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길의 신약산책 http://blog.kcmusa.org/sky2o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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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소)아시아는 어디인가?

아시아라는 말은 로마가 기존의 헬라제국을 붕괴시킨 후 드넓은 제국을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권역별로 분할한 여러 속주 가운데 하나다. 현재의 아시아라는 대륙명도 거기에서 유래했고, 기원 후 400년경엔 소아시아라고 부른 기록이 있다.

 

로마시대의 아시아는 지금의 터키 일부로 서쪽엔 에게해, 북으로는 흑해, 남으로는 지중해와 맞닿는 서부지역이었고 고대엔 이 지역이 아나톨리아 왕국이었다. 광활한 내륙에 비옥한 농토와 목초지를 끼고 있던 아시아의 수도는 바로 서쪽 해안에 위치한 에베소였다. 에베소는 기독교의 해외선교역사에서 그 가치와 중요성을 논할 때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왜 아시아의 일곱 교회일까?

왜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일곱교회에만 편지를 보냈을까? 한마디로, 다른 지방이 아니라 아시아 주에 위치하던 교회에 보낸 편지이다. 이를테면 비시디아의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트라 등 바울의 교회들은 아시아가 아니라 갈라디아 지방에 위치한 도시였고 당연히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해당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곱 교회는 모두 요한계 교회(Johannine Churches)였다.

 

다시 말해 바울이나 그의 제자들이 개척하고 목회하던 교회가 아니라 사도 요한이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극에 달해 있을 때 자신의 신학을 따르는 이른바 요한계 교회를 향하여 훈계와 격려, 그리고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게 요한계시록 2-3장의 내용이다. 남의 교회에 편지하거나 접촉할 수 없음을 이해한다면 편지를 보낸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곧 요한교회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럼, 왜 에베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에 포함되었을까?

에베소는 바울이 그의 3차 전도여행 중 27개월 이상 머물며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한 곳이고(엡 6:19) 그 기간에 제자 에바브라를 통해 세운 교회 중의 하나가 라오디게아 교회였다(골4:12-16). 우선, 바울이나 그의 제자들이 개척한 교회가 나중에 요한계 교회로 바뀌었을 가능성이 있고, 또 하나는 복수의 다른 교회가 한 도시에 존재했을 수도 있다. 사도들이 교회를 세웠다고 할 때 교회당 건물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여 모였던 예배공동체(ekklesia)"였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확실한 것은 역사적으로도 90년 이후론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이 요한의 교회 일색이 되었다. 이는 요한의 무덤과 기념 교회가 에베소에 있고, 특히 요한 계시록을 기록한 장소가 에베소 인근의 섬 밧모라는 사실이 설득력을 더한다. 물론 요한의 무덤터라는 전설에 따라 후대에 그 곳에 요한기념교회가 세워졌지만 요한이 에베소에서 죽기까지 복음을 전했다는 그 전설을 부인할 만한 성경적 근거도 없다는 점과 에베소가 요한신학의 요람이었다는 역사적 뒷받침에 의해 신약학계에서도 그 전통을 대체로 수용하는 분위기다.

 

요한 신학의 배경이 된 아시아

요한 신학의 특성을 우선 복음서에서 살펴보자. 요한복음엔 다른 복음서에 없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우선 요한복음서의 말씀을 듣던 대상인 에베소 인근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여러 신비종교에 물들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게 인기를 누리던 숭배대상은 디오니소스였다. 이 신은 지역특성에 따라 포도생산지에선 포도주신으로, 목축업을 하던 곳에선 목자로 숭배되었다.

 

과거 우리 조상들도 어부들은 고기를 많이 잡도록 기원하고, 농부들은 좋은 날씨와 적당한 비를 위해 각기 신을 만들어 섬기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디를 가든 디오니소스 신전터가 흔하게 널려 있고 유명한 고린도 박물관에 소장된 모자이크에는 디오니소스의 머리가 포도나무 넝쿨로 장식되어 있는 것이 눈에 띤다. 이렇게 디오니소스 신은 로마가 헬라제국을 무너뜨린 후에도 여전히 위세를 떨쳐 이름만 달리하며 박카스 신으로 불렸다. 실제로 터키내륙을 관통하며 아시아지방을 지날 때 버스길 양 옆엔 포도나무 밭과 목초지가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참 포도나무”요 “선한 목자”

마태복음서가 이스라엘에 사는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서인데 반해 요한복음서는 이 아시아 지역에 살던 사람들에게 전한 복음이다. 요한은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전할 때 디오니소스가 포도나무가 아니라 예수께서 참 포도나무(요15:1)이심을 부각하여 전했다. 그냥 포도나무가 아니라 참 포도나무라고 강조하는 의도를 잘 헤아려야 한다.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야말로 자신들의 주업인 목축업을 돕는 신이라고 믿던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목자요, 선한 목자(요10:14)라는 요한복음서의 말씀은 그들의 기존 신앙에 도전하는 큰 충격 자체였을 것이다.

 

그런데 요한은 비단 예수님의 말씀만 전한 게 아니었다. 그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믿도록 강력한 뒷받침 역할을 하는 게 요한복음에선 “표적”이다. 이 표적은 공관복음서의 기적과는 뉘앙스가 많이 다르다. "표적(semeia)"은 영어로 sign이나 indicator라는 뜻인데, 사건자체보다 그 사건을 가능하게 한 장본인이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아보도록 손가락으로 가르킨다는 의미이다.

 

요한복음엔 대표적으로 7개의 표적이 소개되고 그 첫째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요2:1-11)임은 누구나 잘 안다. 포도를 수확하여 그릇에 담가 보관하면 일정 기간이 지나 맛을 내게 되는데 그 당시 이 지역의 사람들은 디오니소스가 그 맛을 만들어낸다고 굳게 믿었다. 이를테면 어떤 집의 포도주가 유난히 맛과 향이 뛰어난 경우에 그들은 디오니소스신이 그 집을 특별히 아끼고 사랑한다는 표시로 여겼다.

 

그런 그들에게 요한은 예수님의 많은 표적 중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을 제일 먼저 제시하며 진짜 믿어야 할 신은 디오니소스가 아니라 예수님임을 생동감 있게 전했던 것이다. 예수님이야말로 물로도 포도주를, 그것도 맛있게 만드시는 진짜 믿어야 할 신임을 설교하는 것이다. 뒤에 나온 포도주가 아주 맛있다고 칭찬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일의 중요한 증인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신학은 그 당시의 눈높이 복음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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