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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지만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

기독교는 하나님을 완전 이해할 수는 없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은 알려질 수 있으며, 구원에 필요한 지식 가운데는 하나님을 아는 것을 포함한다고 가르친다.

1. 소발과 이사야는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욥 11:7, 사 40:18, 사 55:8-9)

2. 그러나 예수님은 <영생이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 스도를 아는 것이라.>(요 17:3) 말씀하신다. 또 요일 5:20은 <또 아는 것은 하나님 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 이시오, 영생이시라.> 말하고 있다.

3. 이상의 두 개념은 교회에 늘 공존해 왔다.

4. 스콜라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실유(실제적 존재)와 성질을 구별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본체적 실유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하나님이 자신의 속성을 계시하실 때 하나님의 성질 얼마를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보았다.

5. Luther는 계시된 하나님과 숨겨진 하나님을 말하였고

6. Calvin은 하나님의 본체에 대한 지식은 불가능하나 그의 성질에 대한 지식은 알 수 있다고 보았다.

7. 스콜라 학자들과 종교 개혁자들의 차이점은, 종교 개혁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성질 의 인식에 하나님의 성령의 도우심을 강조한 점이다.

8. Schleiermacher와 그 추종자들은 하나님의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계시는 부정되며, 사람은 사람 자아 자신의 본연에서, 물질적 우주에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하나님을 발견한다고 본다.

참고: 1) 슈라에르마허(Schleiermacher)

르네상스로부터 시작된 현대 사상은 18세기 유럽 지성계를 지배했다. 이것은 세속적이며 과학적이며 낙관적인 세계관을 형성했으며 과학적 경험주의와 역사적 상대주의가 그 특징이었다. 이 현대적 세계관은 기독교 신앙에 중대한 도전으로 대두되었다. 이는 성서의 역사적 확실성과 가치를 비롯한 전통적인 신학의 모든 전제들을 문제시하고 집중적으로 공격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교회나 신학은 이런 도전에 의해 무력해지고 고립되어 그 토대마저 흔들릴 정도였다. 이런 위기에 직면한 19세기 초의 신학적인 문제는 기독교 신앙의 활력을 회복하고 활기 인고 창조적인 미래를 위한 신학의 토대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즉 현대 세계에서 존립할 수 있는 신학이 어떻게 가능하며, 어디에서 그 토대를 발견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러한 도전에 직면하여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슐라이에르마허였다.

슐라이에르마허는 인간의 정신에는 세 가지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는 것(knowing), 행동하는 것(doing), 느끼는 것(feeling)이 그것이다. 감정은 지식이나 행위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이며 독특한 정신 기능인 동시에 보다 심원한 존재의 단계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감정을 종교가 발견되는 장소로 보았다. 그가 <종교론>에서 종교를 <무한자에 대한 감각과 맛> 또는 <우주에 대한 직관과 감정>으로 정의한 것이나 <신앙론>에서 종교를 느끼는 것 또는 직접적인 자기의식의 수식으로 종교의 본질을 <하나님에 대한 절대 의존 감정>으로 정의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이러한 슐라이에르마허의 종교관은 종교연구의 새로운 길과 방향을 제시했다. 종교를 연구하는 것은 종교인의 신앙과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인 자신, 즉 그의 종교적인 감정의 기원과 발전을 연구하는 것이 되었다. 이것은 종교연구에 있어서 코페프니쿠스적인 변화였다.

한편 슐라이에르마허는 신조나 교의 또는 성경 본문이 아닌 인간의 종교적 경험 혹은 기독교인의 자기의식을 신학의 토대로 간주했다. 그는 교리적인 신조 배후에 있는 살아 있는 경험으로 돌아감으로써 신학의 새로운 토대를 확립하려 했다. 신학의 과제는 <기독교인의 생활에서 발견되는 종교적인 감정을 기술하는 것>이다. 신학은 사변학이 아니라 기술학이기 때문이다. 또한 슐라이에르마허는 신학을 과거의 도식의 단순한 반복으로 간주하지 않고 현대 세계와의 살아 있는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교의 신학은 주어진 시대의 기독교회에서 널리 유행하는 교리를 체계화하는 학문이다.>

슐라이에르마허는 현대의 상황에서 신학의 발전을 문제 삼았을 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관을 수용하고 그 관점으로부터 기독교 진리를 재 진술한 최초의 신학자였다. 그는 인간의 경험을 신학의 주된 자료로 받아들임으로써 신학에 새로운 활기와 관심을 불어넣었다. 또한 인간 감정에 나타난 자기의식과 하나님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 신학의 과제라고 주장함으로써 사변적인 철학으로부터 신앙과 신학의 독립을 확립했다.

[출처] (펌) 현대신학의 아버지--슈라이 에르마허-작성자 하늘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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