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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의 구약 산책 http://blog.kcmusa.org/kwakgunyong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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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목사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신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해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에서 마쳐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1985년에서 1993년까지 서울향린교회에서 전도사, 부목사로 일하며 소중한 두 분의 스승인 고 안병무 선생님과 홍근수 목사님을 만나 신학과 목회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1993년 미국으로 건너와 줄곧 나성향린교회(전 선한사마리아인교회)를 목회하면서 클레몬트대학원에서 구약학 박사과정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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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2006년 3월

“…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은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창세기 12:13, 개역 개정판).

Say you are my sister, that it may go well with me because of you, and that my life may be spared on your account (창세기 12;13, RSV).

 

 

1

 

아브람 (후에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지만 아직은 아브람입니다) 은 참으로 독특한 인물이요 연구해볼 가치가 있는 인물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어느 정도는 그렇긴 하지만 그는 정말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읽는 이로 하여금 ! 이 사람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이구나. 난 암만 해도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없을 것 같아.” 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가도 금방 애계, 겨우 이 정도의 인물이었어?” 라고 생각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참으로 고맙게도 성경은 읽는 이로 하여금 절로 겸손하게 만들기도 하고 또 절로 자신감을 갖게도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양면이 있다는 것이지요.

지난 번 글에서는 아브람이 하나님 말씀 하나만 의지하여 장차 하나님께서 지시하실 땅을 향해 무작정 고향을 등지고 떠난 이야기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에 아브람처럼 응답하려면 대단한 믿음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부름에 망설임 없이 즉각 응답했을 정도로 당찬 믿음과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가나안 땅에 당도했습니다. 그는 우선 벧엘 근방에 이르러 거기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후 점점 남방으로 이동했습니다 (창세기 12:8-9). 곧 애굽 땅으로 점점 가까이 갔던 것입니다. ‘떠돌이 기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지만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간 것은 그래서가 아니라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의 역사 기록을 보면 주전 1900-1700 년 사이에 기근 때문에 가나안을 비롯한 주변 여러 지역 사람들이 식량을 구하려 애굽으로 내려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아브람도 이들 중 하나였다고 보여집니다.

그런데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아브람은 아내 사래에게 쉬이 납득되지 않는 제안을 하나 했습니다. 이런 제안이었습니다.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은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창세기 12:11-13).

I know that you are a woman beautiful to behold; and when the Egyptians see you, they will say, `This is his wife'; then they will kill me, but they will let you live. Say you are my sister, that it may go well with me because of you, and that my life may be spared on your account.

 

 

