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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sil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somsi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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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2020년 4월
(9) 민수기 제 16장 17장

민수기 16장, 17장에는 레위의 증손인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백성 중 이름이 널리 알려진 지휘관 250여명이 함께 조직을 만들어 모세와 아론의 지휘권에 반기를 든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일에 레위 자손 고라가 앞장을 섰다.

모세는 이런 도전을 받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 모세는 레위자손들이 여호와의 성막에서 봉사하며 회중 앞에 서서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하심이 작은 일이 아님을 지적하고 분수에 지나친 원망과 요구를 책망한다. 그리고 모세는 이 일이 하나님이 친히 세워주신 제사장 직분에 대한 도전으로 여호와를 거스리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12지파의 두령들 지팡이를 가져다가 언약궤 앞에 놓게 하고 한 밤을 지낸다. 이 12지팡이 중 아론의 지팡이에는 살구나무 가지가 돋게 하고 잎이 피게 하시며 꽃이 피어 열매 맺게 하시는 기적으로 아론은 하나님이 특별하게 세운 제사장임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신다.

하나님은 땅을 갈라 순식간에 모세를 반역한 고라와 그 무리들을 땅속으로 삼키어 죽게 하심으로 저들을 심판하신다.

1) 모세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도 백성들로부터 그 권위를 도전 받는다. 목회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중 이런 저런 일로 반대와 원망과 도전을 받을 수 있다. 이때에 목회자가 할 일은 모세와 같이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함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2) 고라는 이미 하나님 앞에 큰 은혜를 받아 성막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직분을 받았는데 분수에 넘치게 제사장 직분을 탐하였다. 성화의 과정에서 성도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내 직분에 충실하고 분수를 지켜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 교회 안에서 여러 직분을 여러 성도들에게 주님의 뜻대로 나눠주셨다. 모두 각자 내 직분이 귀하다. 각각 내 직분에 에 충성해야 한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고전12:27-30)

(3) 고라와 아비람과 다단과 온은 그 가족과 함께 땅이 갈라져 저들의 장막과 모두를 삼켜버림으로 죽었고, 이들의 반역에 동참하여 저들과 함께 아론과 모세를 대적한 250명의 유명한 자들은 저들이 들고 있는 향로에서 불이 나와 다 불에 타 죽었다. 이 사건 후 다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백성을 죽였다고 원망하여 또 4700명이 죽는다.

구약에는 이 사건처럼 종종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죄에 대해 하나님이 직각적으로 심판하시는 사건들이 나오지만 신약과 현재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행5:1-5) 외에는 이렇게 하나님이 직각적으로 성도의 죄를 심판하시지 않는다. 그래서 성도가 죄를 가볍게 생각하며 하나님이 못 보시는 것처럼 살아가기 쉽지만 성도는 죄를 가볍게 보며 살아서는 안 된다. 죄악에는 반듯이 형벌과 심판이 따른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 성화의 구원은 날마다 회개하며 날마다 죄를 멀리하는 생활이다. 결코 하나님을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 모든 죄는 심은 대로 반듯이 거두게 된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4) 고라와 함께 죽은 그 자손들과 가족들의 죽음은 억울하지 않은가.

성경에는 한 왕의 죄로 온 백성이 큰 고난에 처하게 되고 많은 백성이 죽게 되는 억울해 보이는 죽음과 고난의 사건이 많이 나온다, 아합 왕의 죄로 이스라엘 땅에는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온 백성이 큰 고난에 처하게 되고 다윗의 잘못된 인구 조사로 백성들이 염병으로 7만 명이 죽는다.(삼하24:15) 한 사람의 잘못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고난에 떨어지는 일은 세상에 늘 있는 일이다. 북한에서 고난 받는 백성들에게 무슨 죄가 있는가. 한 사람의 잘못으로 온 백성 온 나라가 고난에 임하는 것이 역사다. 왜 이렇게 억울한 죽음이 있는가.

① 고라와 그 가족을 땅이 삼킬 때 자손들 다 죽지는 않았다. 고라의 후손들은 후에 하나님의 성전의 문지기로 봉사하였고,(대상9:19)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귀한 임무를 수행한다.(대하20:19)

② 왜 이 땅에는 화산 폭발과 쓰나미, 지진, 태풍, 전쟁이 발발하여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하나. 하나님이 이런 것들을 막으실 수 없는가.

1.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범죄 후 사람에게 흙으로 돌아가는 육체의 죽음이 왔고,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이 생기고 미움과 살인과 약육강식의 비극이 왔다.(창3:17-19)

2. 사람들이 화산폭발로 죽든, 지진으로 죽든, 쓰나미로 죽든 전쟁으로 죽든 한 왕이 범한 죄로 죽든, 이 죽음의 원천은 원죄에서 온 것이다. 이 땅에서 어떤 모양의 죽음이든 죄 없는 죽음은 없다. 다 죄의 값으로 죽는 것이다.

(롬6: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리고 세상의 모든 사람의 죽음은 그 사람이 어떤 것을 통해 죽든지, 암으로, 혹은 자동차 사고로, 혹은 강도의 총에, 혹은 전쟁에 죽어도, 그 사람이 너무 빨리 죽는 것도, 너무 억울하게 죽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의 생명은 거기까지로 정해져 있을 뿐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안에 생명의 날이 다 정해져 있고 모든 사람은 그 시간 까지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행17:26)

여기서 연대를 정하셨다는 말은 영어로 appointed로 이 단어의 뜻은 결혼 날 자, 약혼 날 자를 정한다고 할 때 쓰는 단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그 생명의 시간을 appointed 한때까지만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이 땅에서 아주 일찍 죽는 것이나, 아주 오래 장수하다 죽는 것이나 다 같은 것이다. 인간의 생각으로 누가 어떤 사고로 빨리 죽고 누구는 아주 오래 살았다 하지만 영생하는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으로는 다 같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하루가 이 땅에서의 천년과 같을 수 있다.

(벧후3:8)--<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4. 그래서 우리에게 구원이 필요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구세주로 오셨고 구원을 완성하신 것이다. 구원만이 이런 모든 죽음의 해결인 것이다. 구원 받은 사람에게는 언제 어떻게 죽어도 그것은 죽음이 아닌 영생의 새로운 시작이다.

(고전15:53-58)--<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은 모든 사망의 권세를 이긴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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