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sil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somsil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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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속죄가 필요한 것은 모든 인류가 다 정죄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정죄되어 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다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1요1:8) 모든 사람이 정죄된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원죄와 자범죄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수 천 만 년 전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책임이 왜 우리에게 있어야 하느냐하는 말을 한다. 그러나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은 다 죄 아래 있다. 이것이 원죄다. 원죄는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책임을 오늘 우리가 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다 그 영이 하나님과 분리된 영적 죽음을 가지고 태어난다. 에덴 동산에서 최초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성품을 다 가진 생령의 상태였다.(창2:7) 이 생령의 상태 인간은 영이 혼과 육을 지배하는 상태로 하나님을 대면할 수 있었고 하나님과 직접 교제가 가능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담이 하나님의 법을 불순종함으로 선악과를 따먹게 된 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 되었고 육체가 된다.(창6:3, 2:17) 하나님과의 영적 분리가 곧 영적 죽음이다. 마태복음 8장 22절에 보면 제자 중 하나가 예수님께 나와 자신의 부친이 죽었으니 먼저 부친을 장사지내게 해 달라고 말을 할 때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지내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이 구절에 두 가지 죽음이 나온다. 먼저는 육적으로 죽은 제자의 아버지의 죽음이다. 또 다른 죽음은 이 죽은 아버지를 장사지내야 할 사람들의 죽음으로 이 죽음은 육적 죽음이 아닌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에베소 교인을 향해 <너희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하는 말이 있다. 여기서 에베소 교인의 죽음도 육적 죽음이 아니라 영적 죽음을 뜻한다. 에베소 교인들이 죄와 허물로 영적으로 죽어 있었지만 믿음으로 저들이 살게되었다는 말이다. 골로새서 2장 13절에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라 말한다. 여기서 범죄와 무할례로 죽었던 상태도 육적 죽음이 아닌 영적 죽음을 말한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그 큰 아들을 향해 집으로 돌아 온 작은 아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네 동생은 죽었다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15:32) 이 비유에서 아버지는 하나님이요 작은 아들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다. 여기서 아버지, 곧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아들, 인간을 죽었던 사람으로 표현한다. 하나님과 영적 분리가 곧 영적 죽음이다. 창세기 2장 17절에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아담에게 다스리도록 맡기시면서 이렇게 말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그리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다.(창3:6)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죽지 않고 살아서 가인과 아벨과 셋을 낳으며 인류를 번성케 하는 시조가 된다. 여기서 주의 할 것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이미 정녕 그 영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영적으로 죽었고, 그래서 저들은 생령이 아닌 육체가 되었다는 것이다.(창6:3) 그래서 아담과 하와는 이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는 존재가 된다. 인류는 이렇게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된 영적 죽음을 가진 아담과 하와에게서 탄생, 번성하게 된다. 이 때부터 인간은, 곧 가인과 아벨과 셋과 그 후손은 탄생할 때부터 하나님과 영적으로 분리된 상태, 영적 죽음을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고, 이 영적 분리가 곧 영적 죽음, 원죄인 것이다. 성경은 원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장 12절) 원죄에 대해 펠라기우스와 그 추종자들, 현대 이성주의자들은 강한 반대를 한다. 펠라기우스에 의하면 죄는 아담의 죄를 인간이 모방하는 나쁜 습관에 의해 전달되는 것으로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한 것이 아니라고 보고 원죄도 부인한다. 그러나 사람은 다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사람은 다 정죄되어 있다. 속죄 받지 아니하면 공의의 하나님과 화목과 교제가 불가능하다. 구원은 사람과 하나님과 화목이 회복되는 것으로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을 회복하려면 죄에서 해방되어야 하고 사람이 죄에서 해방되는 길이 곧 속죄다. 사람은 원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게 되었고 그래서 다시 그 혼, 곧 인격이 죄 아래 있게 되어 자범죄를 범하게 된다. 사람은 마음과 말과 행실로 다 죄를 범하게 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 12:34)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 12:35)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마 15:1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롬 1:29-30)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 모든 사람에게 속죄가 필요한 이유는 모든 사람이 다 자범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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