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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qoim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yeqoim
순전한 복음 회복을 위한 예레미야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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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나 초신자들이 가장 의문을 품고, 또는 비난하는 것이 선악과다.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먹을 줄 알면서도 왜 굳이 선악과를 만드셨냐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로 인해서 모든 것이 어그러지고 파괴되었다. 전지하고 전능하신 창조주라면 그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셨어야 하는데 그냥 방치하셨다는 것이다. 아니, 방치 정도가 아니라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 일부러 선악과를 만드신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다.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필요 없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선하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악한 것이나 나쁜 것, 피조물에게 해악이 되는 것은 절대로 만들지 않으신다.

창세기 2장 16절 17절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 다양한 과일 나무가 나게 하셨다. 그리고 동산 중앙에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다. 동산의 모든 과일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는 날에는 분명히 죽는다.

사람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로 인해서 영원한 저주가 세상에 들어왔는데 그것이 어떻게 피조물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이 아닌가?” 라고 물을 수 있다. 다음에 이어질 글을 잘 묵상하면 알 수 있겠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다. 그것이 있어야만 피조물, 특히 인간에게 진정한 복이 된다.

선악과의 기능과 역할을 알아보자. 우선 기능을 살펴보면 ‘죄의 본질’에서 보았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과 같이’ 되게 하는 기능이 있다. 물론 그것은 ‘선악을 아는 일에 한정해서’다. ‘선악을 아는 일’은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정확하다. 바우터(Bruce Vawter)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진정으로 지혜롭고 충만한 삶을 살기위한 올바른 자세는 자기 지식의 충분성(self-sufficiency of knowledge)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만 의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선과 악에 대한 지식의 나무를 금한 것이다 ”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명령(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지식(판단)을 주장하는 것을 금한다는 것이다.

선악을 판단하게 하는 것이 선악과의 기능이라면 선악과의 역할은 무엇인가? 선악과의 역할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경계선이다. 선악과 밑에 있으면(먹지 않으면) 피조물의 위치를 지키는 것이고 선악과를 넘어가면(먹으면) 피조물의 자리를 떠나 창조주의 자리에 도전하는 것이다. 사탄의 범죄가 이것이다(사 14장, 유 6 참조). 피조계에서 가장 극악한 범죄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넘본 것이다.

창조주는 영원히 창조주시고 피조물은 영원히 피조물이다. 이 질서는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한다(이 질서는 ‘권위 질서의 변천’에서 살펴보려 한다). 선악과는 바로 이것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다. 카톨릭에서는 우리가 천국에 가면 신화(deification)된다고 한다. 즉 하나님처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을 몰라도 정말 모르는 이야기다.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은 맞다. 신의 성품은 창세기에서 말씀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다. 또한 에베소서에서 말씀하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다. 이것은 인격적 측면이지 본질적 측면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피조물은 하나님의 인격을 닮도록 요구받는다. 그러나 그 본질적인 영광, 권능 등은 피조물에게 영원히 주어지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의 천국 묘사를 보면 하나님은 영원히 보좌에 계시고 천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그 앞에서 영원히 찬양한다. 우리는 경배 받을 존재가 아니고 영원히 그 분을 경배할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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