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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의 구약 산책 http://blog.kcmusa.org/kwakgunyong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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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건용목사는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신일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한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교단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해서 가장 진보적인 교단에서 마쳐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1985년에서 1993년까지 서울향린교회에서 전도사, 부목사로 일하며 소중한 두 분의 스승인 고 안병무 선생님과 홍근수 목사님을 만나 신학과 목회의 방향을 정했습니다. 1993년 미국으로 건너와 줄곧 나성향린교회(전 선한사마리아인교회)를 목회하면서 클레몬트대학원에서 구약학 박사과정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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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4일 / 졸업예배

 

새로운 피조물

고린도후서 5;16-17

 

곽건용 목사

 

지금 뭔가 새 일을 해볼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이 오십 년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면 그는 어떻게 됐을까요? 지금은 사정이 어떤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사상전향을 거부한 양심수들 중에 삼사십 년 세월을 감옥에서 보낸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 머릿속에 들어 있는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고 해서 그토록 긴 세월을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고 감금한다는 사실은 매우 부끄러운 얘기입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 The Shawshank Redemption>을 보면 50년 동안 감옥생활을 한 브룩스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만기출소일이 다가오자 그는 동료죄수에게 칼을 휘두릅니다. 그는 출소를 원치 않았던 것입니다. 아니, 출소하는 게 두려웠습니다. 1905년에 감옥에 들어와서 오십 년이나 바깥세상과 격리되어 있었으니 그는 두 번의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치러지는 동안 감옥에 갇혀있었던 셈입니다. 그는 변화된 바깥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두려웠고 그래서 감옥에 머물러 있으려고 사건을 벌였던 것입니다. 이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브룩스가 칼을 휘두르는 장면도 제게는 그 중 하나입니다. 제 나이가 오십을 갓 넘었으니 브룩스는 거의 제 나이만큼 감옥에서 산 셈입니다. 그런 다음에 새로운 인생을 살아야 했던 브룩스가 느꼈을 두려움을 저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는 출소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오십 대 초반인 저더러 지금 목사 일 말고 뭔가 새 일을 해보라고 하면 선뜻 나서지 못할 것 같습니다. 제 나이 스물여섯에 어떤 자리에서 반 농담으로 ‘의대에 편입해서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제 말을 진지하게 듣고 학교에 알아보았더니 편입할 수는 있지만 예과 1학년부터 다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 편입 얘기가 별로 진지하지도 않았지만 그때 제 나이 고작 스물여섯이었는데도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겠다고 결단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때 편입했어야 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는 옛것은 ‘모두’ 지나가버렸고 ‘모든 것’이 새로워졌기 때문이랍니다. 번역 상의 문제 하나만 지적하면 희랍어 본문에는 엄연히 들어 있는 ‘모든’이란 단어를 왜 우리말 번역 성경을 빼뜨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원문 그대로 번역하면 “모든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모든 것이 새로워졌습니다.”가 되어야 합니다.

 

‘옛것’은 무엇이고 ‘새것’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 옛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왔다고 했을까요?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몰라도 적어도 이 정도는 물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들이 내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가리키는지, 내 ‘바깥’에 있는 무엇인가를 가리키는지, 그것도 아니면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관점 같은 것을 가리키는지 정도는 말입니다. 이 전부는 가리킬 수도 있겠습니다.

 

 

오십 대가 되어보니…….

 

지난 주일에 새길교회와 야외예배를 마치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교인들이 저희 집에 모여서 뒤풀이를 했는데 거기서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그분이 이십 대 중반에 시집가서 처음 시집살이했을 때는 시어머니가 말도 못하게 무서웠답니다. 그 나이에 시집살이하는 ‘어린’ 신부가 오죽했겠습니까. 그런데 계산해보니 그때 시어머니 나이가 지금 자기보다 젊은 사십대 후반이더랍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시어머니도 생전 처음 해보는 시어머니 노릇이 얼마나 두려웠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많은 걸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눈길부터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이삼십 대 때는 지금보다 훨씬 눈초리도 날카로웠고 말투도 무섭고 공격적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재수 없는(!) 사람이었지요. 그때 제 눈에 오십대 아저씨들은 거의 예외 없이 개념 없는 ‘보수꼴통’이었습니다.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내 한 몸 편하면 된다고, 내 가족만 무탈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희망 없는 사람들로 보였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좀 교양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좀 더 직접적이고 막무가내였지만 내용인즉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해야 하고 역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 같은 것은 전혀 없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지금 제가 오십 대가 됐습니다. 나는 누군가? 나도 희망 없는 보수꼴통인가? 나도 세상이야 어찌 돌아가든 내 한 몸 편하면 된다, 내 가족만 무탈하면 그만인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을까? 지금 이삼십 대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볼까? 나도 지금 보수꼴통이 된 것은 아닐까? 나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남들 특히 젊은이들 눈에도 내가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언젠가도 몇 번 얘기한 적이 있지만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당신 참 보수적이야.”라는 말인데 싫든 좋든 젊은이들이 저를 그렇게 보는 것이야 어떻게 막겠습니까.

