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건용의 구약 산책 http://blog.kcmusa.org/kwakgunyong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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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목사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신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해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에서 마쳐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1985년에서 1993년까지 서울향린교회에서 전도사, 부목사로 일하며 소중한 두 분의 스승인 고 안병무 선생님과 홍근수 목사님을 만나 신학과 목회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1993년 미국으로 건너와 줄곧 나성향린교회(전 선한사마리아인교회)를 목회하면서 클레몬트대학원에서 구약학 박사과정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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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이 바뀌니까....
 
한 무명작가 A씨가 어느 날 당대 최고작가 B씨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B는 썼다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유명작가여서 무명작가 A는 전화를 받고 주눅이 들었지만 B가 의외로 깍듯이 ‘선생님’ 호칭을 쓰며 대접을 해줘서 놀랍고도 감개가 무량했습니다. 나중에 둘은 만나서 근황에 관해서 또 문학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둘은 가끔 안부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B가 A의 고향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B가 A에게 진지한 어투로 이런 부탁을 하더랍니다. A의 고향 바닷가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싶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로 엄청난 인세 수입을 올린 B는 남는 돈으로 땅을 구입해서 거기에 집을 짓고 집필실로도 쓰고 형편이 어려운 작가들에게도 개방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A는 B가 부럽기도 했고 그런 계획을 자기에게 밝히며 부탁하니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답니다. 그래서 그는 지인들과 접촉해서 땅을 알아봤는데 마침내 거래가 성사되어 B의 마음에 드는 땅을 구입할 수 있게 해줬다는 겁니다.
 
그 과정에서 A는 우연히 B의 비밀 이메일 주소를 하나 알게 됐습니다. B가 유명한 문학잡지나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때 쓰는 이메일이었습니다. 얼마 후 B가 유럽여행을 하는 동안 A는 그 메일로 자기가 쓴 소설 원고를 문학잡지에 보냈습니다. 그것은 과거에 그 잡지사에 투고했다가 퇴짜 맞은 원고였습니다. 잡지사는 원고를 한참 보관하고 있다가 잡지의 편집방향과 맞지 않는다는 간략한 이유를 달아서 돌려보냈습니다. 이 원고는 B 이름으로 곧 그 잡지에 실렸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그 소설에 대해 곧바로 비평가들의 찬사가 쏟아졌다는 겁니다. ‘극적인 변신’이란 말도 있었고 ‘새로운 실험정신의 개가’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이에 A는 크게 충격을 받았답니다.
 
이 글은 한 작가가 쓴 단편소설이라는데 요즘 한국에서 어떤 유명작가의 표절이 문제가 되고 있어서 그런지 어떤 사람이 SNS에 올려놓았더군요. 저는 그걸 읽었습니다.
 
한국에서의 표절 시비
 
‘복사’(copy)는 남의 글을 그대로 가져와서 자기 글인 척하는 행위를 이르는 말입니다. 제 나름의 생각으론 아무 생각 없이 이루어지는 게 복사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복사기로 복사하거나 스캐너로 스캔해서 갖다 쓰는 것 말입니다. 한편 ‘표절’(plagiarism)은 전체를 그대로 베끼는 게 아니라 일부를 그대로, 또는 살짝 고쳐서 갖다 쓰는 걸 가리킵니다. 표절은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복사와 달리 모종의 생각과 계획을 갖고 합니다. 적어도 들킬 수도 있다는 걱정과 두려움을 갖고 행해지는 게 표절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남의 글을 표절했다고 해서 화제입니다. 당사자는 애매한 태도로 부인했고 그의 책을 낸 출판사도 제대로 해명하거나 사과하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점은 그에 대한 표절 시비가 15년 전에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았으나 입을 다물어왔고 다른 사람들 입도 다물게 했다는 겁니다. 한국에 그만한 작가가 어디 있느냐, 그러니 약간의 ‘실수’나 ‘잘못’이 있다고 해도 덮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가뜩이나 출판계가 불황인데 그나마 몇 안 되는 잘 팔리는 작가에게 그런 문제를 제기하면 출판사들은 문을 닫아야 한다면서 쉬쉬해왔답니다.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터져서 걷잡을 수 없게 됐습니다.
 
