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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복음 회복을 위한 예레미야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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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에 관한 앞의 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의심이 남는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다. 그 본성과 성향과 기질을, 그 분의 전지하심과 전능하심으로 만드셨다. 인간이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로봇을 만들어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도록 만든다. 물론 인간은 능력의 부족으로 소위 ‘버그’라는 것이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럴 일이 없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영원한 구분을 원하셨다면 아예 처음부터 인간의 본성과 성향과 기질을 그렇게 만드셨으면 되었을 것이다. 굳이 선악과를 만드시고 그것을 먹지 말라고 명하실 일이 아니다. 안 만드셨으면 먹을 일도 없다.

도대체 왜 만드셨을까? 아가서 8장 6절에서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다고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죽을 만큼 사랑하셨다. 하나님 자체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요일 4:8,16). 선악과만큼 하나님의 사랑이 표현된 곳이 없다. 독생자를 죽이신 사랑이 가장 큰 것이지만 선악과가 없었다면 예수님의 죽으심도 없었다. 예수님은 선악과 범죄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선악과를 안 만드실 수도 있으셨던 하나님께서 굳이 선악과를 만드셨다. 그것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한 것도 아셨다. 그럼에도 만드셨다. 도대체 왜?

선악과는 피조물인 인간에게 모든 선택을 맡기셨다는 증거다.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모든 것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곧 ‘사랑’이다. 하나님의 인격이 표현 된 율법의 모든 요구가 사랑이다. 사랑은 강요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도 아니다.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지, 정, 의의 인격을 가진 피조물로 만드셔서 그가 모든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셨다. 자신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반역할 수 있는 자유까지 주신 것이다. 이것이 실패하면 창조주께서 그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서 찢으셔야 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 이보다 더한 사랑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새를 사랑한 새장(Cage)’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새장은 새를 사랑해서 자신 안에 가두고 싶어 한다. 그러나 새는 하늘을 날고 싶어 한다. 새장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고 구속이다. 새장이 진정 새를 사랑한다면 새가 원하는 대로 놓아주어야 한다. 결국 새장은 자신의 문을 떼어낸다. 새는 하늘을 날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린다.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포기하고 내어주는 것이 사랑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스스로의 자유로운 선택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분의 계명, 즉 그 분이 정해놓으신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예수님은 우리 마음 문을 밀치고 들어오시지 않는다.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신다(계 3:20). 사탄의 행태와는 전혀 다르다. 흔히 ‘귀신들림’이라고 말하는 현상을 보면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의지를 완전히 무시한다. 누가 자유로운 선택과 의지로 무덤 사이에 거하겠는가(눅 8:27)? 누가 자유로운 선택과 의지로 죽으려고 불과 물에 들어가겠는가(막 9:22)?

그런 말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혹 싸움이 일어날 때, 이기는 사람은 누구인가? 덜 사랑하는 사람이다. 많이 사랑할수록 진다. 한국말에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한다. 부모의 사랑이 더 크기 때문이다. 독생자까지 찢을 각오를 하시는 창조주의 사랑을 어찌 감히 측량이나 할 수 있을까?

선악과는 그런 것이다. 누군가 의심하는 것처럼 인간을 일부러 타락시키기 위한 심술꾸러기의 작품이 아니다. 그 분의 모든 사랑이 녹아 있는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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