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하 교수의 영화로 보는 신학담론 http://blog.kcmusa.org/ryusih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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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7월에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변산, 2018>이라는 영화는 “고향”이라는 모티브와 “아버지”라는 모티브, 그리고 “나쁜 남자” 모티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서 하나의 모티브로 자연스럽게 통합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찾아가고픈 그리운 고향이 아니라 잊어버리고 싶은 고향, 그리운 어머니가 있는 고향이 아니라, 나쁜 남자인 아버지가 있는 고향에서 영화는 전개됩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고향 시골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온 문학소년 학수는 그의 시적 재능을 살려 아마추어 래퍼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삶이 그렇게 녹록치 않고 뜻대로 되는 것이 없습니다. 낮에는 주차장 관리인으로, 밤에는 편의점 알바로 생활을 하며 그래도 꺼지지 않는 문학적 소질을 살려 그의 고된 삶과 인생을 랩으로 만듭니다.

학수는 최고의 래퍼가 되기 위해, 그리고 많은 상금을 따기 위해 래퍼 경연대회에 나갑니다. 하지만 번번이 결선에서 탈락합니다. 6회에 걸쳐 아깝게 떨어집니다. 그러던 중 학수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고향의 한 병원에서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졌다고 연락을 받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한편 안쓰러움을 가지고 있던 학수는 친구들의 강권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고향으로 내려갑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하나도 좋은 게 없었던 학수에겐 고향은 가난, 집 나간 아버지, 난봉꾼 아버지, 엄마의 장례식에도 올 수 없었던 건달인 아버지, 그래서 가난해서 보여줄 것이 노을밖에 없는 폐항이었습니다. 그래도 학수에게도 학창시절 백일장에서 문학상을 받을 만큼 촉망받는 시절이 있었고, 풋풋한 고교시절 그가 좋아하는 여학생도 그를 좋아했던 아련한 추억도 있었습니다.

그가 고향에 내려온 것은 사실은 문학소년이었던 시절, 그를 좋아했던 선미가 자기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같은 병실에 계시는 학수 아버지의 부탁으로 고향으로 불렀기 때문입니다. 시한부라는 진단을 받은 건달 아버지가 자신의 사정을 속이고 아들 학수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자 학수와 시간을 가집니다. 학수는 마음으로는 미워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병원에서 같이 지내는 가운데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애증의 상처를 치유하고, 가족애를 회복합니다. 그 과정을 코믹한 사건들과 랩과 시로 그려 넣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많은 관심에도 불구하고 흥행에는 그렇게 성공했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영화라는 단편성 미디어에 많은 메시지와 모티브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였다면 아마도 더 좋았을 것입니다. 고시원 생활을 하는 오늘날 청년들의 아픔, 알바를 하면서 취직을 준비하는 청년, 고향을 떠나 꿈과 성공을 찾아 나선 이들의 마음, 기억하기 싫은 사람들, 실망, 가족애, 아버지, 어머니, 첫사랑, 그리움, 친구, 고향, 아름다운 풍광, 시, 래퍼의 삶, 등 많은 이야기의 모티브를 안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우리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모티브는 나쁜 남자와 아버지입니다. 영화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의 결말처럼 세상엔 나쁜 남자는 있어도 나쁜 아버지는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집 나간 건달이었던 아버지가 고향으로 돌아오고, 죽기 전이라도 비록 건달이라도 자식에게는 진실된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고 싶었음을 보여줍니다.

세상에는 나쁜 아버지들이 있습니다. 자녀를 학대하고 가정을 버리고 상처주기를 넘어 자녀와 가정을 파괴하기까지 하는 아버지도 있습니다. 그래서 간혹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어렵고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아버지는 아버지이기를 거부하는 아직 나쁜 남자일 뿐입니다.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그의 아이들을 자녀로서 사랑하면서 아버지가 되어갑니다. 자녀에게는 아버지의 사랑과 생명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아버지에게는 자녀를 향한 사랑이 심겨져 있습니다. 나쁜 아버지는 나쁜 남자의 껍질 속에 그 사랑의 씨앗이 움터나지 못했을 뿐입니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나쁜 남자든 좋은 남자든 아버지의 사랑이 남자의 껍질을 뚫고 나올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버지는 남자가 아니라 아버지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라고 계시합니다. 그래서 간혹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왜 하나님께서 남자여야만 하는가? 여자는 아닌가?라고 질문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남자라고, 그리고 여자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라고 가르칠 뿐입니다.


류시하(월드미션 대학 성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