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길의 신약산책 http://blog.kcmusa.org/sky2o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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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끊임없이 크고 작은 시련을 겪기 마련입니다. 시련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더 지혜롭고 강한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절망하며 낙심하는 것도 바로 이 시련의 때입니다.

 

절망으로부터의 자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에게도 시련이나 어려움이 늘 따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겐 절망과 좌절 속에서 방황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면서 얻는 가장 큰 유익은 세상의 부귀영화나 만사형통이 아니라 절망으로부터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절망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란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인 우리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일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능히 견디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절망으로부터의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씨름하는 어떤 문제보다 훨씬 크신 분이며 좋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자들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들은 고난과 시련 자체보다 그 뒤에 버티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악조건도 바꿔 선하게 작용하도록 일하시는 분임을 잘 압니다. 바울의 말씀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겐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아끼고 소중히 여깁니다. 여기서 “모든 일”은 우리가 늘상 경험하는 온갖 시련과 어려움 등을 모두 포함합니다. 크리스챤은 온갖 시련과 역경에도 좌절하지 않을 수 있는 무언가를 간직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요셉 이야기는 이런 가르침이 진리임을 가르쳐줍니다. 세상의 어느 누가 피붙이 형제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는 일을 흔하게 겪겠습니까? 바르게 살던 선량한 시민이 아무런 죄도 없이 캄캄한 감옥에 던져지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런 흔치 않은 일을 어린 나이에 모두 겪었습니다. 단련된 사람도 감당하기 벅찬 일을 부모의 편애 속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어린아이가 경험했을 충격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나중에 “형들은 나에게 해를 끼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통해 선한 일을 계획하셔서 많은 사람을 살리게 하셨다(창 50:20)”고 고백하였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보호수단이 되기도

사실, 대상들에 팔리는 억울한 일을 겪지 않았다면 그는 분노한 형들에 의해 이미 목숨을 잃었을 지도 모릅니다. 따지고 보면 노예로 팔린 것이 오히려 요셉에겐 들판의 구덩이에서 두려움과 싸우며 처절히 죽어가는 고통보다 안전한 보호막 역할을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그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기 때문에 감옥으로부터 재기하여 출세할 수 있었습니다. 출세나 성공했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절망의 순간에도 폭풍의 소용돌이를 멋지게 극복한 감동이 있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는 아름답습니다.

 

부모의 편애는 다른 자녀들을 분노의 폭군으로 만들 수도 있는 아주 어리석고 위험한 처사입니다. 또한 인신매매의 충격적인 사건이나 억울한 옥살이 모두 인류사회에서 사라져야 할 구조적인 폭력이고 억압이라면 하나님은 그런 폭력의 희생자에게 좌절이나 절망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멋지게 벗어나는 길로 요셉을 인도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피하고 싶은 그 고난과 시련도 하나님은 이처럼 선한 것을 만들어내시는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자녀들에게 고난은 절망과 좌절의 때가 아니라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이루실지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할 기회입니다. 고난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바르게 교훈하십니다. 고난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되돌아보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아래 있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습니다.

 

징계는 저주 아닌 사랑의 표현

그렇게 보면 시련이나 징계는 사랑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손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징계는 하나님의 심판이나 저주라고만 믿던 과거의 생각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자들에겐 잘 어울리질 않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팎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 아래 있다고 손가락질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그를 쓰다듬고 있다고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여러가지 시련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고 권면하십니다. “자녀들아, 주의 징계를 가볍게 여기지 말며 꾸지람을 듣더라도 낙심하지 말라”(히12:5)는 말씀도 우리에겐 큰 격려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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