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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한 복음 회복을 위한 예레미야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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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파스칼은 심지어 자살하는 이유도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하면 불행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복을 받기 원한다. 그것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조건이 성립하면 복을 받으면 행복하고 저주를 받으면 불행하게 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복을 받으면 행복하고 저주를 받으면 불행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둘 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다.

세상에서는 대체로 복을 받으면 행복하다. 세상 복은 세상 기준에 따른 행복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장수, 건강, 부, 자손의 번성, 입신양명, 심지어는 치아가 튼튼한 것도 오복 중의 하나로 들어간다. 그런데 세상에서조차 복을 받는다고 무조건 행복하지는 않다. 조선의 25대 왕인 철종은 19살까지 강화도령으로 살았다. 19살에 왕궁에 들어가 철종이 된 후 32세에 죽는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왕이 되는 것은 복 중의 복이다. 권력을 위해서라면 아들도 죽이고 아버지도 죽이고 아내도 죽이는 것이 인간의 욕망이다. 왕이 되는 것은 인간 최고의 욕망 중 하나다. 그런데 강화도령이 행복했을까? 철종이 행복했을까? 내 생각으로는 강화도령 때가 훨씬 행복했다. 그리고 그가 왕궁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32세에 요절하지 않고 강화에서 행복하게 오래 살았을 것이다.

저주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저주를 받으면 반드시 불행할까?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성정은 저주받은 성정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행복을 느낀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연쇄살인범들은 살인을 하면서 지극한 행복을 느낀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우선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다. 복이나 저주는 객관적이고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반면 행복과 불행은 내 주관적 기준에 달려 있다. 남들은 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주어져도 내 마음이 그것을 싫어하면 불행하다. 객관적으로 저주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주어져도 그것을 즐기면 행복을 느낀다. 따라서 복을 받으면 행복하고 저주를 받으면 불행하다는 말은,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크리스천의 입장에서 이것은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크리스천이란 복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복음이라 말해진다. 복된 소식을 전해 듣고 그것에 응답한 자들은 무조건 복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들이 과연 행복한가? 많은 크리스천들이 불행을 느끼며 살아간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례를 보자. 애굽에서 종노릇하며 울부짖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다. 그러한 자들을 10가지 재앙과 홍해 도하로 구원하셨다. 그리고 광야 40년 만나를 먹이시고 반석의 물을 마시게 하시고 발이 부릍지 않게 하셨으며 의복이 해지지도 않게 하셨다. 40년의 모든 시간들을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 이것은 복 중의 복이었다. 그런데 그 복을 받은 백성들은 지극한 불행을 느꼈다. 오히려 애굽 생활을 동경했다. 말할 수 없는 복을 받았지만 말할 수 없이 불행했던 것이다.

오늘날 크리스천들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크리스천에게 이제 저주가 없다. 저주가 남아 있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무효화된다. 하나님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다. 그런데 그 자녀에게는 생과 복 밖에는 없다. 객관적으로 보면 크리스천은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 그러나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오늘날의 크리스천들도 불행하다. 왜일까?

예수 믿는 목표가 잘못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크리스천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 이후로는 그냥 교인이라 칭하자. 오늘날의 교인들은 예수를 통해 세상 기준의 복을 받기 원한다. 재물을 원하고 사회적 지위를 원하고 가정의 화목을 원하고 건강과 장수를 원한다. 자식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남편과 아내를 얻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약속을 하신 적이 없다.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고 세상의 미움을 당한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분 역시 세상의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것이 진정한 크리스천의 이 땅의 삶의 모습이다. 그러니 이 세상의 복을 구하고 있는 자들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바울처럼 이 세상 행복과 소위 그것을 위한 스펙을 배설물, 해로 여겨 버릴 때에만, 그리고 하늘의 영광을 바랄 때만 크리스천의 행복은 확보된다. 이외의 길과 방법은 없다. 이외의 길과 방법을 찾는 것은 우상숭배다. 그럴 때 예수는 세상 것을 보장하는 우상이 된다.

예수라는 우상을 섬기며 그 우상에게서 세상의 복과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던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 분을 바로 섬기며 그 분이 주시마고 약속하신 하늘의 복과 하늘의 행복을 추구하던지 둘 중의 하나를 지금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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