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하 교수의 영화로 보는 신학담론 http://blog.kcmusa.org/ryusih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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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완벽한 타인, 2018>

1984년 겨울 얼음이 꽁꽁 언 강원도 영랑 호수 위에서 아이들이 얼음낚시를 하기 위해 돌로 얼음에 구멍을 내기 위해 빙판을 깨기 시작합니다. 쾅쾅쾅 돌을 내리칩니다. 저러다 애들이 서 있는 얼음이 금이 가고 깨어져 빠질 것만 같습니다. 아마도 관객들은 저처럼 꼬마들이 물에 빠질 것 같은 걱정으로 잠깐 긴장을 했을 것입니다.

쾅 하고 풍덩 하는 소리가 났지만 다행히도 얼음은 갈라지지 않고 구멍만 내고 아이들은 그곳에서 물고기를 낚아 올립니다. 소년들이 얼음 위에서 낚시를 하며 호수 위에 떠 있는 달이 월식하는 것을 보다가, “호수가 바다니, 강이니” 하며 서로의 주장을 하며 다투는 모습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이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영화가 소년들이 장성해서 전개되는 이야기지만 이들이 벌거숭이 시절부터 오래 알고 지내온 허물없는 친구 사이임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장면이 이 영화의 시작과 결말의 복선이라 봅니다. 얼음이 깨질 것만 같은 위기 속에 재미있게 낚시를 하고 함께 물고기를 구워 먹는 장면은 이 영화의 다행스러운 해피엔딩을 예측할 수 있게 만든 은유적인 한 장면입니다.

어린 시절 얼음낚시 놀이의 장면으로 시작해 모두 어른이 되어 서로는 물론이고 배우자끼리도 친밀하게 지내는 사이가 되어 이들이 만납니다. 34년 전 그날처럼 월식을 맞아 석호 부부가 새 집으로 집들이를 하게 되면서 흥미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다들 사회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화목한 가정이 이루어 관계도 좋은 듯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행복해 보입니다. 그러나 모두 어느 정도 속사정이 있고 서로의 마음들이 달랐습니다.

속도위반으로 결혼한 성형외과 의사 석호와 교수인 예진 부부, 가부장적인 변호사인 태수와 전업주부인 수현 부부, 서로 굉장히 다정다감하고 잉꼬부부 티를 내는 수의사 세경과 사업가 준모 부부, 그리고 이혼 후 '민서'라는 애인을 둔 영배라는 친구가 혼자 집들이에 옵니다.

저녁 식탁에서 즐거운 추억을 나누며 대화를 하던 중 석호의 아내 예진이 게임을 제안합니다. “다들 핸드폰 올려봐.” 바로 각자의 핸드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통화 내용부터 문자와 이메일까지 모두 공유하자고 한 것입니다. 본의 아니게 흔쾌히 게임을 시작하게 됩니다. 재미로 게임을 시작했지만 이들의 비밀이 핸드폰을 통해 들통 나면서 처음 게임을 제안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상치 못한 결말로 흘러갑니다. 그들이 알아 왔던 친구들의 모습에서 서로에게 보여주지 못한 모습들을 발견합니다.

엄마 아빠를 닮아 착한 아이로 포장했던 딸의 가방에 콘돔이 발견된 이유이며, 발기가 되지 않는다며 도와달라는 수의사 아내의 옛 남친의 문자에 놀란 남편과 친구들, 새로 알게 된 여친이 밤마다 보내오는 야한 사진, 그것을 숨기려고 핸드폰을 서로 바꾸는 친구… 그 때문에 더 일이 꼬여버리는 코믹한 이야기들을 영화는 담고 있습니다. 식탁에서 일어나는 대화와 핸드폰을 공유하면서 듣게 된 전화상에서 나누는 문자와 대화뿐인데 영화는 지루함 없이 아주 재미있게 전개됩니다.

