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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하 교수의 영화로 보는 신학담론 http://blog.kcmusa.org/ryusiha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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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서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선택받지 못한 자'의 아픔과 사연을 통해 하나의 신학적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택하시는가?"라는 질문입니다. "누구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시는가?" 이것은 오랜 세월 신학이 다루어 온 문제이자, 주제였습니다. 칼빈과 같은 신학자는 하나님의 선택에는 조건이 없다면서, 무조건적 선택으로 설명합니다. 그러나 그 무조건적 은혜의 선택은 하나님의 작정에 달렸지, 선택받는 자의 의지와는 상관없다고 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의지나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한 행실도, 믿음을 선택하는 그 바람도 선택받는 구원과는 직접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너진 건물의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있던 아이들처럼 엄마의 선택에 따라 택해지는 것입니다. 아이가 스스로 살아나올 수도 없고 자기를 택해 달라고 말할 수없는 것처럼 구원 앞에서 인간은 받아들임, 그 외에는 선택이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택함 받지 못한 자의 아픔과 상처는 누구의 몫이며, 책임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마땅히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예정된 자만이 택함을 받는다는 것이 그 답이며, 개혁주의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시는가? 이 질문은 칼빈의 예정설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질문되어온 신학사의 한 담론이었습니다.

이 담론을 목회의 현장에서 신학적 답변을 이끌어낸 청교도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드는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구원은 조건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사실 그분께 가까이 있는 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더 있다"라는 것입니다. 마치 비 오는 날 벼락이 임의로 땅에 내리치지만 높은 탑, 뾰족한 곳이 벼락 맞을 확률이 더 높은 것과 같은 이치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높은 곳이어서가 아니라, 높은 곳이기에 천둥 번개가 내리칠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예정론이란 고난으로 점철된 부조리한 현실에서는 하나를 먼저 구원할 수밖에 없는 현실과 하나님의 섭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재난과 종말의 메타 나레이티브가 시사하는 것입니다. 영화에서처럼 둘 다 구원하기를 원하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현실이나, 미래의 종말이나 삶에는 선택이 항상 존재합니다. 그 선택에 대한 섭리와 예정은 하나님의 치밀한 계획과 작정이라고 설명하기보다는 누가 그분의 곁에, 그분의 눈앞에 가까이 있는가의 사실이 엄마의 마음을,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인이라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업을 받을 자이기에 먼저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족의 미래를 위한 소망을 이룰 자를 먼저 택했다는 현실입니다. 이 영화에서 아들을 택하는 엄마의 선택을 같은 동양인으로서 조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딸아이에게는 더 깊은 상처를 줍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습니다. 어쩌면 이보다 더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를 선택하지 않았기에 부모는 끝까지, 아니 평생 그것에 대한 자책과 아픔을 지고 삽니다.

하나님의 선택에도 이와 같은 마음이 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구원은 조건 없는 선택이지만 제한적이라고 계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또 다른 장에서 택함 받은 자와 택함 받지 못한 자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라고 명확히 말씀하십니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머리로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읽는 것입니다. 이 모순적인 표현은 아버지로서 부모의 마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 후반절의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는 말씀이 마치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어머니 마음, 두 아이 모두 살리기를 원하지만 결국 한 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의 어머니의 뜻과 마음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결말처럼 간절히 구원을 바라는 자들에게도 마침내 구원이 있다고 믿습니다. 다시 사는 삶과 그 삶의 회복과 화해가 먼저 선택받지 못했지만,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먼저 택함 받지 못해서, 하나님의 계획과 뜻, 그리고 그 마음을 알지 못해서 하나님과 화해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가 찾아가면 그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사랑과 기다림으로 반기실 것입니다. 혹 하나님께서 선택과 운명, 현실과 한계라는 상황에서 나와 당신이 먼저가 아니어서 우릴 두고 가셨다면, 아직도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저 그분께 가면 됩니다.




류시하 (월드미션 대학 성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