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d $rs in GetInsertSQL. Connection or SQL invalid. Try using $connection->debug=true;

somsil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somsil11
   2019년 8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전체보기
월별로 보는 포스트
자주 가는 링크
메모박스
새로운 포스트 새로운 덧글 새로운 트랙백
사이드바
Ⅴ. 죄의 형벌

A. 형벌의 종류

1. 자연적 형벌

죄의 자연적 형벌은 피할 수 없다(욥4:8; 시9:15, 94:23; 잠5:22, 23:21, 24:14, 31:3). 범죄하면 형벌은 자연적으로 따라온다.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주정뱅이는 벌거벗게 되고, 범죄자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다.

2. 적극적 형벌

이는 자연적으로 오는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내려오는 형벌이다.

①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속적, 도덕적, 종교적 생활의 조정을 위하여 상세한 법을 주시고 이것을 위반할 경우에 그들이 받을 형벌을 규정, 발표하셨다(출 20:1-23).

② 인간 권력, 인간 정부에 나타나는 법을 통해 형벌이 주어진다(롬13:1-5).

③ 하나님의 도덕적인 법을 통하여 형벌이 주어진다(갈6:7-9; 시5:5-6)

④ 내세에도 하나님의 벌이 임한다(계20:11-13).

⑤ 성경은 범죄자에게 따르는 벌이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주신 것으로 여 러 차례 말하고 있다(출32:33; 레26:21; 민15:31; 대상10;13; 시11:6, 75:8; 사1:24, 28; 민3:10, 24:51). 그런데 현대주의 신학자들은 자연적 형벌만 인정하고 하나님의 직접적 형벌을 부인한다.

B. 형벌의 목적

1. 그릇된 견해

① 죄인의 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는 하나님이 죄에 대해 진노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 을 사랑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이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형 벌과 징계를 구별 못한 것으로 성경은 행악자들에 대한 형벌(시5:5; 느1:2; 살후1:6; 히10:26, 27)과 자기 백성에 대한 징계(욥5:17; 시6:1, 94:12; 잠3:11; 히12:5-8; 계 3:9)을 구별하여 가르치고 있다.

② 범죄를 방지함으로 사회를 보호할 목적에서 형벌이 있다는 견해로 이 견해도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사회는 점점 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2. 올바른 견해

죄가 형벌을 받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공의롭기 때문이다. 죄는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에 대한 공격이요 반역이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과 공의를 위해 죄에 대해 형벌을 가하실 수 밖에 없는 것이다(욥34:11, 12; 시62:12; 벧전1:17)

C. 아담의 죄의 결과로서의 형벌(죄에 대한 실제적 형벌)

1. 영적 사망

영적 사망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분리됨을 뜻한다(엡2:1; 5:14; 딤전5:6; 계3:1; 롬8:13).

2. 육체적 사망

형벌의 결과로 사망에 이른다(롬5:12-21; 고전15:12-23). 육체의 사망은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뜻한다.

3. 영원한 사망

영원한 사망은 영적 사망의 절정이다(마25:46; 막9:43-48; 살후1:9; 계14:11). 이것은 영원한 생명과 축복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죽음은 무에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분리되는 것이다.

4. 생활의 고난

아담의 범죄로 인한 형벌은 죽음 뿐 아니라 인간 생활에 온갖 종류의 고난을 다 가져왔다. 여인에게는 해산의 고통이(창3:16), 땅은 저주를 받고 사람이 땀을 흘려야 식물을 얻게 되고(창3:17,19), 에덴에서 추방되어 불안 속에서 살아야 했다(창3:23,24).

D. 현세 형벌과 미래 형벌의 관계

현세에도 하나님의 직접적 형벌과 또 자연적 형벌이 나타나지만 이런 것들은 최종 형벌이 아니다. 모든 사람에게 미래적 심판과 형벌이 남아 있다(계20:11-13). 현세의 형벌은 부분적이지만 미래의 형벌은 더 완전한 형벌로, 현세의 형벌은 미래의 형벌을 깨닫도록 한다(마3:7).

트랙백 주소 : http://blog.kcmusa.org/blog/trackback.php?article_id=5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