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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교회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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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2005년 8월
윌로우크릭교회

윌로우크릭교회

윌로우크릭교회 (Willowcreek Community Church) -(2)

1981년 사우스 베링턴에 90에이커 대지 위에 새로운 교회 건물을 세우고 첫 예배를 드릴 때, 윌로우크릭의 분위기는 대단했다. 지난 2~3년간 절대로 극복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경제적인 문제, 교회사역 전반의 방향성 문제들이 새롭게 교회를 건축하는 동안 극복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손길이 담임목사인 빌 하이벨스와 사역팀을 굳건하게 붙들고 계셨음을 알게 되는 시기가 되었다.

그 후 10년 동안 멈출 수 없는 지속적인 성장이 거듭됐는데 1991년에는 주말예배 출석인원 수가 12,000여명에 이르렀고 주말예배에 참석자들 중에 3분의 1 정도가 주중예배에 참석하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부서 사역들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활발하게 사역하게 되었으며 더 많은 교실과 사무실, 다용도 공간의 활동 장소들이 계획한 대로 건축되었다. 80년대 말에 윌로우크릭 교회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하나님이 이 교회를 통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알고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 세계각지에서 교회지도자들이 찾아 오는 일이 시작되었으며 이 때가 윌로우크릭 교회로서 자신들의 사역선언문에 따라 “수천 명의 반종교적인(Irreligious)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고 성서적으로 기능하는 신자들의 공동체가 되는” 꿈으로 온 교회가 충만한 시기이기도 하였다.

90년 대 말이 되어 윌로우크릭 교회는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면서 방대한 사역의 규모와 국제적으로 알려진 일들이, 개척 후 첫 15년 동안의 사역과 비교해 볼 때 성장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많은 출석교인들 중에 소그룹이나 사역에 연결되거나 참여하지 않고 출석만 하고 있는 이들이 많이 늘어났으며 현재의 건물로서는 더 많은 교인들이 사용하기에 부족하다는 것과 기존의 조직과 구조가 교인들의 영적 성장을 방해하는 위험한 약점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교회는 계속적으로 사역의 효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새롭게 규정되어야 하고, 새롭게 발전되어야 하며, 새롭게 운영되어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러한 예를 잘 보여주는 사역 중에 하나가 바로 ‘네트워크 사역’에서 ‘자원봉사 사역’으로의 변화이다. 80년 대 말부터 윌로우크릭 교회는 교인들의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하여 본인의 은사와 열정에 맞는 사역을 맡도록 하는 네트워크 사역을 개발하여 교회에 실행해 왔으며 이 네트워크 사역을 출판과 컨퍼런스, 세미나를 통하여 소개해왔다. 그러나 네크워크 사역이 운영의 효율성이 큰 반면에 새로운 봉사자들을 지속적으로 동원하는 일에는 속도가 떨어지는 면을 발견하면서 소그룹과 사역에 관련되어 있지 않은 교인들이 쉽게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는 ‘자원봉사 사역’을 개발하게 되었다. 이 자원봉사 사역을 통하여 1) 교인들 각자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가 어떻게 발견되어지고 사용될 수 있는 지를 배우게 하고, 2) 그리스도의 한 지체로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를 이해시키고, 3) 그들의 강점을 새로운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하며 4) 봉사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진정한 자유를 경험케 하며, 5)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도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러한 자원봉사 사역을 통해 윌로우크릭 교회는 지난 4년 전 6,000여명이었던 봉사자 수가 2004년 현재, 11,500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윌로우크릭 교회는 구도자들을 구령하고자 하는 열정과 교인들로 하여금 ‘주인의식’(Ownership)을 가질 수 있도록 양육하고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에 강조하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또한 모든 교인들이 소그룹에 연결되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아 윌로우크릭 교회에 오는 영혼들이 큰 교회 안에 의미 없는 무리가 되지 않고 헌신되고 자원하여 사역의 주인공이 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친다.

현재 주말에 있는 5번의 예배를 통해 17,000여명의 성인들과 2,700명의 어린이들이(6학년 이하 학생들)이 출석하고 있으며 120여 가지의 사역부서를 통해 285명의 전임 사역자와 238명의 파트타임 사역자들이 섬기고 있다. 또한 5에이커의 호수를 포함하고 있는 155에이커의 대지 위에 404,000 스퀘어피트의 건물이 $43.6 백만 불의 비용으로 건축되어 있다.

