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시하 교수의 영화로 보는 신학담론 http://blog.kcmusa.org/ryusih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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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 1955> 제임스 딘(James Dean)을 나쁜 남자, 반항아의 아이콘으로 만들며 단번에 스타덤에 올려놓은 클래식 영화입니다. 엘리아 카잔이 노벨 문학상을 탄 존 스타인벡의 작품 "에덴의 동쪽"(John Steinbeck, 1952)을 1955년에 영화로 만든 작품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을 모티브로 아벨을 죽인 가인처럼 <에덴의 동쪽>에서는 아담의 큰 아들 아론과 동생 칼(칼렙)이 등장합니다. 영화에서는 큰 아들이 아니라 동생 칼이 카인처럼 야생마와 같은 반항아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반면 형 아론은 항상 아버지의 기대를 만족케 하는 바른 아들로 등장합니다. 스탠포드 대학을 다니며 이상세계를 꿈꾸며 성직자가 되려 하는 아론은 늘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아들이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질투하듯 영화에서는 동생 칼은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해 형 아론을 질투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버지 아담은 사업으로 많은 돈을 잃어버립니다. 이를 알게 된 칼은 아버지의 잃어버린 돈을 돌려놓기 위해 사업을 하게 됩니다.

전쟁이라는 기회를 잘 활용해서 칼은 사업에 성공해서 아버지에게 번 돈을 선물로 주지만, 아버지는 전쟁을 기회 삼아 번 깨끗하지 않은 돈이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되돌려주라고 말하며 받기를 거절합니다. 아버지가 자기가 선물로 드린 돈을 거절하자 칼은 아버지가 왜 거절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분노했습니다.

이에 칼의 분노는 아론을 향한 질투로 변합니다. 형이 비참해지고 무너져 버리게 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자기에게 다른 사람과 달리 따뜻하게 대해 주는 형의 여자 친구를 빼앗기 위해 사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우연히 먼저 알게 된, 죽은 줄로 알고 잊었던 사랑하는 어머니의 존재를 형에게 알려줍니다. 자신들을 버리고 가까운 마을에서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그곳에 데려다 줍니다.

충격을 받은 아론은 술에 취해 돌아와 다음날 입영 열차를 타고 전쟁에 지원 입대합니다. 자신 때문에 전쟁터로 가버린 아론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어머니 케이티는 자신의 재산을 아론에게 남기고 자살합니다. 불행히도 아론은 전쟁터에서 죽고 돌아오지 못합니다. 서리가 내리고 또 그 위에 눈이 내리듯 아들의 전사 소식을 받은 아버지 아담은 뇌출혈로 쓰러집니다.

칼이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은 더 심각해졌고, 아픔과 상처는 더 커져버렸습니다. 칼은 자신 때문에 엄마도, 형 아론도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해서 죄책감에 멀리 도망치려고 합니다. 반항아로서 사람들이 멀리 할 때 자신을 늘 가엽게 여기며 애정으로 대해 주었던 형의 약혼자와 같았던 여자친구, 이제는 사랑하게 된 아브라에게 함께 고향을 떠나자고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는 칼을 설득하여 집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그리고 칼은 아버지에게 자신 때문에 형의 죽음과 이 모든 고통이 생겼다고 고백합니다. 아버지는 침대 곁에 서있는 칼에게 무언의 용서의 눈빛과 함께 팀셀(Timshel)이라는 말을 남기며 소설과 영화는 끝이 납니다.

아마도 이 영화는 근대에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의 원형을 모방 발전시켜서 나쁜 남자 신드롬을 일으키며 반항아의 아이콘을 만들어낸 성공적인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모방을 통해 새로운 유행과 상징을 만든 것을 말합니다. 모방을 통해 새로운 창조가 때론 우상화되어가는 과정인데 미메시스와 시메큐라의 주제로 추후에 설명할 기회를 갖겠습니다.

왜 여성들은 나쁜 남자에 대한 로망이 있을까? 그것은 <에덴의 동쪽>에서와 같이 나쁜 남자의 삶과 이야기에는 부당하고 부조리한 삶에 대한 원망과 분노, 그리고 범죄, 용서와 회복의 슬프고 아름다운 결말이 담겨 있다는 기대와 믿음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나쁜 남자의 이야기의 여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운명적 역할을 상상하기 때문입니다.


류시하(월드미션 대학 성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