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길의 신약산책 http://blog.kcmusa.org/sky2o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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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
어느 날 예수님은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고 남을 멸시하는 자들을 향해 비유를 말씀하셨다. 사실 바리새인과 세리는 서로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일 정도로 경건생활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이던 자들인데 오히려 세리의 믿음을 칭찬하신 것은 그야말로 당시의 신앙전통과 관습을 뛰어넘는 파격이자 충격이었다. 하나님 나라 복음은 사람들의 이해와 선입견을 얼마든지 뛰어넘는다.
비유에 의하면 어떤 사람 둘이 동시에 성전으로 기도하러 갔다. 그 중 하나가 바리새인, 다름 아닌 하나님 신앙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인물이었다. 금식을 밥 먹듯 하고, 소득에서 정해진 것 이상 하나님께 드리는데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경건생활에 열심이었다. 그가 성전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하나님 제가 저 세리나 강도 같지 않은 것을 감사합니다……. 저는 금식과 십일조를…….”


한편, 세리는 세상에서 친구 하나 없이 외롭게 살다가 그 상처와 죄책감을 위로받고 싶어 성전을 찾았지만 엉뚱하게도 면전에서 “저런 세리 같지 않아서 감사합니다.”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고 말았다. 하나님 만나러 성전에 와서도 세리는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또 콤플렉스에 몸서리 칠 수밖에 없는 불쌍하고 하찮은 존재였다.


문제는 태도다!
그런데 하나님은 세리의 기도를 받으셨다. 왜냐하면 바리새인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큰 소리로 외쳤지만 결국 자신을 향한 기도였다. 누가복음 18장 11절의 “따로 기도하여”는 “자기를 향해 기도하여”라는 말의 번역이다. 그의 기도가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사람들과 자신을 향해 외치는 소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반면, 세리는 목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머리를 숙인 채 연신 가슴을 쳤지만 하나님께선 그를 의롭다고 선언하셨다. 둘 다 기도하러 성전에 왔고, 더구나 바리새인은 넘칠 정도로 경건생활에 열심이었음에도 의외로 하나님은 그를 물리치시고 대신에 부끄러운 죄인의 기도를 들으셨다.

바리새인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to be seen) 기도했다. 그들은 보란 듯이 대중들 앞에서 기도하기를 즐겼다. 기도를 하면서도 이렇게 자신의 선행과 율법준수의 열정에 관해 남에게 보이고 알리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나님이 구원하시려는 자는 의인이 아니라 상한 심령을 가진 자임을 왜 몰랐을까. 율법의 의로는 세리보다 조금 나을지 몰라도 그게 하나님의 의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함에 비하면 자신이 얼마나 추한지를 잘 깨닫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자기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는 게 아니라 죄인들과 비교하여 우월감을 즐기던 그들이 남을 멸시하여 정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이에 반해 세리는 하나님을 찾아(to seek God) 진심의 기도를 드렸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고 일러주신 하나님께서 세리가 가슴을 치며 자비를 빌고 용서를 구하자 그의 기도를 기꺼이 들어주셨다. 나름대로 의롭게 살려고 부단히 애쓰던 바리새인이 아니라 죄 가운데 살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자비와 용서를 빈 세리가 의롭게 여김을 받았다는 사실은 구원의 은총이 오로지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소중한 교훈이다.


성전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반대로 자기를 낮추는 자는 하나님께서 높이시는 법이다. 그런데 종교적인 헛된 확신에 가득 찼던 바리새인은 불행하게도 성전에 들어올 때와 비교하여 하나도 나아진 것 없이 그대로 성전 문을 나섰다. 하나님께서 외면하신 줄도 모르고 혼자 흐뭇해하며 의기양양했을 것이다. “입술로는 존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이사야 29:13)고 하나님께서 탄식하던 때와 흡사한 상황이다. 잘못된 종교적 확신은 오히려 악과 타락으로 인도하는 지름길이다. 스스로 의롭다고 여겨 회개는커녕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멀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못된 경건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기도는 청산유수여도 삶에는 거룩한 열매가 없는 것과, 이 바리새인처럼 경건에 대한 의식은 철저하지만 잘못된 기도로 하나님께 철저히 외면 받는 것 둘 다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생활의 경건과 성전에서의 기도가 일치하여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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