하나님의 말씀 하나 붙잡고 고향을 등졌던 사람이 보여주는 모습치고는 비겁하고 치졸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사래같이 아리따운 여인을 아내로 갖고 있는 것을 애굽 사람이 본다면 그녀를 차지하기 위해 남편인 아브람을 죽이려 할 터이니 아내가 아니라 누이인 척 하라는 얘기입니다. 아브람의 처지가 가련하긴 했지만 그래도 남의 아내를 빼앗는 짓을 할 정도면 평민은 아니고 고관이나 왕쯤은 돼야겠지요. 아니나 다를까 아브람 일행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사래의 미모를 보고 그녀를 바로의 궁전으로 끌어들인 사람들은 애굽의 고관들이었습니다 (15). 바로는 사래를 보고 한눈에 반했던 모양입니다. “이에 바로가 그녀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라고 했으니 (16) 얼른 재물을 주고 그녀를 빼앗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얘기는 아니지만 짚고 넘어가고 싶은 얘기는 사래의 미모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브람과 사래의 나이 차이는 10년이었고 아브람이 고향을 떠났을 때가 75세였다고 했으니 그때 사래는 65세였습니다. 그러니 애굽에 갔을 때 사래의 나이는 65세에서 70세 사이였겠지요. 그녀는 이삭을 90세에 낳았는데 이는 현대인의 눈에는 말할 것도 없고 고대인의 눈에도 기적이었습니다. 만일 그때 나이가 70이었다 해도 마찬가지로 기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70세가 된 사래의 미모에 온 애굽 사람이 감탄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외모가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이란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 애굽 사람이 똑같이 사래의 내면의 아름다움에 반했을 리는 없으니 여기서 말하는 미모는 외적인 아름다움을 가리킨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70세가 다 된 노인의 미모에 온 애굽이 감탄할 수 있겠습니까. 마치 창세기 12장은 사래의 나이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이 문제는 수많은 해석자들을 곤혹에 빠뜨렸습니다. 분석적이고 이성적인 유럽의 성경 학자들이 제안해서 지난 1-2 세기 동안 마치 정설처럼 여겨져 왔던 소위 문서가설에 의하면 모세 오경은 쓰여진 연대도 서로 다르고 신학도 서로 다른 네 개의 문서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소위 J, E, D, P라고 하는 문서가 그것인데 이 중에서 연대나 나이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전하려 노력했던 문서는 사제계 문서’ (P, priestly document) 라는 것이지요. 창세기 12장은 P가 아니라 J 계열의 문서로서 아브람과 사래의 나이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 설명이 사래의 미모에 대한 의혹을 해소해줍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나은 대답이 아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글에서 가급적 문서가설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가설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는 좀 설명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조차 하지 않으렵니다. 이 가설을 처음 접했을 때 저는 두 가지 점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칼로 이렇게 마음대로 쪼개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문서가설은 제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칼로 난도질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둘째로, 하지만 이 가설을 따르니 그 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었기 때문에 사실 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정말 그럴듯했습니다! 이 가설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천재로 보였고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한 동안 저는 두 번째 충격으로 첫번째 충격을 누르면서 문서가설을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정설로 받아들이고 그 방법을 따라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그 가설이 매우 그럴듯하고 타당성이 있어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불완전하고 불안정한 가설일 뿐임이 여러 가지 면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텍스트를 잘게 쪼개가면서 읽기보다는 전체적이고 통전적으로 읽어야 텍스트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가설이 맞더라 하더라도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성경은 잘게 쪼개져 있는 성경이 아니라 탄탄하게 엮여 있는 성경입니다. ‘구약산책첫 번째 글에서 저는 성경의 축자영감설을 믿지 않지만 성경에 있는 글자 하나도, 점 하나도 이유 없이 거기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하물며 성경이 지금의 형태로 엮여 있는 데 이유가 없겠습니까! 나누고 쪼갤 수 있다는 사실에만 마음을 쓰지 말고 지금 형태로 엮여 있다는 사실에도 똑같이 마음을 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2

 

곁가지가 너무 길어졌습니다. 다시 우리의 텍스트로 돌아오겠습니다. 아브람과 사래가 애굽에 내려가서 겪은 이야기는 바로 앞에 나오는 이야기, 곧 아브람과 사래가 하나님 말씀 하나만 붙잡고 고향을 떠난 이야기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야기입니다. 곧 의도적으로 이 두 이야기가 병렬되어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 목적은 아브람의 양면을 모두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굶주림을 모면하려고 애굽에 내려간 아브람은 또 다른 죽음의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그는 사래의 미모에 반한 애굽인이 자기를 죽이고 사래를 아내로 차지할까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래에게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했습니다. 이에 대한 사래의 반응을 성경은 전하지 않습니다. 침묵은 곧 동의였을까요? 사래가 자발적으로 동의했든 아니면 억지로 그렇게 했든 어쨌든 사래는 바로의 궁전으로 이끌려 들어갔습니다. 바로는 사래가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바로는 그녀로 말미암아’ (개역 개정판은 그로 말미암아로 번역하여 의미가 불분명하지만 히브리 원문에는 가 여성으로 되어 있으므로 사래를 가리킴에 분명합니다) 아브람에게 큰 재물을 하사했습니다. 

좀 째째해 보이지만 따져보겠습니다. 성경은 사래가 바로의 궁전에 들어가 며칠을 머물렀는지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로가 사래를 보자마자 아브람에게 재물을 건넸겠습니까? 물론 1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사래의 일로 인해서 바로의 그의 집안에 큰 재앙을 내렸고 바로는 아브람을 불러 야단을 친 다음에 그와 사래를 풀어줬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풀려났을 때까지 사래는 며칠인지 모르는 불특정 기간을 바로의 궁전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 일어났음직한 일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고 싶지 않지만 말하고 싶지 않은 바로 그 일이 십중팔구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 일은 보통 일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여권이 별볼일 없는 시대였다고 해도 훗날 신앙의 조상이 될 아브람이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기 위해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팔아 넘긴 셈이니 보통 문제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브람의 비겁한 행동은 당연히 후대의 해석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아브람의 비겁한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려 했고 합리화하여 납득시키려 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성경 안에서도 이런 시도를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0장을 보면 이와 똑같은 일이 다시 한 번 벌어집니다. 이번에는 애굽의 바로가 아니라 그랄 왕 아비멜렉이란 점과 흉한 일이 벌어지기 전에 하나님께서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경고하셨으므로 아비멜렉이 사래를 가까이 하지 않았다는 점이 다르지만 (그래서 역설적으로 바로의 경우에는 사래를 가까이 했을 수 있다는 얘기가 되지요) 전체적인 사건의 진행은 우리 텍스트와 비슷합니다. 아비멜렉이 다음날 아침에 아브라함을 불러 왜 그런 짓을 했느냐고 묻자 아브라함은 사래가 정말로 자기의 이복 누이라고 말합니다 (12). 스파이서 (Speiser) 라는 학자의 주석에 따르면 후리족 사람들에게 아내의 지위를 높여주기 위해서 누이로 입양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로써 아브라함은 이번 사건에서 뿐 아니라 애굽에서의 사건에서도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않은 셈이 되고 이로써 실추된 아브라함의 명예 (?) 가 어느 정도는 회복됐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거짓말한 것도 문제긴 하지만 정말 중대한 문제는 자기 한 몸 살겠다고 아내를, 그것도 하나님의 약속을 실현할 자식을 낳을 아내를 바로에게 넘겨줬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과오는 아브람이 한 말이 거짓이 아니었다 해도 씻을 수 없는 중대한 과오였습니다.

