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msil님의 블로그 http://blog.kcmusa.org/somsil11
   2018년 10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전체보기
월별로 보는 포스트
자주 가는 링크
메모박스
새로운 포스트 새로운 덧글 새로운 트랙백
사이드바
본문 제목 전체카테고리 | 카테고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울부짖는 기도를 하나님은 다 듣고 계셨다. 오늘 우리의 기도도 하나님이 듣고 계신다.

4.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출애급기 3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이스라엘 조상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출3:14-15)

① 스스로 있는 자는 여호와라는 말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이기 때문에 처음과 나중이 되고 영원하고 완전하고 전능하신 분이다.

② 이스라엘 백성이 받은 최고 최상의 복은 저들이 스스로 있는 절대자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만난 것이다. 성도가 받은 최고 최상의 복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다.(요1:10-13, 갈3;26, 롬4:16, 일요5:1, 롬8:15-17)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0-13)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요8:14-17)

전능하신 하나님, 스스로 있는 자(출3:14) 여호와(출6:1,2)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해방을 위해 모세와 함께 하시고 모세와 함께 바로 왕 앞에 가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시작한 구원은 반듯이 완성된다.

2. 출애급기 제4장—제13장

출애급기 4장으로부터 11장까지에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급의 노예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 앞에 행한 두 가지 기적(지팡이가 뱀이 되는, 손에 문둥병이 생겼다가 문둥병이 사라지는)과 모세가 바로 왕 앞에 행한 10가지 재앙의 기적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출12장 13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의 노예에서 흠 없는 유월절 양의 피로 은혜로, 공짜로 해방된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하는 유월절과 무교절 제정에 대한 말씀과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건을 기록한다.

하나님의 무한성

공간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무한성이 곧 하나님의 무량성이다. 하나님은 모든 공간을 초월해 계시면서도 그 실유 자체로 공간의 모든 부분에 임재하시는 신적 존재의 완전성을 가지신다. 하나님의 무량성은 하나님의 편재성과 같은 것으로 전자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는 말이요, 후자는 하나님의 내재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편재성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모든 창조물에 그의 권능으로만 임재하시고, 그의 실유로 임재하지 않는다는 견해는 배격되어야 하며, 하나님은 인격적으로 모든 만물에 내재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땅과 하늘이 용납할 수 없으며(왕상 8:27, 사 66:1, 행 7:48-49), 동시에 그는 하늘과 땅을 채우시며,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이시다.(시 139:7-10, 렘 23:23-24, 행 17:27-28)

4. 하나님의 유일성

(1) 하나님의 단수성

이 속성은 하나님의 단일성과 유일성, 즉 하나님은 수적으로 하나이며, 그 점에서 독특하심을 강조한다. 이 속성은 오직 한분의 신적 존재가 있다는 것을 뜻하며, 모든 만물은 그에게서 나오며, 그를 통하여 그에게로 돌아감을 뜻한다.(왕상 8:60, 고전 8:6, 딤전 1:5, 신 6:4, 슥14:9, 출 15:11)

(2) 하나님의 단순성

하나님의 단수성이 하나님을 다른 존재들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단순성은 하나님의 완전성이 신적 실유의 내면적 품질적, 유일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 하나님은 어떤 용어로도 분리하거나 복합할 수 없음을 뜻한다. 이 속성의 요의는 하나님의 삼위가 신적 본질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들이 아니라는 의미와, 하나님의 속성과 본질이 별개의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속성은 하나님의 본질에 어떤 것이 첨가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내포한다.(신 4:35, 왕상 8:60, 고전 8:6)

Ⅶ. 공유적 속성(인격적 속성)

A. 하나님의 영성

성경은 하나님의 대한 정의를 내리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나님 스스로를 말하실 때, 하나님은 영이시라 말하고 있다. (요 4:24)

우리 하나님은 어떤 한 靈(a Spirit)이 아니고 靈(He is Spirit)이다.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말은 하나님은 세상과는 구별된 존재자로 하나님의 존재는 비물질적이며, 불가시적이며, 합성이나 보탬이 불가능하다는 말이요, 어떤 내부적 조성이 없으시다. 성경은 하나님의 손과 하나님의 입, 혹은 하나님의 눈에 대해 언급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알리기 위한 신인동형, 동성주의 적으로 말하는 것 뿐 하나님에게 인간과 같이 눈과 코와 손이 있으시다는 뜻은 아니다. (딤전 1:17, 딤전 6:15-16)

B. 하나님의 지성적 속성들

1. 하나님의 지식

하나님은 독특한 형식으로, 현실적인 모든 사물들과 가능한 모든 사물들에 대해 영원하게, 단순하게, 완전히 아시고 계시다. (삼상 2:3, 욥 12:13, 시 94:9, 147:4, 사 29:15, 40:27:28)

