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하 교수의 영화로 보는 신학담론 http://blog.kcmusa.org/ryusih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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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atar, 2009 포스터

한국 가요 방송에서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가면을 쓰고 자신의 정체를 가리고 단지 노래 실력으로만 평가를 받는 노래경연 프로인데 잠깐 특별 프로그램이었다가 시청자들의 호응과 반응이 너무 좋아 정규 프로로 자리를 잡은 예능 프로그램입니다. 경연이 끝난 후 참가자들은 인터뷰에서 가면을 쓰자 자기도 모르는 자신감이 생겨서 노래를 더 잘 부를 수 있었다고, 그리고 가면을 통해서 자신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답합니다. 왜 그럴까요? 가면의 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가면은 일류가 만든 하나의 문명입니다. 가면은 21세기에서 아바타라는 모습으로 진화되어 인간으로 삶에 깊숙이, 그리고 독자적인 공간을 가지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아바타는 현대 인류의 삶의 모습 변화에 직접적인 관계를 하고 있으며, 영화에 담겨 표현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면”과 “아바타”는 인간 내면의 다양한 인격적 존재의 표현이라고 봅니다. 나아가 전자매체의 발전, 인터넷 문명의 발전으로 가상 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가면이 아닌 그 세계의 인격적 존재로 아바타를 등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현대인의 세계관과 문화의 스펙트럼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봅니다. 인간 인격의 다중성은 창조주께서 연출하는 데오드라마에 어떤 역할도 맡을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창조된 것 같습니다.

“아바타”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실제 이름을 대신해서 사용하는 가상의 인물을 “아바타”라고 합니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 세대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용어이지만 이 용어가 일반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아마도 이 영화 때문일 것 같습니다. <아바타 Avatar, 2009>는 <터미네이터>, <타이타닉>의 감독으로 유명한 제임스 캐머런의 SF영화로 역대 미국, 한국, 세계 전역에서 2009년 개봉 당시 최고의 흥행기록을 갱신하며 천문학적 수익을 올린 영화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외국영화로서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단순한 스토리이지만 입체적인 3D 영상미의 열풍을 몰고 온 영화라고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2150년대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인류는 환경과 자원의 한계를 해결하고자 우주 탐사를 해왔고 그 결과 판도라라는 행성을 발견했습니다. 판도라는 거대 암석이 신비하게 공중에 부유하고, 커다란 나무들과 숲이 밀림을 이루고 있는 신비롭고 자원이 풍부한 지구의 고생대와 너무나 유사한 행성입니다. 더구나 당시 인류가 개발한 언옵타늄이라는 귀중한 광물자원도 풍부한 행성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기가 인간에게 해로운 독성을 띠고 있다는 점입니다. 귀중한 원소와 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인간은 판도라 행성의 토착민 나비(Na’vi)족과 접촉하고자 합니다. 이들과 더 잘 교류하기 위해 인간과 나비족의 DNA를 복합해서 만든 나비족과 유사한 복제 인간을 만드는데, 바로 이 복제인간이 아바타입니다. 지구에서 DNA를 나눈 사람이 뇌파로 조종하는 말 그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손오공이나 홍길동 분신(分身)과 같은 존재로 사는 사람이 아바타(Avatar)입니다.

아바타는 나비족과 매우 흡사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습니다. 나비족의 거부감을 완화하고 판도라의 거친 환경에서 제대로 활동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나비족 얼굴색과 모습은 비슷하나 손가락 개수나 코의 모양이 다릅니다. 타 행성에 거주하면서 지구상의 특정한 사람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본래의 목적은 보호 장비 없이 현지에서 채굴작업이 가능한 인원을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탐사 임무나 원주민 나비족과의 외교 및 정탐 위해 먼저 하나를 만들어 행성에 보냅니다. 그래서 ‘톰 설리’라는 과학자의 아바타를 만들었는데 톰 설리가 죽자 쌍둥이 동생이 형을 대신해서 나비족 아바타를 조정하도록 선택됩니다.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하반신 마비로 과학자였던 죽은 일란성 쌍둥이 형의 아바타를 쓰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판도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나비족과 접촉을 하게 된 제이크는 오마티카야 부족의 여 전사 네이티리를 만나고 사랑하게 됩니다. 인간의 대표로 그들과 협조와 공조를 해나가려 하지만 부족의 반대에 부딪힙니다. 설득보다는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와 무계획적인 개발을 시작합니다. 이를 저지하려는 부족들에게는 무자비한 공격을 퍼붓습니다. 결국 인간들과 나비족은 전쟁이 일어나고 제이크 아바타는 네이티리와 함께 중재하려고 하지만 실패합니다. 그래서 아바타 제이크는 멸망 직전에 있는 나비족을 도와 인간들하고 맞서 싸워 승리를 쟁취한 후, 부족의 의식을 통해 정신이 완전히 아바타로 옮겨져, 완전히 나비족이 됩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행성의 이름이 판도라인 이유를 생각하게 하는 결말입니다. 신의 선물 판도라의 호리병의 뚜껑을 연 인간에게는 수많은 재앙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 안에 소망이 남겨져있었기에, 인간은 멸망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처럼 판도라 행성에 남겨진 제이크의 아바타가 결국 판도라 행성과 인류의 소망이 되어 모두를 살렸다는 메시지입니다.

