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잔정 박사의 정신건강 칼럼 http://blog.kcmusa.org/park29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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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를 내가 처음 만났을 때에 그는 오십대 중반의 시공무원이었다.

도로관리 일을 착실하게 하느라 무릎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멕시칸 이세였다. 젊은 시절에 시작된 불안증세와 가끔 경험하는 공황장애 발작 때문에 나를 찾아왔다면서 그는 수줍게 웃었다.

지난 몇 년 간 자신을 열심히 상담해 주던 치료사, 크리스티나가 결혼 때문에 타주로 떠나면서, 꼭 나를 찾아가라고 했다면서도 약물복용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혹시 약에 중독될까봐 겁나고 또한 여러 가지 부작용들에 대해서 많은 나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란다.

가족 사항을 알아보니 멕시코에서 가난을 견디지 못한 그의 아버지가 혈혈단신 미국으로 오셔서 열심히 일을 하여 자신의 어머니를 모셔왔고, 자신을 비롯한 9남매가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모두 행복한 생활을 누린다고 했다.

“아마 우리가 그대로 멕시코에 있었다면, 저는 마약을 다루는 범죄자가 되었거나 굶어죽었을 거예요.”

그런데 본인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저 혼자 살아가는데도 스트레스 때문에 불안증이 심한데 결혼까지 하면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어요?”라며 되묻는다.

“우리가 살면서 부딪치는 모든 일이나 변화가 스트레스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그 중에는 좋은 스트레스도 있지 않을까요? 가령 새 집을 장만한다든가, 직장에서 승진을 하는 경우 등이 좋은 예지요. 아파트에서 편히 살던 분이 큰돈을 마련해서 새 집을 사는 순간부터 가구 마련, 마당의 잔디 깎기, 페인트 칠 등 얼마나 골치 아픈 일이 많아집니까? 그러나 이런 것들이 나의 인생을 발전시키고 행복을 향한 첫 걸음이라고 다짐한다면, 보람되게 느끼겠죠? 만일 스트레스 걱정 때문에 승급을 거부한다면 직장 생활도 차차 재미없어지겠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책상 위에 있는 두뇌 모형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우리 몸 안에 있는 심장, 폐, 간 같은 장기들과 마찬가지로 두뇌도 하나의 장기입니다. 이 장기 내부에 있는 각종 신경 세포들에 의해서 우리는 공부, 기억, 판단 등 고도의 사고 기능도 하지만 위험을 느끼는 순간, 도망치거나 싸워야 한다는 종족보존의 동물적 반응도 일으키게 하지요. 그런 순간에는 마음이 불안해지고, 심장이 마구 뛰며, 호흡이 빨라지고, 근육이 강직되며 눈동자도 커지는 현상이 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체질적으로 이런 현상이 남보다 훨씬 자주 옵니다. 뇌 세포끼리 정보를 전해주는 화학 물질을 뇌전파 물질(neurotransmitter)이라고 하는데, 엔돌핀, 도파민, 쎄로토닌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우리가 신나게 춤을 추거나 아름다운 음악에 심취하게 되면 이런 물질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따라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가족력, 또는 태양의 양이 감소되는 겨울철 등) 쎄로토닌의 양이 감소되는 경우에 우울이나 불안증상이 온다고 추측됩니다. 그래서 쎄로토닌의 균형을 맞추어주는 프로잭이나 졸로프트 같은 항우울제를 쓰게 되면 불안 증상의 치료는 물론 작은 양을 계속하는 동안 예방이 가능해집니다. 이런 항우울제 약물은 중독되기 쉬운 아티반이나 제넥스 같은 안정제들과는 다른 것들이라 절대로 중독이 되지 않습니다.”

“우선 그간 믿고, 의지했던 크리스타나 만큼 유능하고 스페인어나 남미 문화에 익숙한 상담자를 찾아드리겠습니다. 또한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의 환경을 더욱 즐겁고 여유 있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간 열심히 성당 일에 봉사하시던 것도 계속하시고요.”

호세가 나의 충고대로 항우울제 약물을 쓰기 시작하면서 상담 치료와 환경의 개선, 영적 도움을 받은 지 이, 삼 년이 되던 어느 날 그는 젊은 여성의 사진을 들고 왔다.

“몇 달 전에 멕시코에서 저의 부모님 댁으로 놀러 온 이 처녀를 만났는데 저처럼 수줍음이 많지만 결혼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39세의 신부는 곧장 아기를 갖기 원했고 육십이 가까워 오는 남편과 자주 언쟁을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각종 검사는 물론, 배란기에 맞추어 열심히 아기 만드는 작업을 하다가 지친 이 신혼부부는 위기에 빠졌다. 임신에 실패한 신부의 우울증상이 심해지자, 호세는 그녀에게 정신과 치료를 권하였다.

‘내가 미쳤느냐?’고 화를 내는 젊은 아내를 그는 간곡히 타일러서 자신처럼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게 하며 친정 식구와 그녀의 친구들도 불러와서 주위 환경을 즐겁게 하였다. 그간 계속했던 기도 생활도 더욱 열심히 하였다.

오늘 호세는 활짝 웃으며 나를 찾아왔다.

“35년간 일했던 직장에서 은퇴를 하니 아주 기쁘네요, 최근 저의 아버님이 사망하시기 전에 저와 아내가 열심히 돌보아 드려서인지 아주 평안하게 숨을 거두시었어요. 저는 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컸었는데, 이제는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가 웃으며 나서는 나의 방 창문으로 보이는 노을이 오늘 따라 아름답다.


수잔정 박사(카이저병원 소아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