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길의 신약산책 http://blog.kcmusa.org/sky2o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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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으로 방영되는 TV 뉴스 시간에 중고차를 판매하는 직원을 몰래카메라로 찍어 그 비리를 생생하게 방영한 적이 있습니다. 문제의 그 직원은 고객을 상대로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동차의 불리한 기록을 숨기거나 조작하여 정상가보다 터무니 없이 높은 값에 팔려다 많은 사람들의 신고를 받고 은밀히 취재한 카메라에 그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정직하게 일하는 같은 업계의 많은 사람들마저 실추된 이미지 때문에 한동안 고개를 들 수 없게 됩니다.

 

만일 교회에 정기적으로 출석하는 사람의 일상생활을 몰래카메라로 방영한다면 십중팔구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태도나 말씨, 그리고 생활 속에 드러난 갖가지 부끄러운 모습이 교회에서 상냥하게 봉사하며 젊잖게 예배드리는 모습과 대비되어 위선적으로 보일 게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교회에서는 아무 흠과 죄가 없는 것처럼 행세하고, 또 그렇게 처신하도록 자신과 타인으로부터 음으로 양으로 압력을 받습니다.

 

위선자는 “~척하는 자”입니다. 그런데 원래 이 말은 헬라어에서 연극배우의 연기에 쓰던 말이었습니다. 고대의 연극무대에선 한 사람이 여러 배역을 소화하기도 했고 각 배역을 연기할 때 그에 맞는 가면을 골라 썼습니다. 예를 들면, 재미있는 장면을 연기할 땐 웃는 모습의 가면을 쓰다가 갑자기 슬픈 장면에선 다른 가면을 바꿔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위선이란 곧 자기 얼굴을 가면의 뒤에 감추고 있는 상황을 일컫던 말이었습니다.

 

“교인들 중엔 왜 그리 위선자가 많을까?“

교회 밖의 사람들이 교회를 향해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이자 비판거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싫어한다면서 그 이유로 교인들의 위선을 꼽습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교회에 드나든다고 해서 모두 예수님을 잘 믿는 크리스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운동장에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운동선수가 되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놀랍게도 교인이 되는 필수 자격은 죄인입니다. 교회에 들어오기 위해 일부러 죄를 지어야한다는 뜻이 아니라, 교회는 죄인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외엔 이런 모임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신은 죄없는 의인처럼 행세하며 거꾸로 타인을 죄인으로 판단하여 정죄한다면 그야말로 위선자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참 기독교인은 죄가 없는 자가 아니라 용서받은 죄인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완벽해지는 게 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완전한 용서가 선물로 주어질 뿐입니다. 이것을 잘 이해하면 죄인과 위선자의 차이를 쉽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성도는 죄가 없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지만 그건 사실 기독교의 진리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어떤 모양의 경건이나 신앙과 상관없이 죄의 영향아래 놓여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죄인이며, 따라서 날마다 겸손히 무릎꿇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누가 어느 날 의인이나 완벽한 자로 변한다면 그야말로 그는 그날부터 구원자가 더 이상 필요없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세상엔 그럴 자가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는 말씀이 그 증거입니다. 반대로 죄가 없다고 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안에 없는 것입니다“(요일 1:8). 위선자는 가면을 쓴 채 아무 죄가 없는 양, 세상의 죄에서 자유로운 양 행세하는 자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소위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위선자와 죄인의 이야기를 가르쳐주셨습니다.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는 위선자의 기도는 물리치셨지만, 반대로 다른 사람의 손가락질을 감수하고 용기 있게 하나님 앞에 나와 기꺼이 자신을 죄인으로 여겨 가슴을 치던 세리의 기도는 기쁘게 받으신다는 교훈입니다. 둘 다 기도하러 성전에 왔는데, 더구나 바리새인은 성전기도만큼이나 중요한 경건생활에도 충실했었는데, 의외로 하나님은 당당한 그를 물리치시고 부끄러운 죄인의 기도를 기뻐하셨습니다.

 

위선자로 머물러 있는 한 그는 여전히 죄인이지만, 그러나 과감히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하나님은 그를 죄인의 자리에서 건져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일상생활에서는 물론이요 기도할 때에도 외식하는 자들, 곧 위선자들과 같이 하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악한 사람의 생각처럼, 은혜를 많이 받으려고 일부러 죄를 짓는다든지, 아니면 어차피 죄인일 바에야 자유롭게 범죄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니냐며 죄를 반복한다면 그는 자신의 죄 때문에 목숨을 지불하신 주님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꼴이기 때문에 참 그리스도인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용서받은 죄인이라면 당연히 과거 죄의 권세 아래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죄의 권세, 즉 사망에서 해방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역할이며 동시에 거듭난 자의 책임있는 삶입니다. 억지로 의인인 양 해봐야 아무 유익도 없겠지만, 하나님께서 그 안에 변화를 가능케 하는 의지와 힘을 주실 때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실 것을 확신합니다“(빌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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