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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2018년 9월
성만찬 예배 회복의 필요성

1. 성서적 측면

성만찬 예배는 그리스도의 명령에서 출발된다.

그리스도께서 잡히시기 전 마지막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고전 11:24)하신 말씀에서 성만찬 예배는 출발된다.

주후 30년 예루살렘교회는 성전의 솔로몬 행각에 모여 말씀 중심의 예배를 드렸고, 가정에 모여 성만찬을 행하였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서 누가는 초대교회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전하고 있고, 46절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고 적고 있다.

주후 56년경 고린도교회는 자주 성만찬을 먹기 위해 모였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1장에서 고린도교회 성도에게 주의 만찬을 질서 있고 성별되게 행할 것에 대해 33절에서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 충고하고 있다.

주후 57년에 드로아교회는 바울 일행과 함께 <안식후 첫날에> 떡을 떼는 모임을 가졌다(행 20:6-12). 주님 부활하신 날을 주님의 날로 믿었던 이방인 교회가 <안식후 첫날> 즉 일요일에 모여 성만찬 예배를 드렸다는 증거이다.

이러한 성서적 측면에서 기독교 예배에는 반드시 성만찬 예배가 필요하다. 예배가 예수의 전 생애를 재현하는 행위라면, 기독교 예배는 성만찬 예배에서 그 절정에 도달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나타난 기독교 예배의 전통이었다. 이것이 없는 예배는 절름발이 예배요, 미완성의 예배인 것이다.

2. 역사적 측면

1) 1세기 말엽 로마교회의 감독 클레멘트(Clement)는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 40장과 44장에서 감독의 임무를 성만찬을 집례(ministration)하는 자로 언급하면서 이것이 그의 고유한 임무라고 말하고 있다.

2) 이그나시우스도 서머나교회에 보낸 107년경의 편지 8장에서 클레멘트와 동일한 입장을 피력하면서 감독의 고유한 임무가 성만찬의 집례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교회는 처음 4세기까지 신자들이 참여하는 매주일 성만찬을 엄숙하게 거행 되었다.

3) 성만찬을 자주 받지 않는 관습은 5세기경에 시작되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 미사의 계속, 개인 경건생활의 유행, 그리고 미사의 미신적인 요소의 도입 등으로 인해서 미사는 매주일 또는 매일 거행이 되었지만 신자들은 점차적으로 성찬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예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보다는 구경꾼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4) 서방교회는 4세기경 다마소 감독 때 예배 언어를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바꾼 이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년) 때까지 이단으로부터 예전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세계 모든 나라에서 미사가 모국어로 집례 되거나 예전집이 번역되는 것을 금하여 왔다. 이런 이유로 라틴어를 모르는 신자들은 예배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5) 중세교회에서 성찬을 받지 않던 풍습은 교리적인 원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첫째, 성만찬의 기념적인 특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성만찬을 여러 번 기념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만들게 했다

둘째, 중세교회의 성찬을 받지 않던 풍습은 고해성사의 발달 과정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9세기경까지는 일생에 오직 한번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신자들은 죄의 고백을 임종의 순간에나 하고자 하였다. 또 죄를 짓고 나서 고해성사 없이 성찬을 받는 것은 또 다른 큰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신자들은 자연히 성만찬을 멀리하게 되었다.

6) 종교 개혁 이후 개신교회들은 크게 보면, 반예전적인 경향, 말씀의 이해에 치중하는 경향, 체험에 치중하는 경향의 3대 조류를 따라 흘러 왔다. 개신교회들의 이러한 경향으로 인해서 결국 성만찬은 주일 예배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하게 되었다.

7) 이렇게 예배에서 성찬이 소홀하게 된데 개한 반대와 매 주일 예배에 성찬이 있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장로교 목회자들이었던 토마스 캠벨과 발톤 스톤에 의해서 전개되고, 토마스 캠벨의 아들이었던 알렉산더 캠벨에 의해서 예배에서의 말씀의 선포와 성만찬이 꼭 함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여러 교회로 퍼져갔다.

8) 이 운동이 범기독교적으로 일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이다. 먼저 카톨릭교회가 예배갱신운동을 펼쳤다.

개신교 측에서도 이 때에 리츠만, 쿨만, 그리고 폰 알멘과 같은 성서 신학자들이 초대교회 예배 연구를 토대로. 말씀과 주의 만찬이 함께 있는 균형 있는 예배의 복원에 대해서 세계교회들이 깊은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그 열매가 1982년 1월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천주교회, 동방정교회, 성공회, 개신교회의 대표들이 모여서 교파간에 이해를 달리하는 침례, 성만찬, 그리고 교역에 대해서 조정된 합의를 이루었고 이것을 리마문서라 한다.

3. 신학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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