왜 이 영화가 유행했을까요? 여러 가지 흥행요소가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점은 제목에서와 같이 “아바타”라는 개념의 대중적인 이해와 공감입니다. 아바타의 개념은 21세기 이후 4차산업화의 과정 중 인프라로 구축되기 시작한 가상세계 즉, 온라인 세계가 대중화를 통해 가상공간의 삶이 독립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SF영화가 흥행할 수 있는 이유는 허무맹랑한 내용의 전개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개연성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상상을 펼쳐나갔기 때문입니다.

‘아바타 정말 이것이 가능한가?’ ‘아바타’ 이 용어는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또 다른 나로 나를 대신한 다른 인격체로 존재하는 실체이고, 현대인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용어이며 기술입니다. 아바타는 새 이름과 내가 꾸민 가상공간의 주인공입니다. 실체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이버 공간에서는 실제이며, 실체가 있는 존재입니다. 현실의 세계에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가상의 아바타가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입니다. 온라인상에서는 말이나 영상 등으로 자기를 표현합니다. 이제는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으로 활동합니다. 온라인상에서 가면과 같은 존재라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름으로 변경하고 모습도 바꿀 수 있지만, 그 사람의 말과 태도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말과 태도가 자신의 감춘 자아나 꾸며진 자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의 아바타의 인격은 자기 자신의 일부입니다. 현실 세계에서 표현이 되지 않았을 뿐이지 그래서 이 영화에서도 외계 행성에 살 수 있는 아바타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아바타를 만들 때부터 결정된다는 설정을 하고 있습니다. 아바타가 로봇이 아니라 인격화 된 다른 나 자신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만 그 아바타는 본질적으로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그 아바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인공을 죽은 형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쌍둥이 동생으로 설정한 것이라 봅니다.

이런 아바타가 온라인상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우리의 사회적인 삶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대표자라는 개념입니다. 아주 현실적인 예로 내가 지지하는 국회의원이라든지, 대통령 후보자라든지, 영화의 주인공 스타나 연예인 아이돌이 그 예라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생각과 마음이 통하는 인물에게 무조건적인 지지를 하는 사람들이 그러한 아바타를 사실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정치적으로는 노사모, 박사모라든지, 아이돌 팬클럽이라든지, 이들은 자신의 지지자들 또는 대표자들이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신을 대신하는 아바타 역할을 하는 대리자가 욕을 먹는다든지 공격을 받게 되면 이치를 따지지 않고 보호하고 방어하려는 성향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자신이 원하지만 할 수 없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대표하는 대리자를 아바타로 삼은 사람은 결국 객관성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 아바타를 통해서 현실의 여건을 극복해서 다른 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바타의 실패가 자신의 실패로 투사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내가 지지하는 아바타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인물이냐가 그 사람의 어떤 인격과 잠재적 성향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취향대로 내가 어떤 아바타를 선택하겠지만 때론 여러 아바타 가운데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어떤 아바타가 나를 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화에서도 야생말과 같은 하늘을 나는 특별한 날개 달린 공룡과 주인공의 교감을 통해 선택하고 훈련하는 것을 보여주는 모습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바타가 그런 것일 수 있습니다. 마스크처럼 융의 정신분석학에서 설명하는, 내가 가지고 있지만 모르는 페르소나의 하나라 볼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아바타 – 또는 어떤 인물을 나의 아이돌로 택하느냐에 따라 나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아바타가 나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누가 나의 아바타냐, 롤 모델이냐가 그 사람의 미래의 나를 결정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 이러한 유사한 성격을 가진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상”이라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대상으로서, 신으로서의 우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나를 지배하게 하지 말라는 뜻으로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바타는 곧 종교적이고 수동적인 우상숭배와 같은 아이돌은 아닙니다. 좀 더 적극적인 나 자신이 투영된 우상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상은 그 우상이 파괴되면 끝이 납니다. 그러나 아바타는 나의 선택으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다른 나이기 때문에 그 우상과 같은 아바타가 파괴된다고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아바타 안에 담긴 나 자신이 파괴되어야 사라집니다. 그래서 아바타는 때론 우상보다 더 악한 적그리스도와 같은 죄인의 괴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적그리스도와 같은 자아의 아바타에서 자신을 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아가 아니라 죄에 속한 자아의 아바타를 죽이라는 뜻이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 아바타가 로봇이 아니라 인격화 된 다른 나 자신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만, 그 아바타는 본질적으로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 아바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화에서 아바타의 실제 주인인 주인공의 형의 아바타를 조정하기 위해서 영화는 형과 같은 유전자를 가진 쌍둥이 동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합니다.

