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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qoim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yeqoim
순전한 복음 회복을 위한 예레미야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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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초대 교회부터 간절히 바라던 소망은 2천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분은 언제쯤 다시 오실까? 예수님은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끝이 온다고 말씀하셨다(마 24:14). 그래서 선교 학자들은 ‘모든 민족’을 규정하고 정의하는데 많은 노력을 쏟아 부었다. 그것을 알 수만 있다면 재림의 시기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만족스럽게 합의된 정의는 없는 듯하다.

더구나 우리 주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태복음 24:3),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행 1:7)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그 날’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을 제한하시는 것 같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대의 표적을 분별해야 한다(마 16:3). 필자는 두 가지의 표적을 보고 예수님의 재림을 예측해 보고자 한다.

첫 번째는 ‘죄의 본질’과 관련된 것이다. 죄의 본질은 ‘피조물의 하나님 됨’이라고 했다. 나도 하나님, 너도 하나님이다. 누구도 하나님 된 인간을 정죄하거나 판단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무엇을 하던 하나님 된 내 자유다. 이것이 극단화 될 때 죄악이 관영해지는 것이다. 관영은 충만과 같은 의미지만 나쁜 쪽에 사용된다. 마치 악명과 명성의 관계다.

세상은 나날이 악해지고 있다. 살인과 강도, 납치, 인신매매 등등의 흉악한 일들이 일상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이것들은 죄의 열매가 풍성해지는 것이다. 죄의 본질이 관영해지는 상황이 아니다.

죄악의 관영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예수님의 재림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은 죄악이 관영했을 때 내려졌다. 노아의 홍수 때나 소돔과 고모라 등이 죄악이 관영했을 때 물과 불의 심판으로 멸망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실 때도 사백 년의 시간을 두셨다. 그 이유는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창 15:16). 사백 년이 지나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관영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족속을 진멸하고 그 땅을 차지하라고 하신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을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어떤 민족을 이유 없이 멸하시는 것이 아니다.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이 아니었어도 죄의 관영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처럼 멸망을 당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섭리를 통해 죄악이 관영했던 민족을 멸하고 대신 그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사도신경에서 예수님 재림의 모습을 본다.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예수님께서 초림하신 때는 구세주로 오셨다. 재림의 성격은 일차적으로 심판이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의 완성이지만 죄악 된 세상은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전히 심판받는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의 심판은 죄악이 관영할 때 온다. 또한 이 심판은 노아의 홍수나 소돔과 고모라, 가나안과 같은 심판이 아니라 세상의 완전한 종말을 위한 심판이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죄악의 관영과는 다르다. 노아 때나 소돔과 고모라, 가나안은 어떤 면에서는 ‘죄의 열매’의 관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죄의 본질’, ‘죄의 뿌리’가 완전하고도 완벽하게 관영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그 시대가 왔다. 개인용 컴퓨터와 휴대폰들은 이 관영의 진행을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몰고 간다. 이제는 정말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이다. 부모도 자식의 삶을 간섭할 수 없는 시대다. 이전에는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이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그러나 이제 해석학의 흐름 속에서 ‘독자비평’ 시대가 열렸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열 명이라면 열 명의 독후감이 완전히 다르다. 진정 죄악이 관영해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두 번째 표적은 오늘날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는 생명공학과 관련 된 것이다. 타락 전 에덴에서 인간이 누렸던 것은 완벽한 공급과 영생이었다. 삶에 아무런 결핍이 없었다. 오히려 너무 풍족했다. 또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기 전에는 사망도 없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담 자신이 땀을 흘려야 겨우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생명나무에의 접근이 금지되었다(창 3:22-24). 이제부터 인간은 이 문제들을 스스로 해결한다. 창세기 4장 16절 이하에서 가인은 문명을 발달시키고 도시를 만든다. 그것으로 스스로의 생존을 해결한다. 먹고 사는 문제는 과학과 문명을 통해 인간 스스로 해결을 해왔다. 오늘날의 식량 생산은 전 세계 인구가 배불리 먹고도 남는다고 한다. 다만 북반구와 남반구, 선진국과 제 삼 세계 간 부의 편중 때문에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는 상황이다.

과학과 문명의 발달로 생존은 가능해졌다. 나름대로 경찰력의 치안과 군대의 역할을 통해 안전도 도모했다. 문제는 영생이다. 타락 이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 인간에게 가장 간절하게 다가오는 문제가 영생의 문제였다.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위해 사람들을 모든 곳에 보내 영약을 찾아오라고 시킨 것을 포함해서 적어도 수명이라도 늘리기 위한 인간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역사적으로 계속 되었다. 오늘날에는 생명 공학을 통해 육체의 복제가 가능해졌다.

문제는 기억이다. 인간의 자기 정체성은 기억에 기반 한다. 기억 상실증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전과 똑같은 육체와 얼굴 모양을 하고 있으면서 자신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다. 복제 인간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 인간으로서의 영생이 아니다. 몸은 이전의 자신이겠지만 그 자신 스스로 누구인지 모르는 것이다. 진시황이 불로장생을 원한 것은 진시황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채 그렇게 되기를 원한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의 영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데 최근 일론 머스크가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시키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인공 지능 등의 도움을 받아 인간의 기억을 외부에 저장했다가 복제된 육체에 주입하는 것을 끊임없이 연구해 왔다. 그리고 계속 발전 중이다. 그 와중에 혁신가 일론 머스크가 컴퓨터와 뇌를 연결시키겠다고 한 것이다. 이것이 성공하면 컴퓨터의 하드디스크에 인간의 기억을 저장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복제된 인간과 연결시킬 수 있다면 이것은 완전한 영생을 보장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간에게 영생을 허락하실 생각이 없으시다. 생명나무의 길목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지키게 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그것을 넘어오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보실 리가 없다.

오늘날 생명공학의 발전을 보면 무섭다. 사실 생명 공학의 발전은 인류의 삶에 지대한 공헌을 보장한다.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선천적 기형을 고칠 수 있을 뿐 아니라 후천적 장애 모두를 치유할 수 있다. 말 그대로 꿈의 의학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 이것은 인간이 정상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속도가 아니다. 무언가 대단히 강력한 힘이 마치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것이다. 이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무한질주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들을 막으실 것이다. 그 막는 방법은 이 역사를 끝내는 것이다. 과학과 문명의 마지막에 생명공학이 등장하고 그것이 영생으로 연결되는 것이 우연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필연적인 귀결이다. 역사는 이렇게 흘러올 수밖에 없었다. 다만 크리스천이라는 자들이 시대의 표적을 제대로 읽지 못해 그것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못한 것뿐이다. 그래서 앞의 글 ‘역사의 흐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인간이 스스로 유토피아를 만들 수 있다고 착각했던 것이다. 이제라도 이러한 시대의 표적을 바로 읽고 깨어 근신하며 대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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