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rs in GetInsertSQL. Connection or SQL invalid. Try using $connection->debug=true;

somsil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somsil11
   2018년 12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전체보기
월별로 보는 포스트
자주 가는 링크
메모박스
새로운 포스트 새로운 덧글 새로운 트랙백
사이드바
본문 제목 2018년 12월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다

성도의 신앙생활에 예배는 사람의 몸에 심장과 같다. 성도는 하나님 앞에 가기까지 예배를 드려야 한다. 제사 없는 이스라엘 백성은 망한 이스라엘 백성이오, 예배 없는 성도는 그 영혼이 멸망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늘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예배의 귀함을 잊게 되고 또 많은 성도가 예배의 참 뜻을 모르고 예배를 드린다. 예배가 무엇인가. 예배학자 Franklin Segler 는 <기독교의 예배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하나님 자신의 인격적 계시에 대한 인간들의 인격적인 신앙 안에서의 정성어린 응답>이라고 정의한다. 장로교 신학자 Paul Hoon 은 <기독교 예배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와 그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고 말한다.

루터교 신학자인 Peter Brunner는 <예배란 우리 주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 하시는 것으로서 우리는 기도와 찬송으로 응답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성경에서 예배에 해당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다.

첫째 구약에서는 예배라는 말로 <에바드>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은 <봉사> 혹은 <섬김>을 뜻하는 말이다. 영어로 그래서 예배를 봉사라는 말인 service라는 말로 쓴다. 예배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고, 예수님은 생명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니 나도 주님께 봉사합니다. 하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말로 <라트레이아>란 말을 쓰는데 이 말의 뜻도, 헬라말로 종이 상전을 <섬긴다>는 말이다.

둘째, 구약에서는 <사하아>라는 말을 쓰고 신약에서는 <프로스퀘네인>이란 말을 쓰는데 이 말은 <엎드린다, 절한다>는 말로 절대 복종을 뜻하는 말이다. 예배란 우리 예수님이 피를 흘려 나를 주님의 것으로 사셨으니 <주님, 말씀하소서, 제가 순종하겠습니다>하는 복종의 서약인 것이다.

예배의 원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후 광야에서부터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하나님께 드린 제사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드린 제사에 희생제물은 거룩하신 하나님께 그 백성이 나가는 길을 열어준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렇게 흠 없는 희생제물의 피를 통해 하나님께 나가 제사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저들을 구원해주신 은총을 감사하며 찬양을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린 제사는 어떤 면으로 보아도 하나님께 이미 받은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었을 뿐이고, 결코 어떤 것을 구하는 요소가 없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삼대 절기가 유월절과 오순절과 초막절이다. 그런데 이 세 절기가 다 하나님이 이미 저들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하나님의 크신 권능과 은혜로 해방된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절기다. 오순절은 하나님이 저들에게 먹을 양식으로 오곡백과를 주셨음을 감사하는 감사의 절기다. 초막절은 저들이 광야에서 초막 속에 거할 때 하나님이 양식으로 만나를 주셨고 마실 물을 예비했다 주셨고, 먹을 고기로 메추라기를 주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절기요, 추수를 끝내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기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키는 삼대절기의 제사에도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것일 뿐 결코 어떤 것을 더 받아야겠다는 요소는 있지 않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모두 하나님께 무엇을 받으려고 한다. 은혜를 받아야 하고 내 마음에 감격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다 근본 예배 정신에서 본질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예배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셨고,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드린 제사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시고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내 정성을 다해 감사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며 나 전부가 하나님 앞에 복종하기를 결단하는 우리의 응답인 것이다.

예배의 참 바른 자세는 <하나님, 이 예배를 통해 내게 아무 것을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저는 이미 하나님의 망극한 사랑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내 감사, 내 찬양을 받아 주시옵소서.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하는 것이다. 예배의 중심은 하나님이이다.예배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돌려드리는 것이다.

성도가 정상적으로 신앙생활 하는 게 제일 중요해.

성령의 감동으로 결심한 선한 일들, 내 주위 사방에 써서 붙이고 실천하며 그렇게 살아야 해.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말할 것이 있어. 성령의 감동으로 <그래, 이해부터는 내가 신앙으로 열심히 살아야지> 결심하는 것은 결심 일 뿐 실천이 없을 수가 많아. 우리는 신앙으로 열심히 살아야지 결심한 다음 신앙으로 열심히 살아야 할 구체적인 실천 목록이 있어야해. 이해부터는 십일조를 한다, 이해부터는 새벽 기도회에 나간다. 이제부터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자리에 눕기 전에 반드시 기도한다---하는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적어놓고 그렇게 살기를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는 거야. 믿음으로 살아야지, 사랑으로 살아야지, 하는 결심은 구호에 끝이기 쉬워. 구체적인 결심이 필요해. 그래야 우리의 인격이 점진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신앙의 성장을 하게 되는 거지.

여기서 다시 성령 충만과 은사에 대해 말할 필요가 있는데 그 이유는 성령 충만과 은사가 다 한 성령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야. 그런데 은사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령 충만은 모든 성도에게 다 받으라고 하나님이 명령한 것인데 반해 은사는 성령이 그 기쁘신 뜻대로 모든 성도에게 골고루 나눠주시는 것이라는 것이야. 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어봐.