후대의 해석자들 중에는 아브람의 행동이 강제에 의한 것이었다고 설명하여 그에게 면죄부를 주려 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외경 희년서’ (Book of Jubilee) 와 쿰란에서 발견된 창세기 외경’ (Genesis Apocryphon), 그리고 필로 (Philo) 등이 그들입니다. 희년서 13:11에는 아브람은 애굽으로 가서 그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길 때까지 5년 동안 그곳에서 살았다.” 고 적혀 있고, 창세기 외경에는 나 아브람과 내 조카 롯은 사라가 강제로 내게서 빼앗긴 날 밤에 엉엉 울었다.” 고 적혀 있습니다. 곧 아브람이 자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이 아니라 힘이 부족해서 강제로 당했다는 얘기입니다. 물론 이렇게 해석할 근거가 텍스트에는 터럭만큼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만 갖고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을까요? 더 적극적으로 아브람의 행동을 옹호한 해석자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아브람의 꿈을 언급한 해석자들입니다. 앞에서 말한 창세기 외경다른 구절에는 아브람이 애굽 땅에 들어가던 날에 한 꿈을 꿨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내용인 즉, 아브람이 백향목 한 그루와 종려나무 한 그루를 보았는데 어떤 사람이 백향목을 자르고 뿌리를 뽑으려 하자 종려나무가 나서서 백향목을 자르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꿈에서 깨어나 사래에게 꿈 얘기를 해줬고 그 의미도 알려줬다고 합니다.

짐작하셨겠지만 백향목은 아브람이고 종려나무는 사래를 가리킵니다. 곧 사래가 아브람을 위험에서 건져줄 것이란 얘기지요. 고대인에게 꿈은 하나님의 뜻이 전달되는 수단이었습니다. 곧 애굽에서 일어날 사건은 모두 하나님의 예정 안에 있었다는 말이 되고 하나님은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은 꿈을 통해 미리 아브람에게 알려주셨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아브람은 자연스럽게 면책이 됩니다. 비겁해 보이는 그의 행동은 과오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렇게 해석할 근거가 텍스트에 터럭만큼이라도 있을까요? 없을 것 같지요? 하지만 고대의 해석자들이 누굽니까? 그들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기어이 그 근거를 찾아냈으니 말입니다.

앞에서도 인용한 창세기 12 11절은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뭔가 어색하지 않습니까? 아브람이 사래와 하루 이틀 같이 산 것도 아닌데 내가 알기에…’ 라니요? 우리말이나 영어 (I know that…) 는 밋밋하지만 히브리 원문은 히네 나 야다티…’ 라고 되어 있는데 이를 보라, 이제, 나는 정녕 아노니…’ 라고 번역하면 그 맛이 더 살아납니다. 텍스트는, 아브람은 사래의 미모 뿐 아니라 그보다 대단히 더 중요한 모종의 사실을 알고 있고 이를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창세기 외경은, 아브람이 사래의 미모 뿐 아니라 그 때문에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다는 해석했고, 어떻게 알게 됐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꿈을 통해 알려주셨다고 해석했던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럴싸합니까? 그럴싸하다고 생각하실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 믿음의 조상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한 해석자들에게 배울 점은 하나 있습니다. 단어 하나라도 허투루 읽지 않고 꼼꼼하게 읽는 자세, 이것 하나는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태도가 축자영감설을 공허한 구호로 외치는 사람보다는 훨씬 더 성경을 존중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3