비슷한 시가에 신학계에도 표절 시비가 일어났습니다. 한국의 몇몇 유명 신학대학 교수들이 남의 글을 표절했답니다. 그 중 일부는 표절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지만 몇몇은 표절이 아니라는 ‘증거’를 내보이며 반박했고 대부분은 가타부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하고 있습니다. 저도 몇 년째 이곳의 몇 신학교에서 강의하고 있습니다. 한 학기가 끝나면 기말에 시험을 보거나 페이퍼를 내라고 하는데 학생들 페이퍼를 읽고 실망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잘 쓰고 못 쓰는 것 둘째 치고 남의 글을 그대로 베끼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너무 티가 나게 베껴서 누가 봐도 베낀 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표절도 생각 좀 하면서 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베낀 글은 정말 읽기 힘듭니다.
 
‘Every writing is rewriting’ 곧 ‘모든 글쓰기는 다시 쓰기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독창적인 글 같아도 과거에 누군가가 쓴 글일 경우가 많다는 뜻이겠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창작’(創作)은 없다는 얘기입니다. 저도 글을 많이 쓰는 편에 속하고 매주 설교를 해야 하니 복사니 표절이니 하는 게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저도 남의 글을 많이 갖다 씁니다. 그럴 때는 가급적 정확하게 인용하고 출전을 밝히려 하지만 그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설교에선 출처를 밝힐 수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얘기의 맥이 끊겨 지루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남의 말을 내 말처럼 말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중요한 인용은 출처를 밝히는 게 맞고 저도 그렇게 하지만 얘기의 맥을 끊지 말아야 하고 시간의 제약도 있어서 일일이 출전을 밝히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인용으로 가득한 성서
 
저는 요즘의 표절 사건을 보면서 우리 신앙을 생각했습니다. 신앙은 복사일까, 표절일까, 아니면 뭘까 하고 말입니다. 신앙은 위대한 신앙인의 신앙과 삶을 복사하는 걸까요? 그렇게 하면 좋은 신앙인이 됩니까? 복사는 심하니까 약간씩 고쳐가면서 표절하면 될까요?
 
성서에는 인용이 많습니다. 인용으로 가득 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저작권’이란 게 없었으니까 그게 범법도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권위 있는 문서를 많이 인용할수록, 곧 좋은 글을 복사하고 표절하고 인용할수록 권위가 높아졌습니다. 그때는 새로운 것은 의심을 받았습니다. 요즘 같으면 안 그랬을 텐데 옛날엔 그랬습니다. 그만큼 전통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과거에 권위 있는 사람이 한 말과 다른 말을 하면 의심받았습니다. 그래서 ‘누구에 의하면’이나 ‘누구의 말(글)에 따르면’이란 말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성경이 따르면’이란 말도 많이 썼습니다. 그런 말을 많이 쓸수록 권위가 올라갔습니다.
 
신약성서에도 이런 말들이 많이 사용됐습니다. 예를 들면 “이 일은 성서의 예언을 이루기 위한 일이다.”라는 말이 그렇습니다. 이런 말은 대개 뭔가를 입증하고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사용됐습니다. 그러니까 첫 기독교인들은 자기들 신앙이 옳음을 구약성서를 인용해서 입증하려 했던 겁니다. 이런 점에서 첫 기독교인들에게는 보수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지난 주일에 말했듯이 예수님은 “모세는 이렇게 말했지만 나는 이렇게 말한다.”면서 전통을 뒤집어버린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게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게 율법을 완성하는 걸까요? 율법의 일점일획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율법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저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 역시 예수님의 말씀에서 찾습니다. 저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씀에 실마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율법의 일점일획도 어기지 않고 지키려 애쓴 걸로는 아무도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글자 그대로 지키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율법 조항들이 대개는 구체적이지 않으므로 이들은 그걸 가능한 한 정확하게 지키려고 일종의 시행세칙 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전통’이라는 게 바로 그겁니다. 그래서 안식일 법에 수백 가지의 시행세칙이 따라붙게 됐습니다. 이 모든 노력은 율법을 일점일획이라도 틀림없이 지키려는 노력에서 비롯됐던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혼 문제를 갖고 얘기해봅시다. 구약성서 율법은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율법도 이혼을 허용한 겁니다. 다만 이혼하려면 이혼증서를 써주고 하라는 겁니다. 물론 이혼증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써주는 겁니다.
 