<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4-11)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고전7:7)

그래서 하나님은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계속해서 은사를 사람의 몸으로 비유를 하고 계셔.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12-27)

신구약 성경에 나오는 은사를 구분하면 이렇게 돼.

1. 고전12:8-10-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통역,

2. 고전12:28-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병 고지는, 서로 돕는, 다스림, 방언,

3. 롬12:6-예언, 섬김, 가르치는, 권위(勸慰,), 구제, 다스리는, 긍휼을 베푸는.

4. 엡4:11-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목사, 교사.

5. 고전7:7-9-독신.

6. 행13:2-3-선교사.

7. 벧전4:10-선한 청지기.

8. 출35:30-35-브사렐과 오홀리압에게 주신 성전 기구 만드는 재주.

9. 고전12:31-13장-사랑.

이상의 은사를 정리하여, 여러 성경구절에서 중복된 것을 빼면, 은사는,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능력, 예언, 영 분별, 방언, 방언 통역, 사도, 선지자, 교사, 서로 돕는, 다스림, 권위, 구제, 긍휼, 복음 전도, 목사, 독신, 선교사, 선한 청지기, 성전기구 만드는 재능, 사랑, 으로 25가지야.

. 이중에 성령의 열매와 중복된 은사는 사랑. 긍휼(자비). 선한 청지기(충성). 서로 돕는(양선) 권위(자비)가 있어.

이 외에 성경에는 우리가 믿음으로 영생 얻은 것을 은사라고 말씀하고 있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6:23)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이 하나님 은사로 주신 선물이야. 내가 믿고 싶어서 믿은 것 아니고 하나님이 은사를 주셔서 믿어 영생 얻게 하신 것이지.

구원과 영생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아무것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야.

이 은사들을 구분하면 이렇게 돼.

1. 직분적 은사-사도, 교사, 목사, 선교사, 다스림(장로)

2. 일시적 은사-사도, 선지자, 방언. 과거에는 있다가 지금 없는 은사로 방언의 은사는 개인별로 가졌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또 다시 가질 수 있는 일시적 은사.

3. 체험적 은사-방언. 방언은 내가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은사.

4. 일반적 은사, 영구적 은사-늘 언제나 교회 안에 성도들에게 골고루 있는 은사로 여기서, 은사 중 돕는 것과 선한 청지기의 삶은 성도의 직장과 사업을 말해.

또 말하지만 은사는 내가 어떤 노력을 해서 내가 받아지는 것이 아니고(성령 충만은 나의 노력이 필요하지) 성령님이 그 뜻대로 성도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심으로 받는 것이야. 모든 성도들은 다 은사를 여러 가지 씩 가지고 있는 것이지.

은사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재주, 탤런트가 있는 것 같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때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와 계획대로 우리들에게 각각 다른 은사를 주신 것이야. 그리고 후천적 은사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후 하나님이 나를 쓰시려고 직분과 특별한 은사를 주신 것이지. 내 속에 잠재해 있는 은사가 무엇인지 모르다가 때를 따라 발견하게도 되지. 성도는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하나님 영광위해 충성하면 우선 내가 기쁘고 다른 사람들에게 열매가 맺히게 되고 다른 사람들이 내게 있는 은사를 이정해 주게 되지.

내가 은사와 성령 충만을 정리할 게.

성령 충만은 성도가 반드시 항상 받아야 하는 것인데 반해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대로 받아서 하나님 영광 위해 사용해야 하는 것이야.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4:10)

받은 구원은 신분이 변화하는 것으로 은혜로 한 번에 된 것이지만 받는 구원 성화는 인격이 변하는 것으로 날마다 성령 충만의 생활로, 매일 나 자신을 성령께 복종시키는 생활로 일생 이루어가는 구원이야.

내가 끝으로 먼저 했던 말 또 할게. 내 인격은 저절로, 내가 오래 예수 믿는다고, 내 직분이 집사 장로, 목사 되었다고 변화하는 것 아니야. 많은 성도들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어떤 선한 일을 결심하기는 쉽지만 또 많은 경우 결심한대로 살지를 않아 성령을 소멸하는 생활을 거듭하게 되지. 어떤 선한 결심은 집에다 써 부치고, 성경 앞 페이지에도 써서 넣고 자동차에도 써서 놓고, 내 주변에 다 써서 부치고 매일 반성하며 또 기도하며 또 회개하며 또 다시 시작하며 훈련해야 그대로 살 수 있어. 화내지 말자고 결심해놓고 금방 화내고, 낙심하지 말자고 결심하고서 금방, 낙심하고, 탐내지 말자고 결심하고 금방 또 욕심 부리고, 미워하지 말자고 결심하고 또 미워하는 실패의 연속을 걸어가면 인격이 성장하지 않아.

이제 종이에 큰 글씨로, 화내지 말자, 낙심하지 말자, 탐내지 말자, 미워하지 말자, 써서, 침대 머리 위에 붙이고 식탁 옆에 붙이고 변소 벽에 붙이고 이렇게 쓴 종이를 성경 첫 장에도 넣고---또 반성하고 또 기도하며 따라가면, 한 주, 한 달, 일 년이 지난다음에 나도 모르게 정말 화 내지 않는 사람, 정말 감사만 하는 사람, 정말 용기를 가지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 정말 미움이 없는 인격이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나를 보게 될 거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