 

지금 나이 오십이 되어 돌이켜보니 젊었을 때는 제가 기성세대에 대해 지나치게 가혹했습니다. 지금은 반성합니다. 기성세대를 이해해보려 하지는 않고 그들을 비판하기만 했습니다. 그분들과 저는 살아온 세월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분들은 이삼십 대에 한국전쟁을 겪었던 분들이고 저희 세대는 이십 대에 1980년 광주항쟁과 1987년 민주화항쟁을 겪은 세대입니다. 다른 것 다 그만두고 이것만 봐도 두 세대가 비슷한 역사의식과 가치관을 가질 수 없는데 그걸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신앙을 두고 생각해 봐도 두 세대는 비슷한 신앙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한국 개신교가 본격적으로 타락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까지는 기독교는 한국 사회발전에 대단히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처럼 사회의 암적인 존재(!)도 아니었습니다. 이전에는 별 존재감이 없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그때는 기독교가 ‘개독교’ 소리는 듣지 않았습니다. ‘개독교’ 소리를 듣기 시작한 때는 불과 10여 년 전부터입니다. 지금 사오십 대, 그러니까 저희 세대가 사회의 주류가 됐을 때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타락한 것이지요. 한국 개신교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라 맘몬의 교회가 된 때, 곧 돈의 신, 자본의 신을 떠받드는 집단으로 타락한 때는 그분들 세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세대입니다. 지구가 엄청나게 망가지기 시작한 때도 이즈음이 아닙니까? 그때 우리가 기성세대에게 책임을 물었다면 지금은 우리가 책임추궁을 당해야 하게 됐습니다.

 

 

젊었을 때의 치열함을 되찾으면 새로워지지 않을까?

 

오늘은 제 얘기를 많이 합니다. 우리 교우들이 대부분이 저와 같은 세대이므로 공유하는 기억이 적지 않기도 하거니와 다른 사람 얘기를 하는 것보다는 제 얘기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러니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십대 초반까지는 말도 못하게 보수적인 교인이었습니다. 주말마다 기도원 가서 밤새 나무뿌리 잡고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식으로 기도하곤 했습니다. 글래서 저는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얘기(창세기 32장)를 좋아하나 봅니다. 그때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만 바로 서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었습니다. 남, 이웃, 사회, 역사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요. 지금 생각해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신앙 바깥으로 나가면 남도 이웃도 사회도 역사도 눈에 들어오는데 왜 신앙 안에만 들어오면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비록 색깔은 달랐지만 삶은 매우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뜨거운 열정이 있었습니다. 가슴에는 늘 뜨거운 것이 불타고 있었고 그것을 토해내며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십대 중반에 제 신앙의 색깔이 변했습니다. 남, 이웃, 역사, 사회에 대한 생각과 관점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비록 색깔은 달라졌지만 치열함과 열정만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기도원에 올라가 나무뿌리 붙잡고 기도하는 것은 그쳤지만 그때와 똑같은 치열함과 열정으로 사람들을 만났고 일했고 설교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부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그때는 믿기 어렵겠지만(!) 설교를 정말 잘 했습니다. 잘 했다는 것이 다른 뜻이 아니라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뜨거운 상태에서 설교했다는 뜻입니다. 그때는, 좀 과장하자면 설교하다가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저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지금 저 자신을 돌아봤을 때 가장 아픈 것은 그때의 치열함과 열정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 했습니다. 모든 옛것은 지나갔고 모든 것이 새로워졌다는 것입니다. 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는 말을 젊었을 때의 치열함과 열정을 되찾는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피난처로 삼고 그 안에 머물러 있거나 숨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는 힘들고 어려울 때, 세상에서 피하고 싶을 때 피하는 피난처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눈을 갖는다.’는 말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뜻이고 제 방식으로 표현하면 ‘그리스도와 심장을 나눠 갖는다.’는 말입니다. 그럴 때 모든 옛것을 지나보낼 수 있고 모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은 강력한 갱신과 변혁의 에너지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세상에서 도피하게 만들어주는 아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이란 말은 피난처로 받아들이면 아편이 되고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와 심장을 나눠 가질 수 있다면 갱신과 변혁의 에너지가 됩니다. 옛것도 새것도 내 안에 있습니다. 동시에 그것들은 내 밖에도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려면 내 안과 밖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럴 때 내 안과 바깥을 동시에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 교우들 대부분이 사오십 대입니다. 이제는 우리 모두는 이삼십 대에 가졌던 열정과 치열함을 간직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따져봐야 할 때가 됐습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과거의 그 열정과 치열함을 다 잃어버리고 이삼십 대에게 개념 없고 희망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습니까? 그걸 염려하면 아직 희망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자리에서부터 시작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세대 사람 대부분은 열정과 치열함을 잃어버린 것을 안타까워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치기(稚氣)’로 간주하고 술자리의 안주로 웃어넘겨버립니다. 정말 그것을 한때의 치기로 치부해버리는 게 옳습니까? 치기로 넘겨서는 안 되는 것을 치기로 넘기는 걸 성숙의 상징으로 치부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요? 그 열정과 치열함을 잃어버린 것이 문제가 아닌가 말입니다.

 

하지만 바울의 말대로 우리는 낙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질지라도 우리의 속사람은 나날이 새로워질 수 있으니 말입니다(고린도후서 4:16). 낡아지느냐 새로워지느냐는 결국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결단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젊은 날의 열정과 치열함으로 치기로 간주하고 웃어넘길 것인가, 아니면 그때 그 열정을 지금과 이후에도 계속 갖고 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할 것인가에 우리 속사람의 나이가 달려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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