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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dong님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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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힘들어 못 하겠다'고 했는데, 그럼 그만 하라고 한다. 그런 싸가지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이건 지난해 10월 15일 조선일보에 보도된 유시면 의원의 말이다.

'싸가지없다'는 말은 호남 사투리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면, 그 말을 만들어 낸 발상에 대해 늘 감탄과 더불어 미소가 떠오르곤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그 진짜 뜻을 알고 쓰는 것일까.

전에 한글학회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그 곳에는 바둑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았는데, 하루는 "아, 그 양반은 바둑 '바' 자의 초성도 모르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바둑 바자도 모르는 사람이야'라고 해도 충분한 것을, 조금 더 강조해서 '바둑 바 자의 초성'이라고 했던 것이다.

우리 한글은 모두 초성 + 중성 + 종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를 들면 '학'이라는 글자는 ㅎ이라는 초성, ㅏ라는 중성, ㄱ이라는 종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사'라는 글자에는 ㅅ이라는 초성과 ㅏ라는 중성뿐, 종성이 없는데….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당시에는 '상'이라고 써 놓고 '사'라고 읽었다. 왜냐 하면 초기의 'ㅇ'은 자음으로서의 음가(音價)가 없었기 때문이다. 꼭 숫자의 0 같은 존재였다. 한글 창제 당시의 '상'에서 종성(받침)은 음가가 없는 'ㅇ'이니까 '사'로 읽으라는 뜻이었다.

이 글자를 지금처럼 'sang'이라고 읽게 하기 위해서는 'ㅇ' 대신에 사과처럼 위에 꼭지가 달린 'ㆁ'을 받침으로 써야 했다. 'ㆁ'의 음가는 영어의 'ng'과 같았으니까. '바둑 바' 자도 모를 정도가 아니라 '바둑 바 자의 초성'도 모른다고 한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분들은 농담을 해도 한글학자답게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바로 '싸가지'가 이런 발상과 비슷했던 것이다. '그 사람 싹이 노래'라든지 '그 사람 싹수가 노래'라는 말을 곧잘 들을 수 있는데, 어떤 일을 이루기에는 아예 '싹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호남 사람들은 이럴 때 '싹은 커녕 싹의 아지'도 없다, 즉 '싹아지→싸가지'가 없다고 말한 것이다.

'아지'는 '아기'가 변한 말이다. '싸라기, 보푸라기, 지푸라기' 같은 말들은 모두 '쌀 + 아기, 보풀 + 아기, 짚풀 + 아기'처럼 '아기'가 들어가 '작은 부스러기'임을 나타내고 있다. '아기'의 변형인 '아지'는 '강아지, 망아지, 송아지, 바가지(←박아지), 모가지(←목아지로서 목의 속어)'처럼 '새끼, 작은 것'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이 싸가지란 말이 표준말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사전에는 '싹수머리'의 비표준어로 나와 있다.

고인이 된 장모님은 이름이 없이 그저 '한씨'였다. 우리의 두세 세대 전만 해도 여권이 미약한 시절이라 딸에게 이름을 지어 주지 않는 경우가 있었던 것이다.

입원했던 병원에도 '한씨'로 등록되어 있었는데, 병원 사람들이 웃으면서 "노인 중에는 이런 분들이 꽤 많아요. 그뿐 아니라 '아지'라는 이름도 꽤 있고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지금은 접미사로만 사용되는 '아지'가 예전에는 '아기' 대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겠다.

우리 고문을 공부한 분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만, 기왕 꼭지 달린 이응 'ㆁ'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에 관한 이야기도 덧붙여 본다. 鯉魚, 魚, 秀魚, 白魚, 烏賊魚를 읽으라면 무엇이라고 할까. '이어, 부어, 수어, 백어, 오적어'라고 정직하게 읽으면 안 된다.

예전에 魚는 '어'가 아니라 꼭지 달린 이응을 쓴 'ㆁㅓ'였던 것이다. 'ㆁ'의 음가가 영어의 ng과 같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 + ㆁㅓ = 잉어, 부 + ㆁㅓ = 붕어, 수 + ㆁㅓ = 숭어, 백 +ㆁㅓ =뱅어, 오적 + ㆁㅓ = 오정어→오징어'라고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글 창제 당시에는 ㅇ과 ㆁ을 구별해서 썼지만, 오늘날에 와서는 쓰기야 ㅇ으로 하든 ㆁ으로 하든간에 하나의 글자로 통일되면서, 읽기는 초성에서는 음가 없는 ㅇ, 종성에서는 ㆁ노릇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음가가 없는 'ㅇ' 받침은 생략하게 되었다.

같은 魚 자가 들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穉魚를 '칭어'라고 읽지 않고 그저 '치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이런 말은 근래에 들어 만들어졌다는 뜻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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