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rs in GetInsertSQL. Connection or SQL invalid. Try using $connection->debug=true;

yeqoim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yeqoim
순전한 복음 회복을 위한 예레미야의 절규
링크
   2020년 5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전체보기
월별로 보는 포스트
메모박스
성시화 운동은

전교회(The Whole Church)가

전복음(The Whole Gospel)을

전시민(The Whole City)에게 전하여

행복한 시민, 건강한 가정, 깨끗한 도시를 만드는

운동입니다.

세계 성시화 운동본부(http://holycitym.org/) 메인 화면에 소개된 소위 ‘성시화 운동’의 정의다. 여기서 ‘전교회’, ‘전복음’까지는 무조건 맞다. ‘전시민’도 말 자체로는 이상이 없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러나 복음이 과연 모든 사람의 것인가? 복음을 전하면 모든 사람이 아멘하며 주께로 돌아오는가? “우리를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살후 3:2). 자끄 엘룰의 말처럼 한 사람이 기독교인이었을 때 기독교는 존재했지만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고는 더 이상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이 ‘행복한 시민, 건강한 가정, 깨끗한 도시를 만드는 운동’은 마귀의 이상이다. 그 구호는 바벨탑을 쌓으려던 사람들이 외쳤을 법 하다. 저들은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기들만의 세상을 건설하기 원했다. 인간의 행복을 최우선 순위로 둔다. 물론 여기서의 행복은 ‘세상 관점’의 행복이다. 그럴 경우 모든 가치가 그 최우선 순위에 매몰된다. 마치 인권이 강조되면서 모든 가치가 인권에 매몰된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보았을 때 ‘건강한 가정’은 무엇인가? 물론 성시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복음의 전제’가 있기 때문에 성경적 가정이라 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PCUSA나 UMC를 비롯한 이와 유사한 소위 ‘기독교 교단’들도 같은 생각일까? 그들은 동성부부가 아이를 입양해서 서로 사랑하며 보듬어주고 가정을 잘 꾸려 나가는 것을 건강한 가정이라고 정의할 것이다.

한국도 다를 바 없다. 벌써 NCCK(WCC 산하 한국 기독교 협의회)에서는 소위 ‘차별금지법’에 동조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이전 글에서도 밝혔지만 한국교회 대다수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이유는 성경적 이유보다는 유교적 전통에 매어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한국교회는 유교를 비롯한 불교, 심지어는 토속 종교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기도나 예배의 모습을 보라. 그 종교행위를 하는 자들에게서 얼마나 많은 미신적 행위들이 나타나는가?

내가 정말 이해하기 힘든 신학적 사건이 있다. 칼빈이 ‘성시화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골수 칼빈주의자다. Th.M 논문도 어거스틴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어거스틴이나 칼빈의 모든 것을 수용할 수는 없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논외로 하고 ‘성시화 운동’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자면 칼빈은 교황을 사탄의 앞잡이로 몰아붙였다. 다시 말해서 종교가 국가권력을 소유할 때의 병폐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성시화 운동은 궁극적으로 세상의 권력 기관을 기독교가 접수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래야 법도 제정하며 그 법을 바로 시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렌 크라이더(Alan Kreider)는 「회심의 변질」에서 기독교가 국교화되면서 어떤 변질이 일어났는가를 잘 추적한다. 그는 이 땅의 ‘크리스텐둠’(Christendom: 기독교 왕국)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당연하다. 세상의 미움을 받는 기독교가 세상의 사랑을 받으며 세상 권력을 갖게 될 때 기독교는 더 이상 초월적 종교로 존재하지 못한다. 세상적인, 내재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우상종교로 전락되는 것이 필연적이다.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는 기독교인 대통령, 정치 지도자, 재벌 등이 있었다. 진정한 기독교적 가치를 실천한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가? 아니, 기독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었는가? 세상은 세상의 작동 방식이 따로 있다. 그것은 하늘의 것과 전혀 다르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 25-28). 세상은 어떻게든 살려고 하고 우리는 죽으려 한다. 세상은 어떻게든 얻으려고 하고 우리는 놓으려고 한다. 작동 원리가 전혀 다르다.

인간이 세상의 힘이나 부를 가졌을 때 겸손을 유지하기 힘든 예는 사울 왕과 다윗 왕으로 충분하다. 나는 다윗 사건에서 밧세바 건보다 더 중한 사건이 사무엘 하 24장의 인구조사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인구는 국력의 척도였다. 밧세바 사건이 인간의 연약함에 기인한 것이었다면 인구조사 사건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교만이었다. 인간이 세상의 힘을 가지면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힘을 의지한다. 그리고 점점 그 힘을 키우기 위해 마침내는 사탄에게 절을 한다.

칼빈을 비롯해서 성시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죄성과 권력의 메카니즘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옆에 켜 놓은 성시화 운동본부 웹사이트에서 전, 현임 대형교회 목사들이 거의 망라되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이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인가?

기독교의 본질이 건전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것이었던가?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이었던가? 기독교의 본질도 모르는 자들이 대형교회를 이루고 유명해져서 ‘장로들의 유전’을 만들어낸다.

제발 성시화 운동을 그만두든지 방향을 틀든지 하라. 제발 미국 주류사회로 들어가 변화를 이루자는 공산당식의 선동을 그만두라.

트랙백 주소 : http://blog.kcmusa.org/blog/trackback.php?article_id=5961
작성자 : 비밀번호 : 확인
이메일 :
덧글 :
맞춤법 검사 (우리말 배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