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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sil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somsi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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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2018년 2월
2) 속죄가 필요한 것은 모든 인류가 다 정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정죄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다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1요1:8)

모든 사람이 정죄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원죄와 자범죄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수 천 만 년 전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책임이 왜 우리에게 있어야 하느냐하는 말을 한다. 그러나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다 죄 아래 있다. 이것이 원죄다.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책임을 오늘 우리가 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다 그 영이 하나님과 분리된 영적 죽음을 가지고 태어난다.

에덴 동산에서 최초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성품을 다 가진 생령의 상태였다.(창2:7) 이 생령의 상태 인간은 영이 혼과 육을 지배하는 상태로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었고 하나님과 직접 교제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함으로 선악과를 따먹게 된 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 되었고 육체가 된다.(창6:3, 2:17)

하나님과의 영적 분리가 곧 영적 죽음이다.

마태복음 8장 22절에 보면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께 나와 자신의 부친이 죽었으니 먼저 부친을 장사지내게 해 달라고 말을 할 때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이 구절에 두 가지 죽음이 나온다. 먼저는 육적으로 죽은 제자의 아버지의 죽음이다. 또 다른 죽음은 이 죽은 아버지를 장사지내야 할 사람들의 죽음으로 이 죽음은 육적 죽음이 아닌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에베소 교인을 향해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하는 말이 있다. 여기서 에베소 교인의 죽음도 육적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을 뜻한다. 에베소 교인들이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어 있었지만 믿음으로 저들이 살게되었다는 말이다.

골로새서 2장 13절에<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라 말한다. 여기서 범죄와 무할례로 죽었던 상태도 육적 죽음이 아닌 영적 죽음을 말한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그 큰 아들을 향해 집으로 돌아 온 작은 아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네 동생은 죽었다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15:32)

이 비유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이요 작은 아들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다. 여기서 아버지, 곧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아들, 인간을 죽었던 사람으로 표현한다. 하나님과 영적 분리가 곧 영적 죽음이다.

창세기 2장 17절에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아담에게 다스리도록 맡기시면서 이렇게 말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다.(창3:6)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죽지 않고 살아서 가인과 아벨과 셋을 낳으며 인류를 번성케 하는 시조가 된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이미 정녕 그 영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적으로 죽었고, 그래서 저들은 생령이 아닌 육체가 되었다는 것이다.(창6:3)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는 존재가 된다. 인류는 이렇게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된 영적 죽음을 가진 아담과 하와에게서 탄생, 번성하게 된다. 이 때부터 인간은, 곧 가인과 아벨과 셋과 그 후손은 탄생할 때부터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된 상태, 영적 죽음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고, 이 영적 분리가 곧 영적 죽음, 원죄인 것이다.

성경은 원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장 12절)

원죄에 대해 펠라기우스와 그 추종자들, 현대 이성주의자들은 강한 반대를 한다. 펠라기우스에 의하면 죄는 아담의 죄를 인간이 모방하는 나쁜 습관에 의해 전달되는 것으로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원죄도 부인한다.

그러나 사람은 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사람은 다 정죄되어 있다. 속죄 받지 아니하면 공의의 하나님과 화목과 교제가 불가능하다. 구원은 사람과 하나님과 화목이 회복되는 것으로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을 회복하려면 죄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사람이 죄에서 해방되는 길이 곧 속죄다.

사람은 원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그 혼, 곧 인격이 죄 아래 있게 되어 자범죄를 범하게 된다. 사람은 마음과 말과 행실로 다 죄를 범하게 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 12:34)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5)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 15:1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롬 1:29-30)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모든 사람에게 속죄가 필요한 이유는 모든 사람이 다 자범죄가 있기 때문이다.

구원사적 성서 강해

성경 전체가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셔서 인간을 죄와 사망과 심판에서 구원해 주시는 구원의 사건이요 구원의 이야기다. 성경 전체를 흘러내리는 강이 곧 구원의 강이다. 그런데 창세기 한 책을 떼어놓고, 이것의 참 뜻을 찾아보려 하고, 마태복음 한 책을 떼어놓고 마태복음을 이해하려는 것은 한강에서 물 한 통 길어 와서 이 물이 달다 쓰다 말하면서 한강은 다 단물이다 다 쓴 물이다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강을 참으로 잘 이해하려면 이 강이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를 지나 어디로 가는 강인가, 이 강은 흘러가며 한국과 한국민에게 어떤 역할을 하며 무엇을 주는 강인가, 이 강은 한국의 역사 속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 등을 다 알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성경의 각 책들을 바로 이해하려면 성경 전체를 흘러내리는 구원의 강물에 그 책을 올려놓고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시선으로 그 책을 해석해야 그 책이 말하는 뜻을 바로 알게 된다. 우리가 구원의 시각으로 성경을 보지 않으면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건과 이야기가 장님이 코키리 만지고 아는 지식처럼 단편적 지식이 되고 그래서 맞으면서도 틀리는 지식이 된다.

성경책은 약 40여명의 저자에 의해 약 1600년간에 걸쳐서 기록된 책이다. 창세기 기록 연대를 대개 주전 1490년으로 본다. 그리고 신약 중 제일 나중에 기록된 요한계시록 기록 연대를 주후 95년경으로 본다. 그래서 성경이 기록된 기간을 약 1600년간으로 본다. 성경은 1600여 년에 걸쳐 각기 다른 환경에 있는 약40여명의 사람이 기록한 책이다. 그런데 이렇게 1600여년에 걸쳐 40여명의 저자가 기록한 성경은 무서울 정도로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성경이 1600여 년간 40여명의 저자들이 기록했지만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기 때문이요 이 모든 성경이 다 구원을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딤후3:15-17,요20:31)

성경의 여러 책들은 결코 분리된 책이 아니다. 성경의 여러 책들은 다 구원을 가르쳐주는 구원의 책이다.

