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길의 신약산책 http://blog.kcmusa.org/sky2o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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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가장 큰 상처는 의외로 가족들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우자든 자녀든 은혜를 모르거나 불친절할 때, 그리고 불신이 드러날 때 아픔을 느끼고 그게 깊어지면 오랫동안 마음에 상처로 남습니다. 적잖은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상처를 받아 마음의 아픔을 안고 삽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자녀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고 부모들에게 당부합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믿음의 선조들 역시 자녀문제로 골머리를 앓기는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행위들을 성경에서 살펴봅니다. 현시대에 자녀를 키우는 우리에게도 적잖은 교훈이 될 것입니다.

첫째, 과보호입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을 늘 어리다고 생각하여 그들 주변에 담을 겹겹이 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녀들에겐 자신들을 불신한다고 여겨 부모들을 원망하는 계기가 됩니다. 성경에선 야곱의 장인인 라반이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그는 야곱이 사랑하던 라헬을 주기 싫어 야곱과의 약속을 어기면서까지 그 딸을 지키려고 애씁니다. 그래서 야곱은 7년을 더 수고한 후에야 자기 사랑을 얻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세월을 보낸 다음 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엄청나게 충격적입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팔고 우리의 돈을 다 먹었다. 우리를 외인으로 여기는 것이 아닌가?”(창 31:15). 과보호는 부모의 사랑을 깊이 깨닫는 아주 적은 경우를 제외하곤 자존감을 해치는 어리석은 결과를 낳기 쉽습니다.

둘째는, 지나친 방임입니다. 방임과 과보호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결과는 비슷합니다. 마치 동전의 양면 같습니다. 지나친 방임도 자녀들로 하여금 부모가 자신들에게 무관심하고 사랑이 적다고 오판할 가능성을 크게 합니다. 현대 가정에선 대부분 자녀들에게 많은 자유를 허용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성장한 청소년들이 밖에선 선량한 이웃들에게 이유없이 화를 발산하며 피해를 입히곤 합니다. 분노의 함성으로 밤길을 헤메고, 대상도 정해지지 않은 타인들에게 복수를 꿈꾸며 자라는 청소년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릅니다. 성경에서는 다윗의 아들 중 아도니야가 그랬습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왕의 기력이 쇠하기 시작할 때 그를 배반하고 심지어는 살해하려고까지 했습니다. 평생 다윗왕의 충신으로 섬기던 요압을 자기 사람으로 끌어들이는데도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이 먼저 살해되고 맙니다. 그런데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아버지 다윗왕은 평소 그 아들에게 한 번도 서운하게 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왕상 1:6).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히 12:7). 잘못해도 꾸짖을 줄 모르는 아버지에게 아들은 영광보다 수치를 안깁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녀를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합니다(엡 6:4).

셋째, 자녀들의 감정에 큰 상처를 남기는 또 다른 경우는 편애입니다. 성경의 인물 중에는 이삭 부부가 그런 큰 잘못을 범했습니다. 이삭은 야곱보다 에서를 사랑하고, 반대로 어머니 레베카는 에서를 멀리하고 야곱만을 사랑했습니다. 그 결과 형제는 서로 원수가 되어 다투는 비극을 낳았고 부모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자녀들에게도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자녀들이 열등감을 갖게 되어 엉뚱한 경쟁심이 발동하면 그 때부터 형제는 원수가 되고 당연히 부모자식과의 관계도 허물어집니다.

넷째, 비난과 냉소적인 태도도 자녀들의 인성에 해악을 끼칩니다. 골로새서 3장 21절엔 자녀들을 분노케 하면 그들이 낙심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선 자녀들을 향해 부모를 잘 공경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상처받은 자녀가 부모를 잘 섬길 리 만무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녀들을 분노케 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도록 만드는 셈입니다. 교육학자들의 견해에도 귀 기울일 게 많습니다. 비판 속에 자란 아이는 책임감 없는 성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자신을 비난하며 자란 아이는 늘 다른 사람에게서도 흠과 결점을 찾습니다. 또한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아이는 자신을 격리시켜 스스로 외롭게 만들고 동시에 남을 신뢰하지 못하여 늘 불안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상실시대의 아버지들
현대의 아버지들은 과거에 누리던 권위에 손상을 입은 채 많은 도전에 직면하여 전통이 보장해 주지 못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과 수고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불과 30년 전엔 자녀의 생일에 선물하는 아버지가 27%였으나 지금은 90%이상이라고 합니다. 현대의 아버지들 중 75% 이상은 자녀와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출세와 진급을 거절할 의향이 있다는 여론조사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아버지 상실 시대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는 가까운 장래에 사라질 직업중의 하나가 아버지라고 우려하기도 합니다. 마치 공룡처럼 언젠가는 멸종될 위기에 처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좋은 아버지 역할 하기는 점점 어렵기만 합니다. 그러나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버지들도 힘들고 지칠 때 찾아갈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 아버지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어린 아이입니다. 방황하던 탕자도 결국 자신이 버린 아버지를 찾았던 것처럼, 그리고 아들에게 끊임없이 배반당할 때마다 찾아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엎드려 하소연하던 다윗처럼, 우리도 외롭거나 힘들 때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 곧 하나님께 나아가 위로와 격려로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된 아버지들에게도 하나님은 여전히 “아빠”이십니다.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갈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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