 

Teaching Pastor Mike Breaux

윌로우크릭교회

윌로우크릭교회

 

 

담임목사인 빌 하이벨스

 

 

 

 

윌로우크릭교회 (Willowcreek Community Church) -(1)

윌로우크릭 교회의 담임목사인 빌 하이벨스는 16살 때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정한 후 7~8년이 지난 후에 시카고 주변에서 가족들이 함께하는 농장 사업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이 부르시는 일에 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1972년 친구의 요청으로 그는 선 컴퍼니(Son Company) 라는 일리노이주 파크리지에 있는 사우스팍 교회(South Park Church)에 있는 크리스천 뮤직 그룹에 참여하게 되어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고 또한 정식으로 청소년 담당자가 부임하기 전까지 임시로 그 교회의 청소년 담당 주일학교 선생으로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의 가르침을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고 매일의 삶 가운데 적용할 수 있도록 가르치는 일을 통해 얼마 되지 않아 그 성경공부 모임에 참여하는 학생 수가 100여명이 넘게 되었고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사람과 섬김, 전도의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모임을 통해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 친구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행사를 만들었는데 ‘선 시티’(Son city)라는 주말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음악밴드와 드라마, 게임, 빌 하이벨스의 설교 등을 모두 합한 프로그램이었다. 이 모임도 6개월이 되지 않아 300여명의 학생들이 모이는 모임으로 성장했으며 이 모임이 바로 오늘날의 ‘구도자 예배’(Seeker Service)의 시작이 되었으며 그 당시 교회 인근 주변의 고등학교 학생들을 그리스도에게 이끄는 중요한 모임이 되었다.

1974년 길버트 빌레지키안 박사가 트리니티 대학에서 가르칠 때에 그의 학생 중에 하나가 빌 하이벨스였다. 그는 성서학 학위를 따려고 애쓰고 있을 때는데 빌레지키안 박사의 강의를 통해 ‘지역교회’가 믿지 않는 이들의 문화를 적절하게 반영하여 불신자들에게 접근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한 강한 도전을 받게 되었고 오늘날의 윌로우크릭 교회의 사역 방법과 방향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들과 목회철학을 가지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얼마 후 그는 이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윌로우크릭 교회를 시작했으며 학위는 지금까지 마치지 못하였다.

1975년 10월 12일, 윌로우크릭 교회가 첫 구도자 예배를 125명과 함께 일리노이주 팔라틴시의 윌로우크릭 극장에서 드리게 되었다. 그 다음 해에는 두 번의 주말예배도 교회가 꽉 찰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고 주중에 기신자 예배(Believer’s sevice)를 드리면서 ‘뉴 커뮤니티’ 예배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구도자 예배는 윌로우크릭 사역의 독창성과 뛰어남을 나타내는 사역이 되었다. 라이브 밴드가 현대적 음악(Contemporary)을 연주하고 매 예배마다 삶의 한 모습들을 보여주는 창조적인 드라마가 공연되었고, 때로는 재미있기도 한 멀티미디어 작품들이 그날의 주제를 따라 표현하기도 했다.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설교는 성경의 가르침을 새로운 방법으로 생동감 있게 배우게 했으나 때로 예측할 수 없는 위기가 새로 시작된 교회에 어려움을 주는 일도 있었다. 첫 삼 년간 구도자 예배는 새로운 신자들에게 매력적이어서1979년에는 주말예배 출석인원이 2000명을 넘게 되었다. 그러나 이 해에 윌로우크릭 교회의 열심과 열정이 크게 흔들이는 사건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중요한 일꾼들이 떠나가고 그들 중에는 심각한 죄의 문제를 일으켰으며 교회의 기능에 대한 많은 문제 제기가 일어났으며 사람들의 눈 앞에서 꿈이 사라져가는 그런 시기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지도자들의 근면한 모습들과 오래된 멤버들의 재헌신을 통해서 이 젊은 교회가 어려운 문제들을 이겨나가도록 움직여지게 되었다. 또한 믿음의 발걸음을 하나 더 내딛고 사우스 베링턴 지역에 90에이커의 땅을 구입하여 이사하며 새로운 사역의 문을 열게 되었다.    