예수님의 오심, 예수님의 생애, 예수님의 죽으심, 예수님의 오심에 대한 구약 적 예언, 이 모두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건들이요 말씀이다. 창조의 사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요셉의 이야기, 출애굽 사건 , 광야에서의 40년, 가나안 땅에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과 선지자들의 교훈과 사건,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모두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요, 사건이요, 역사다.

구원의 렌즈를 통해 보지 않으면 성경은 단지 사람의 이야기요 사람의 사건이요 사람들 중 이스라엘 사람의 역사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구원의 렌즈를 통해 성경을 보면 이 모든 이야기와 사건과 역사가 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성경에는 계명, 곧 하나님이 하신 명령과, 복음 곧 하나님이 해 주신 약속과, 예표,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중심한 많은 사건과 이야기가 있다. 신약에는 예수님의 사건과 교훈이 기록되었고, 예수님의 사건과 교훈을 다시 구원사적으로 가르쳐주는 서신들과 구원의 복음이 어떻게 이 땅에서 이뤄졌는가를 기록한 구원의 역사로 사도행전이 있다.

계명은 순종을 요구하고, 복음은 믿음을 요구하며, 예표는 성경 전체를 구원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 사건과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의 메시지를 듣기를 요구한다. 신구약에 나오는 모든 사건과 이야기와 역사, 곧 예표는 다 구원을 가르쳐주는 말씀이다.

구원에는 우리가 예수님을 내 구주로 영접하여 예수님이 내 구세주가 되신 순간 이미 받은 구원, 이루어진 영적 구원이 있다. 이 구원은 하나님과 내가 영적으로 분리되어 영적죽음 아래 있다가 구세주 예수님이 내 영과 화목 되어 내가 영적으로 생명, 곧 영생을 얻게 된 구원으로 내 신분이 죄인의 자리에서 의인의 자리로, 김 아무개의 아들 자리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신분이 변화된 구원이다.

구원에는 내가 영적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의인의 신분을 얻은 다음 하나님의 자녀로 내 인격이 성장해가는 진행되는 구원, 성화의 구원이 있다. 이 구원은, 구원 받은 성도가 이 세상을 살며 말씀과 성령을 통해 죽을 때까지 이루어가는 성화로, 혼적 구원, 곧 인격이 변화를 이루어가는 구원이다.

구원에는 이렇게 영적으로 구원 받고, 혼적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미래에 이루어질 받을 구원이 있는데, 이 받을 구원이 곧 육신이 부활하는 육적구원으로 영화의 구원이다.

성경은 어떤 경우 한 책 전부가 받은 구원, 받는 구원, 받을 구원을 예표로 가르쳐 주기도 한다. 출애굽기가 그런 책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에서 노예로 지내다가 유월절 사건으로 해방된 것이 믿음으로 받은 구원을 가르쳐주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간 광야에서 하나님이 주신 계명을 조차 가나안으로 진군해 간 사건은 우리가 구원 믿음으로 받은 후 말씀과 성령을 조차 성화되는 받는 구원을 예표로 가르쳐 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 간 사건은 우리가 앞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천국에 들어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영생 할 받을 구원을 예표로 가르쳐준다.

또 어떤 성경은 한 장 안에 받은 구원, 받는 구원, 받을 구원이 예표로 나오기도 하고 이렇게 세 가지 구원이 다 안 나와도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 받는 구원에 대한 인도하심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 대표적인 성경이 시편의 말씀들이다.

성경의 아주 많은 사건이 구원을 가르쳐주는 예표들이다.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구원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별개의 사건으로 해석을 하면 그 해석이 아무리 잘 되어도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근본적인 구원의 메시지를 놓치게 마련이다.

그래서 모든 성경은 구원사적 관점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제 4장 속죄의 필요성

1) 소죄의 필요성에 대한 두 가지 이론

우리가 속죄의 필요성을 알기 위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 그리고 죄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한다. 속죄가 곧 칭의(稱義)로 justification이다.

속죄의 필요성에 대한 신학적 이론 가운데 두 가지가 있다. 그 첫째가 가설적 필요론이요, 둘째가 결과적 절대적 필요 론이다.

1. 가설적 필요론(hypothetical necessity)

어거스틴과 아쿠나스에 의한 주장들이다. 이 주장의 이론은 이런 것이다. 하나님은 절대 전능하시기 때문에 속죄나 하나님의 공의의 만족 없이,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속죄 없이 인간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고, 선택받은 사람을 구원하실 수 있다. 그러나 성자의 속죄의 완성은 하나님이 그 주권 적으로 선택하신 방법이다. 피 흘림이 없은 즉 사유함이 없는(히9:22) 것은 하나님의 속성이나 죄의 속성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다만 하나님이 선택하신 속죄의 방법인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예수님의 성육신과 예수님의 속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하신 구원의 한 방법에 불과하다.

2. 결과적 절대적 필요론(consequent absolute necessity)

칼빈과 개혁자들의 주장이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하나님의 주권 적인 기쁘신 뜻에 의한 것으로,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을 구원하도록 선택하신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일을 이루실 필요성이 하나님의 성품 안에 있었음을 가리킨다. 이 말은 하나님이 구원을 작정하셨기 때문에 대리적 희생과 피로 값 주고 사는 구속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만족을 얻게 할 필요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인간의 구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필수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성품 자체 안에 있는 사랑이요 공의라는 것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