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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sil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somsi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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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만찬의 다양한 이해

교회사적으로 성만찬에 대한 다양한 이해가 있어왔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크게 네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겠다.

1. 화체설(transubstantiation)

제 4차 라테란 공의회(1215)에서 확정된 교리로서 로만 가톨릭 교회에서 채택하고 있다. 사제가 축사하는 순간에, 빵과 포도주의 형상(우유성偶有性:모양, 맛, 냄새)은 그대로이나, 질료(실체substance)는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2. 공재설(共在說consubstantiation)

루터교는 빵과 그리스도의 몸, 양자가 모두 동시적으로 현존한다고 보는 공재설을 주장한다. 루터에게 있어서 화체교리는 스콜라주의의 난잡한 이론을 사용하여, 신비를 이성화 시키려는 불합리한 시도로 여겨졌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성찬에 실제적으로 현존한다는 사실이었다.

3. 영적 임재설

칼빈과 웨슬리에게서 받아들여지는 입장으로, 떡과 포도주는 하나의 상징이지만 성령을 통해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받아들이는 효력이 있다고 본다. 칼빈은 루터의 공재설을 비판하여 육체적 임재(현존)를 부인하나, 성령의 임재를 통해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할 수 있다고 본다(효력설이라고도 한다). 웨슬리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육체적으로 임재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통해 영적으로 임재한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성만찬은 성령에 의해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양식이 된다.

4. 기념설

쯔빙글리에게 있어서 성찬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희생에 대한 기념일 뿐이지, 희생제사(sacrifice)가 아니었다."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대한 상징일 뿐이다. 그에게서 "이것은 내 몸이다"(마 26:26)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상징적, 비유적, 은유적으로 해석되어, 성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실제적 임재"라는 관념이 배격된다.

4) 종교 개혁가들의 성만찬

1. 루터의 성만찬

루터의 성만찬에 대한 입장은 초기에는 화체설에 가까운 이해를 가지고 있다가 후에 쯔빙글리와의 논쟁을 거쳐 공재설(Consubstantiation)의 입장을 취하게 된다. 루터가 이야기하는 성만찬의 효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성도의 교제이다.

둘째는 사죄의 은사를 말한다. 루터는 성만찬 때에 그리스도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성만찬을 통해 이미 획득된 용서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며 따라서 성만찬 안에는 죄의 용서가 있다고 말한다.

셋째, 성만찬이 죄악 속에서 괴로워하며 비탄에 빠져 있는 이들에게 힘과 위로를 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루터에게 있어서 성만찬은 신앙을 돕고 촉진시키는 표적이며 성만찬의 효과는 자체의 작용에 의해서가 아닌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2. 쯔빙글리의 성만찬

쯔빙글리는 무엇보다도 말씀에 강조를 두었고, 성만찬은 주님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것으로 그래서 그는 루터가 쓰던 성만찬의 모든 예식을 간소화했다. 이러한 쯔빙글리의 신학은 지금의 성만찬 경시풍조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3. 칼빈의 성만찬

칼빈이 1542년 제네바에서 발간한 칼빈의 예배의식

말씀의 예전 (The Liturgy of the Word)--예배의 말씀 / 죄의 고백 / 용서를 구하는 기도 / 운율시편 / 성령임재를 구하는 기도 / 성경봉독 / 설교 다락방 예전 ( The Liturgy of the Upper Room)--구제헌금 / 중보기도 / 성물준비 / 사도신경 / 봉헌기도 / 성만찬 말씀 / 권면 / 성체분할 / 분병분잔 / 성만찬 참여 / 성찬후 기도 / 시므온의 찬미 / 아론의 축도.

이 제네바 예배의식은 칼빈이 예배의 핵심적 요소를 말씀과 성만찬으로 보고 가능하면 초대교회의 예배내용을 살리려고 노력하였던 것을 보여준다. 성만찬은 먼저 집례자가 받고 그 다음 다른 교역자들과 회중의 순으로 받도록 하였으며 성만찬에 참여할 때는 성찬대(Holy Table)앞으로 나와서 무릎을 꿇거나 또는 선자세로 받도록 하였다. 이러한 칼빈의 예배의식은 후에 대륙지역에서는 프랑스, 스위스, 남부독일, 네덜란드, 덴마트등지의 칼빈계열교회들의 예배모범이 되어졌다.

4. 웨슬리의 성례관과 성찬

A. 성례관 <그리스도의 가시적 교회는 믿는 사람들의 모임으로서, 이 교회에서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며,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바에 따라 성례전이 정당하게 집행되어야 한다.> ( 웨슬레가 1784년 미국 감리교회를 위하여 제정한 25개 신조 안에 있는 교회의 정의)

웨슬레는 성례전은 <내적인 은혜의 외적 표상이요, 그것을 받는 수단이다>이라고 말한다. B. 성찬

성찬은 "성령의 모든 은총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혼에 전달되는 큰 통로"라고 하였다. 성도는 성찬에 자주 참여해야 하며 그 이유는 첫째, 이는 그리스도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둘째, 신자들에게 많은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육체가 떡과 포도주로 강하게 되듯이, 영혼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뜻하는 성찬에 의해서 강하게 된다. 그러므로 성찬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다. 웨슬레에게 성찬은 현재의 은혜를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대속을 상징하는 표적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금, 여기에서" 적용하여 확증케 하는 인증이다. 따라서 우리는 성찬에서 "주님의 성육신과 고난이 주는 모든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동시에 성찬은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우리에게 확신시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가질 천국 잔치에 대한 보증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성찬을 통해 주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서약이 된다고 보았다.(교회론 끝)(다음은 기독론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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