 

그럴싸하든 그럴싸하지 않든 후대의 해석자들의 해석은 단지 참고 사항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 이 참고 사항참고가 아니라 방해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의 텍스트가 그런 경우인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의 텍스트는 바로 앞에 나오는 창세기 12 1-9절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이야기이고 이렇게 대치시킨 목적은 신앙의 아버지인 아브람의 양면을 극명하게 대조해서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12 1-9절의 아브람은 용기와 믿음의 인물이요 순종하는 사람의 표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 10-19절의 아브람은 불안해 하는 인물이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는 인물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의 말을 빌면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시야 바깥으로 밀어냈습니다 (Abraham let the Word get out of his sight). 그는 아내를 팔아서라도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 했던 비겁한 남편이었습니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않고 부도덕한 방법으로 자기에게 닥친 위기를 모면하려 했습니다. 그는 부부윤리에 있어서 부도덕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고 또 부정해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텍스트가 보여주려는 바가 바로 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감추려는 모든 해석은 올바른 해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텍스트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점이 아브람의 부도덕과 불신앙이었을까요? 애굽 왕 바로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고서 이야기를 끝낸다면 중요한 점을 빠뜨린 것이 됩니다. 바로는 사래를 자기 여자로 받아들이고 그 대가로 아브람에게 재물을 하사했습니다. 그러나 사래의 일로 인해곧바로 여호와 하나님은 바로에게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사래 때문에아브람에게 재물을 하사했던 바로가 이번에는 사래 때문에하나님의 재앙을 받았던 것입니다. 바로의 입장에서는 재물은 주고 재앙은 받았으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에 바로는 아브람을 불러 이렇게 나무랐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아내라고 내게 말하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그를 네 누이라고 하여 내가 그를 데려다가 아내를 삼게 하였느냐?” (18-19). 바로가 자기에게 닥친 재앙이 아브람 때문인지 어떻게 알았는지에 대해 성경은 침묵합니다. 바로가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을 리도 없고 믿었을 리는 더더욱 없습니다. 더욱이 훗날의 일이지만 바로의 애굽은 이스라엘과 원수가 됩니다. 바로 그 바로의 입에서 아브람을 꾸중하는 말이 나오다니! 믿음의 아버지 아브람이 장래의 원수 바로에게 꾸중을 들으며 한 마디 대꾸도 하지 못했다니!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자존심이 상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빼버리고 싶은 이야기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고스란히 성경에 보존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후대의 해석자들이 했던 것 같은 아브람을 옹호하는 해석 한 마디 없이 말입니다. 저는 이래서 성경이 좋습니다. 솔직해서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조준을 잘못하시지는 않았을 터인데 잘못은 아브람이 했는데 벌을 애꿎은 바로와 그의 집안 사람들이 받았습니다. 텍스트는, 잘못은 사래를 아내로 맞으려 했던 바로에게 있지 않고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고 바로에게 팔아 넘겼던 아브람에게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그런데 정작 재앙을 당한 사람은 아브람이 아니라 바로와 그의 집안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일을 두고 하나님의 정의를 논할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왜 죄 지은 당사자인 아브람은 그냥 두고 죄 없는 바로를 벌하셨습니까?” 하고 울부짖어보신 적 있습니까? 그런 적이 있다면 당신은 정말 훌륭한 신앙인입니다. 물론 신앙 여부를 제가 판단할 자격은 없지만 말입니다. 그런 적이 없다고 해도 너무 자책하지는 마십시오. 왜냐하면 내가 받아야 할 벌을 다른 사람이 받는 경우에 하나님의 정의를 문제 삼는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남이 받아야 할 벌을 내가 받았을 때는 눈을 부릅뜨고 목청을 돋우며 하나님께 따져 묻는 사람도 내가 받았어야 할 벌을 남이 받는 경우에는 침묵하기 일쑤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슬쩍 넘어가 버린다는 말씀입니다. 후자에서 전자로 가는 신앙의 길은 정말 멀고도 험한 것 같습니다. 이 길이 멀고 험해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고 이 글이 그런 분들께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아브람의 비겁한 행동 때문에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를 당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의 불신앙의 언행 때문에 세상이 피해를 본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신앙인의 언행이 미치는 영향은 신앙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세상이 너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동전의 앞면일 뿐입니다. 그 뒷면에는 너는 재앙의 근원이 될 수도 있다. 세상이 너로 인해 화를 당할 수도 있다.”  라고 쓰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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