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길의 신약산책 http://blog.kcmusa.org/sky2o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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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마리의 펭귄을 동물원으로 운송하던 트럭이 도로 한 가운데서 고장을 일으켜 난감한 상황이 벌여졌습니다. 운전기사는 펭귄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하다 다른 트럭 운전사에게 500불을 주고 동물원까지 날라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트럭을 고쳐 타고 시내에 들어온 그 기사는 깜짝 놀랄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어제 만났던 그 기사가 자신의 뒤에 펭귄 수백 마리를 일렬종대로 세우고 땀을 뻘뻘 흘리며 길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는 차에서 내려 부리나케 달려가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제 500불이나 주고 동물원에 데려다 주도록 부탁했잖아요?” 그러자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물론 동물원에 데리고 갔었지요. 그런데 관람료를 내고도 돈이 많이 남아서 지금 영화구경 시켜주려고 극장에 가고 있어요.

 

이 사람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름대로 성실히 약속을 지키려고 수고도 하고 바쁘게 시간도 보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게 자신의 임무를 다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나침반도 없이 깊은 숲에 갇혀 방황하는 경우와도 같습니다. 애쓰고 수고한다고 하여 그게 옳고 지혜로운 일이라곤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 열심히 하느라 시간도 많이 쓰고 재물도 많이 사용하지만 정말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지는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챤에게 주어진 삶의 목적에 따라 그것을 이루려는 자세와 노력이 중요합니다. 이 본문에선 우리에게 몇 가지 목표를 가르쳐 줍니다.

 

주님과 복음 때문이라면 고생과 수고도 기꺼이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고생이나 고난을 원치 않습니다. 빨리 제거하려 하고 극복하려고만 합니다. 심지어는 복음 사역자들마저 고난이 없는 평안한 삶을 축복이자 성공이라고 우겨대며 그것을 추구합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환호하고 인정해주는 자리는 기를 쓰고라도 차지하려 하지만, 반대로 그늘지고 어둔 곳은 눈길조차 건네기 쉽지 않고 오히려 이름도 없이 작은 자들을 섬기는 이들을 무능한 사역자로 낙인찍어 무시하는 웃지 못 할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고생과 고난은 그만큼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가 현재 당하는 고난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예수님을 알기 전 성도들에게 모진 고난을 안겨주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엔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 그야말로 사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그는 그리스도의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 1:24)을 채워가는 길이었습니다. 잘 알듯이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구원의 열망이 존재하는 한 그리고 그 은혜의 날이 지속되는 한 그 남은 고난을 채우는 것은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고난의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어찌 고난을 피해갈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고난을 가까이서 지켜보았지만 순간의 오해와 불신으로 결정적인 때에 주님의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하여 한 평생 아쉬움이 많았던 베드로의 권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여러분이 기뻐 뛰면서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벧전 4:12-13).

 

부르심에 합당한 섬김을 실천해야

군대에는 수십만의 군인들이 있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하는 일 없이 노는 사람은 없습니다. 설령 평상시에 편해 보이는 직무가 있지만 유사시엔 어림없는 일입니다. 필요한 만큼 인원을 뽑고 그에 맞는 정확한 임무를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부르시고 모두에게 예외 없이 은사를 주셨습니다. 특별한 사랑으로 부르시고 특수한 은사들을 골고루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귀중한 선물상자를 열어보지도 않고 버려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많은 크리스챤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를 잘 활용하지 않을뿐더러 사용하길 거부하기도 합니다.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해하고 그 이상의 헌신이 요구되는 일에는 구경꾼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교회를 통해서 주님의 복음사역에 동참하는 것과 서로를 섬기는 일에 필수적인 도구이자 선물입니다. 그래서 은사는 지혜롭고 유익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시긴 했어도 원래는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주님의 몸인 교회를 세워가는 일에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쓰지 않고 보관하기만 한다면 은사를 주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입니다. 또한 잘못 쓰면 오용이고 함부로 사용하면 남용이 됩니다.

 

그런데 그 고유한 은사들은 오로지 섬김을 통해서만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각자 받은 은혜의 선물이 무엇이든간에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답게 서로를 섬기는 그것을 사용하십시오”(벧전 4:10). 바울도 비슷한 말씀으로 성도들을 권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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