남의 삶과 이야기에 대한 인간이 가진 관심과 호기심 때문인지 결국 그 호기심과 장난은 친구간의 오해와 부부간의 갈등을 야기해 위기로 몰고 갑니다. 알지 않고 그냥 지내면 더 좋았을 것을 알게 되면서 가정과 친구 사이가 금이 갈 것 같은 모양이 됩니다. 이야기는 영화의 첫 장면처럼 그들이 서 있는 빙판은 다행히 금이 가거나 깨어지지 않고 재미있는 식사 후 월식을 감상하고 끔찍한 상상 속의 하루를 보내고 각자의 집으로 갑니다. 차 안에서 그동안 충실하지 못했던 배우자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표현하며 한편으로는 핸드폰에 날아온 문자 메시지를 아내 몰래 삭제하면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오늘날 핸드폰은 과학이라는 인간에게 선물한 신의 선물이자 판도라의 상자와 같은 호기심이 가득한 비밀이 담겨있는 개인 세계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생활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아바타(AVATAR)가 있는 사람에게는 아바타가 실제로 사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영화는 “사람은 누구나 3개의 나가 있다. 공적인 나, 개인의 나, 비밀의 나”라는 자막 내레이션을 통해 인간이 가진 여러 본성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인격이 있음을 말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는 이보다 더 많은 나가 존재합니다. 작게는 두 개, 많게는 여섯 일곱일 수 있습니다. 일곱 개라고 언급하는 이유는 인간의 인격을 이루는 성격은 둘 아니면 하나로 보여지만 그 감정은 일곱 가지 정도로 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표정과 말과 행동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이고 그것을 통일성 있도록 하는 것이 사람의 인격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과 행동 감정이 가능한 하나로 통일되도록 합니다. 그러지 않을 때 마음과 생각, 행동이 다를 때 이를 이중인격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얼굴은 무대이며, 그 마음은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던 인간의 본능과 욕구의 페르소나들이 인격이 되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대기실입니다. 생각이나 마음으로 수없이 연습한 말과 행동이 쉽게 무대로 나올 수 없는 이유는 우리의 인격이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그 인격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인간의 사회적 본성입니다. 사회적 본성은 관계성이라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관계성이 바람직하게 되어 있지 않을 경우 사람에게 문제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사람들이 이중적인 행동을 하기 쉬울 때가,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경우이거나, 홀로 있어 누구도 나를 보지 않거나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을 때입니다.

인간의 숨겨진 욕망 특히 인격의 그림자 욕구를 해결하고자 할 때 사람은 가면을 씁니다. 또는 나만의 공간으로 가게 됩니다. 오늘날 현대인에게는 과학의 신이 준 선물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과 판도라의 상자 같은 스마트 폰이 나만의 방의 비밀 열쇠입니다. 주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방의 잠금장치를 여는 순간 어떤 이에게는 재앙이 될 수도 있는 괴물이 나올 수 있음을 이 영화가 경고합니다.

오늘날 현대 문화와 문명은 무의식의 세계에서도 거래하고 장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인간의 마음 속 욕망과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상품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상세계의 등장과 함께 인터넷 혁명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이 예가 될 수 있습니다. 가상세계의 공간과 그 세계를 이루는 인프라는 인간의 내면의 다양성을 만족시켜 주기에 가상 세계만큼 환상적이고 적합한 곳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의 문화와 문명은 우리의 영혼을 그곳에서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처럼 우리의 영혼과 쾌락과 바꿀 수도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인격에 의해 통제되어 왔던 내면의 욕망과 그 내면의 욕구의 그림자가 그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대화하며 관계를 맺고 발전시키면서, 인간의 욕구와 욕망이 충동적인 감정의 모습에 그쳤던 것이, 이제는 가상공간 속에서 또 다른 나의 인격을 만들어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완벽한 타인>은 이와 같은 세계가 삶이라는 물리적 세계에 나왔을 때 있을 수 있는 지극히 작은 문제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뷰티풀 마인드>에서 주인공의 가진 조현병처럼 오늘날 현대인들은 현대 문명의 조현병의 증세를 하나씩 가졌다고 봅니다. 문명과 문화가 만들어가는 삶의 특징은 다양성과 복잡성입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이 한 공간에 동시에 존재할 때 우리는 그 곳을 세계라고 합니다. 또는 어떤 이에게는 그 세계가 엉망진창인 혼돈-카오스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삶을 정상적으로 행복하게 사는 비결 무엇일까요? 지혜자들은 단순함이라고 했고 그렇게 살았고 구도자들은 그들을 따르는 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하나의 인격으로 그 세상을 통일하든지 다른 세상을 정리해 버려야 합니다. 청소하듯 삶을 정리 정돈하는 과정이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 있도록 해야 합니다. 칼빈이라는 신학자의 평생의 좌우명은 코람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라고 합니다. 사람이 홀로 있을 때 내가 주체하지 못하는 또 다른 나가 마음에 등장해 욕망의 불춤을 출 때 그 마음의 무대 앞에 하나님께서 관람하고 계심을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류시하(월드미션 대학 성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