하나님의 지식은 논리적이거나 추론적이 아니시며, 절대적 완전한 지식으로 직관적이요, 동시적이며, 의식적인 지식이다. 하나님의 지식은 총체적이요, 포괄적인 것이기 때문에 전지하시다. 하나님은 그 자신을 아시며, 그 자신에게서 나오는 모든 것을 아시며, 만물들을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실제적으로 일어나는 대로 아시며, 그것들을 참된 관계에서 아신다. 그는 사람의 속까지를 다 아시며, 실제적인 것과 가능한 것을 다 아신다. (욥 37:16, 삼상16:7, 대상28:9,17, 시 139:1-4. 렘 17:10, 시 1:6, 31:4, 33:23, 37:18, 119:168)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인간의 조건적인 행동, 인간의 자유행동에 대해 예지(豫知) 하시는 가?

하나님은 필연적 사건들에 대한 예지는 물론, 우발적 인간의 사건을 예지하시고 계시다. (삼상 23:10-13 ; 다윗이 그일라에 숨어 있었을 때 사울이 내려옴을 듣고, 그 백성이 자기를 내어줄까 문의하는 사건, 이 때 하나님은 그일라 백성이 사울에게 다윗을 내어줄 것이라 대답하신다. 그래서 다윗은 그일라에서 피신 한다. 하나님은 미래의 사건을 예지하신다.

왕하 13장- ; 엘리사가 병들고 이스라엘에 아람군대가 쳐들어온다. 요아스는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가서 이스라엘을 구원해주기를 간구한다. 엘사는 동 쪽 창문을 열고 동쪽으로 활을 쏘게 한다. 이 화살이 아람에 대한 구원의 화살이라 말한다. 선지자 엘리사는 화살 묶음을 요아스에게 주고 그 화살 묶음으로 땅을 치라고 말한다. 요아스는 땅을 세 번치고 그쳤다. 엘리사는 왕이 여러 번 땅을 쳤으면 아람을 진멸하도록 쳐서 이길 터인데 세 번만 쳤으니 아람군대에게 세 번만 이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엘리사의 말대로 되었다. 하나님은 미래의 사건을 예지하신다.(사42:9, 사48:18,렘2:2,3, 렘38:17-20, 겔3:6...)

후 천년설(post-millennialism)

천년왕국 후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들의 입장은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의 이 세상 - 곧 현세를 천년왕국으로 보기 때문에 이 설은 무 천년설과 같은 입장이다. 이 후 천년설 주장에는 천 년기를 전투하는 교회의 최후의 한 시대로 보며 그리하여 이 세대에 성령의 특별한 감화 아래 교회는 크게 각성되고 부흥되어 안팎에서 악의 세력을 이기는 어떤 때가 될 것이라 말하는 초기형태의 후천년설(D. Brown, J. Berg, A.H.Strong) 주장자들과 -하나님이 역사 속에 인류의 문명과 과학을 통해 - 그래서 -점차적으로 개선되어지며 이상 세계가 이루어지는 천 년기(상징적 수자)가 있을 것으로 보는 후기 후 천년론자(Shirley, J. Case)가 있다. 그러나 성경은주님 재림이 가까울수록 악이 흥왕하고 무질서해지리라 말하고 있다(마24:6-14,21,22; 눅 18:8, 21:25-28; 살후 2:3-12; 딤후 3:1-6; 계 13장).

5. L. Berkhof의 입장

그는 그의 조직신학에서 전 천년설과 후 천년설을 소개하고 비평할 뿐 전 천년설도 후 천년설도 주장하지 않은 입장이다. 결국 Berkhof는 무 천년론자이다.

질문 15) 계시록13:18에 기록된 666은 은 무엇인가

답 :

세대주의자들은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짐승의 수로 666을 들고 있다. 그리하여 세대주의자들 중에 이 666을 오늘의 역사의 현장에서 찾아보고, 특별히 computer가 적그리스도로 보는 견해가 많이 있다.

(1) 저들은 Alphabet의 수치를 이름에 대입하여 합산한다. A=6, B=12, C=18, D=24, E=30 … Z=156으로 정하고 이 수치를 Alphabet에 붙여 합산한다.

ㅇ computer = 18+90+78+96+126+30+108 = 666

ㅇ 네로황제라는 말을 히브리어로 표기하여 수를 합치면 666이다.

ㅇ 그러나 왜 A가 6이요, B가 6×2=12요 C가 6×3=18이어야 하는지, 그것은 성경에 없는 계산 이다.

(2) 666은 이 세상에 흔히 있는 수자에 불과하다. 666이라고 다 적그리스도나 사탄, 짐승으로 보 아선 안 된다.

(3) 666은 우상에게 절한 사람이 받는 표이다. 우상에게 절하지만 않으면 666은 자연수에 불과하 다.

(4) 666은 우상, 사탄,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상징적 숫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