그러나 여기는 표현되지 않았지만 인격조차도 복제될 수 있다는 가정이 숨겨져 있습니다. 인격과 인성의 복제 사실, 이것은 과학의 영역 이전에 교육을 통해서 인간은 그것을 시도했습니다. 인격을 복제한다는 말이 좀 과하긴 하지만 그것은 인격을 발전시켜 이상적인 모습으로 담아내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학교라는 것을 만들어 사회가 필요한 인성과 자질과 기술을 가진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인재라는 말이 뜻하듯이 사람 자원이라는 뜻입니다. 자원이란 공통적인 요소와 특성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사회가 필요한 요소를 사람들에게 심어 넣는 과정을 교육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창조주는 인간을 개별적으로 특별하게 창조하셨지만 또한 동일한 요소와 특성을 담을 수 있도록 teachable 한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합니다. 인간의 상상력에서만이 아니라 성경의 계시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입니다. 인간은 학습과 교육을 통해서 닮아가는 능력과 그것을 통해서 사회적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인간과 다른 자연 피조물과 다른 점이라 봅니다.

자신의 이상적인 모습을 상상하고 모습을 만들어내기를 원하는 욕망과 능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자기 복사를 통해서 확장성의 욕구는 생산의 욕구 내면에 담긴 인간의 본능으로 자리잡고 있다고 봅니다. 여성이 출산을 통해 탄생한 자녀의 모습 그 자체에서 2세를 통한 자기 확장성의 모습으로 본다면, 남성은 자신의 뜻과 생각을 자녀들의 삶을 통해서 자신의 확장성을 이루어나가기를 원하는 성향이 여성보다 더 강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제 가상의 세계에 보여진 욕구를 하나의 모습화 된 아바타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아바타는 이러한 욕구가 현실 세계와 링크되어 있어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바타> 영화에서처럼 현실세계와 실존이 연계되어 아바타의 생존과 실존이 아바타의 소유인의 존재에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오늘날 사회에서도 가상공간 온라인과 웹상에서 아바타의 불법적 행동을 사회는 아바타에게만이 아니라 그 실제 주인에게 책임을 묻을 묻습니다.

한국 대선 정치활동 과정에서 등장한 아바타 “혜경궁 김씨”의 존재가 트윗과 카카오상의 불법적 비도덕적 표현에 대해 그 실제 주인의 누구인가를 두고 정치인들이 곤혹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명예훼손, 선거법 위반과 같은 실정법정 소송이 제기된 이유도 그 한 단면입니다. 아바타 뒤에 자신의 실체를 숨길 수 있기에 사람은 용기있게 행동하고 말하고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면이 자신의 모습을 숨기고 보여지는 모습의 기능에 목적과 의미가 있다면, 아바타는 가면과 유사한 면도 있지만 아바타는 독자적인 인격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가상공간에서 독립된 인격체로서 존재하지만 실제 사람의 통제와 지시를 받기 때문에 인간이 지니는 본성은 다릅니다. 실제 주인의 본능과 인격을 반영하기도 하지만 무의식 세계를 포현하거나 학습된 인간의 모습을 담아내는 경향이 더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바타는 인간의 본성과 속성의 그림자의 영역의 자신을 표현하는 완벽한 존재라 볼 수 있습니다.


류시하(월드미션 대학 성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