왜 이런 규정이 필요했을까요? 왜 이혼하려면 남자가 여자에게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이혼한 여자의 생존권이 거기에 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여자가 이혼하면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시집에서 살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친정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럼 그녀가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당시 여자들은 결혼 전에는 친정부모에게,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늙어서는 자식에게 삶을 의존했습니다. 이들에는 생존에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재산도 없었고 먹고 살 기술과 지식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이혼한 여자가 살아남는 길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려면 이혼증서가 있어야 했습니다. 이혼증서는 이혼한 여자의 생존권이나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그래서 이혼하려면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라 했던 겁니다.
 
예수님은 이혼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했습니까? 예수님은 이혼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음행을 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사람은 그 여자를 간음하게 하는 것이요, 또 버림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간음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남자는 여자가 음행을 했을 때만 버릴 수 있다고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그 이외에는 여자를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또 누구든지 그렇게 음행해서 버림받은 여자와는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했습니다. 그 사람은 간음한 셈이란 겁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혼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선 예수님도 그 시대의 사람임을 잊지 마십시오. 또한 예수님은 여기서 여자의 음행만 말씀합니다. 남자의 음행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남자가 음행하는 것은 이혼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시대 사회는 남자가 여자의 주인 노릇을 하는 가부장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남자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바라봤습니다. 예수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안타깝지만 그렇게밖엔 예수님 말씀을 이해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하면 된다는 구약 율법보다는 훨씬 더 이혼하기 어렵지만 철저하게 남자의 입장에서 이혼 문제를 본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습니다.
 
복사나 표절의 신앙이 아닌 창조로서의 신앙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 말씀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내가 음행하지 않았다면 절대 이혼해서는 안 되는 걸까요? 남자의 음행은 그때처럼 여전히 용납돼도 됩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극소수 근본주의자 말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예수님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착각)하는 사람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가톨릭은 여전히 이혼을 금합니다. 교리적으론 어떤지 몰라도 실제로 가톨릭 교인들은 웬만하면 이혼하지 않는데 근거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이혼이 좋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 권장할 일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혼이 어떤 경우에도 해서는 안 되는 철칙이냐는 데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나 예수님 시대에도 ‘예외’는 있었는데 말입니다.
 
지금 세상은 많이 변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게 있긴 하지만 과연 이혼이 그런 것일까요? 지금은 예수님 시대처럼 오직 남자들만 이혼할 권리가 있는 시대는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은 구약시대는 물론이고 예수님 시대와도 달리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달 24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미사에서 행한 강론에 주목합니다. 그는 이혼자나 재혼자를 ‘비정상’적인 가족관계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비정상’적이라는 말을 싫어한다.”라고 말하면서 “폭력 등으로 연약한 배우자나 어린이 등이 심하게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별거가 불가피할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자녀에 대한 사랑을 계속 유지한 사람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정상적으로 생활하기 매우 어렵다.”고도 했답니다. 연약한 배우자나 어린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이혼하는 것은 계명을 후퇴시키는 게 아니라 계명의 정신을 살리는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교황은 간음한 여인이나 죄를 지었다고 여겨졌던 장애인들, 안식일 법을 어겼다고 비난받았던 사람들 등 율법에 의해 상처받고 정죄 받은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서신 예수님의 마음이 그랬다고 했습니다. 그때 율법학자들은 펄쩍 뛰며 하늘이 무너질 듯 반발했지만 예수님이 아니었더라면 잃어버린 어린양 같던 그들이 어떻게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었겠냐고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교황의 말을 어떻게 듣습니까? 여기서 가톨릭교회의 수장은 음행한 이유가 아니면 이혼해서는 안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폭력이나 학대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별거든 이혼이든 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잘 따져보면 이것은 예수님 말씀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완성’하는 겁니다. 율법을 일점일획도 폐하는 게 아니라 완성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율법을 완성하는 것은 율법에 대해 하나의 정통적인 견해를 정해서 그걸 고수하는 게 아닙니다. 율법을 완성하는 것은 그걸 현재 상황에 맞게 해석하는 것이고 상황에 적합하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율법이 기본정신을 살려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왜,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 주어졌는지를 잘 따져보고 현재의 상황에 맞게 해석해서 적용하는 것, 이것이 율법을 완성하는 길이고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義)보다 나은 의를 추구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오늘 읽은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라고 선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어떤 걸까요? 그는 어떤 점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까? 그것은 ‘늘’ 새로워지는 겁니다. 한 번 새로워졌다고 거기 머무는 게 아니라 ‘날마다’ 새로워지는 겁니다. 현재 내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 머물지 않고 늘 새로워지는 것이고 날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믿음은 복사도 표절도 아닌 새로운 창조인 것입니다.

 

곽건용 목사(향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