 

 

 

크렌셔크리스챤센터

크렌셔 크리스천 센터

 

 

돔 모양으로 본당의 외부전경

 

 

 

 

크렌셔 크리스천 센터 (Crenshaw Christian Center) -(2)

목회자로서 사역을 시작한지 첫 17년 동안 프라이스 목사에게는 무언가 만족할 수 없는 답답함 가운데 4군데의 교단을 옮겨 다니며 다양한 목회를 시도했으나 해결할 수 없는 숙제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1962년에는 큰 아들인 프레드익이 8살 이었을 때,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차 사고로 숨지는 사고가 생기기 까지 하였다. 이러한 일들이 프라이스 목사에게는 큰 아픔이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갈증이 더욱 간절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프라이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면서 자신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했다.

이러한 시간 속에 자신의 목회사역에서 성령님의 능력이 빠져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후에 이에 관한 책을 쓰기도 하였다. (The Holy Spirit - The Missing Ingredient) 그는 이 책을 통해서 본인이 요한복음 14장 12절의 말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라를 읽을 때 하나님께서 큰 감동을 주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이 보다 큰 것도" 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도의 응답으로 그의 사역은 큰 변화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병들 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 치유 받기 시작했으면 ‘믿음’을 강조하는 프라이스 목사의 설교를 들은 성도들에게도 자신들이 할 수 없었던 놀라운 일들을 감당하는 삶으로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1973년 300여명의 성도들과 새롭게 크렌셔 크리스챤 센터라는 교회를 잉글우드 지역에 시작하게 되었으며 1984에는 늘어나는 성도들의 숫자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게 되자 페퍼다인 대학이 말리부 지역으로 이사를 간 후 남아있던 땅을 구입하여 지금의 페이스 돔(Faith Dome)를 건축하게 되었다. 이 페이스 돔은 미국 내에서도 가장 큰 교회 건물 중에 하나가 되었고 1986년 건축을 시작하여 1989년에 완성되었고 모든 비용을 완불(Pay off)했다.

이 교회가 위치한 지역에는 저소득층의 흑인들이 밀집해서 사는 지역으로 마약과 갱 관련 사고가 연일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주변환경 가운데 이 교회와 프라이스 목사는 성공과 축복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신앙생활을 하면 삶이 변화되고 존경과 명예를 얻을 수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으로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가 지역사회에 지속적으로 퍼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가난한 이들과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한 적극적인 사역도 펼치고 있는데 첫째는 구제사역이다. 매일 열려 있는 구제사역 건물에는 낮 시간이면 누구든지 와서 필요한 음식을 얻을 수 있다. 하루치의 음식이 아닌, 일주일 분량의 음식이 준비되어 있으며 3번까지는 아무런 질문도 받지 않고 얻을 수 있고 4번째부터는 상담자가 음식을 받으러 오는 이들의 형편을 살피고 어떤 도움이 더 필요한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재활의 도움을 주게 된다고 한다. 두 번째는 나눔 사역이 있다. 특별히 의류품들을 나누는 사역을 하는데 교인들이 집에서 입지 않는 옷들을 모아오거나, 의류판매업체들이 제고품을 헌물 하는 것들을 모아 종류와 크기 별로 잘 분리하고 하나하나 옷걸이 걸어서 한 건물에 놓게 된다. 이 방에 들어가면 마치 작은 옷 가게 들어온 기분이 느껴질 정도로 잘 정리되어 있으며 신발들도 운동화부터 구두까지, 옷도 속옷에서부터 양복까지 잘 갖추어져 있고 누구나 와서 마음에 드는 옷과 신발을 한 세트로 골라 갈 수 있도록 한다.(물론 속옷만은 새 것으로 나누어 준다고 한다) 더욱이 다른 한 방에는 목회자들을 위한 방이 따로 있다. 이 방에 있는 옷들은 목회자와 그의 가족들만이 방문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주로 양복과 양장 등 주일에 입을 수 있는 옷들로 꽉 차있다. 이 지역에서 함께 목회하지만 경제적인 형편이 어려운 목회자들을 위해 특별히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이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외부인들(건물을 보러 오는 관광객도 꽤 된다고 한다)에 대해 언제나 친절하다는 것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불신자일 수도 있기에 따뜻한 마음으로 친절을 베푸는 것이 전도의 시작이라고 믿고 직원들이 훈련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하는 사람은 주중에도 언제든지 교회를 방문할 수 있다. 교회 입구에 있는 안내소에서 ‘구경 왔다’라고 말하면 안내원이 동행하며 교회의 구석구석을 보여주며 교회의 역사를 설명해 준다.

사립학교시설을 갖춘 교회 건물들

다목적용으로 만들어진 체육관

 

 

파킹랏에 세겨진 교회 이름과 본당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