고 있는 본인에 대한 이미지란다.

최근에 모든 친구가 자신을 떠나버렸고 몇 달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도 헤어졌기 때문에 일어난 자해 행동이다. 거꾸로 이렇게 심한 우울 증상을 가지고 본인을 존중하거나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은 주위의 친한 사람들을 모두 무의식적으로, 쫓아버린 것은 아닌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소녀의 엄마는 자신의 가족력에 조울증으로 자살한 언니가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17세에 처음 양극성 장애 증상을 보였던 언니는 33세에 결국 자살로 생을 마쳤단다. 이 환자의 경우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전자는 소녀에게 우울증상이 쉽게 올 수 있는 자질을 물려준데다가 모계로부터 조울증의 유전까지 물려받은 셈이다. 그녀가 우울이나 불안 증상 이외에도 걸핏하면 화를 내기 잘하고 주의 산만 현상도 많으며, 주의사람들과의 인간관계로 심하게 고통을 받는 것은 어느 정도 모계 혈통 질환을 연상시켰다.

“저도 엄마처럼 어른이 되면 가정 치료사가 될래요!” 아마도 자신의 언니가 고통 받던 모습에서 영향을 받아 그녀의 엄마는 치료사의 길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고, 자신의 많은 증상들을 잘 참아내며 이해하려 애쓰는 엄마의 행동에 소녀는 감동을 받은 듯하였다.

“그것 참 좋은 계획 같구나. 그럼 이제 이년 남은 기간 동안에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갈 준비를 하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볼까?”

여자 친구들이나 성적 관계를 갖던 남자 친구를 잃었던 소녀의 스트레스는 좋은 스트레스로 바뀌게 되었다. 포유동물들의 두뇌 안에 내재하고 있는 번연계(Limbic System)는 생존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배가 고프거나, 어디가 아프거나, 엄마가 안보이면(심각한 스트레스 현상) 울고 떼를 쓴다.

"Fight or flight response"라 일컫는 이 기능 때문에 산 속의 사슴이나 토끼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지만 너무 지나치면 인간에게는 많은 고통이 올 수 있다. 공황장애나, 신경 쇠약, 잦은 위장병이나, 편두통들이 좋은 예이다. 우울하면 소녀들이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섭취를 하고 몸이 뚱뚱해지고, 반사적으로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악순환이 오는 것도 이 감정 뇌의 반응을 전두엽이 제압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자극이나 변화를 대부분 나쁜 스트레스로 보기 쉬우나 이것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한다면 좋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친구들에게 신경을 안 써도 되니 그녀는 이제부터 운동에 전념하고 그간 밀렸던 공부를 하겠단다. 그래서 원하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석사과정을 거쳐서 원하는 가정치료사가 되겠단다.

물론 다른 환자들을 돕는 데 힘쓰겠지만 우선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서 자신의 엄마 같은 훌륭한 여성이 되겠단다. 한 시간 전에 보았던 소녀와 달리 나의 사무실을 나서면서 그녀는 희망과 용기로써 이미 다른 사람처럼 변화되어 보였다.


수잔정 박사(카이저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