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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대의 동양고전 읽기
http://blog.kcmusa.org/keykrast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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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제목 동양고전 읽기 | 카테고리

1. 역사의 격랑 속에서

 

한 사람이 그가 지금껏 살아 온 세상의 위기와 혼란에 직면해 있다. 마셔도 마셔도 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하던우물물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며 한숨짓던 사마리아여인이어도 좋고 구리거울을 바라보며 참회하던 시인 윤동주여도 좋다.

몸은 같은 몸일진데 이 어지러운 세상의 한 없는 고난과 고통 속에서, 정신은 이제 이전의 것이 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무엇을 되돌려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또 무엇을 앞날에 꿈 꿀 수 있을 것인가. 아, 좌절한 자의 내일은 무엇이 될 것인가. 다시는 좌절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기다리며 말 할 것인가. 과연 새사람을 입을 가능성은 있는가.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 만주족의 새로운 왕조 앞에서, 그 무엇을 기다리며(待訪), 초라해진 자신의 왕조(明夷)를 반성한 글이 바로 황종희(黃宗羲)의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이다.

 

황종희는 자신이 살아온 세상의 전부였던 왕조가 끝내 이민족에게 정복당하고, 이제 더 이상 현세적인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채 이 모든 기구한 역사의 운명을 초래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명나라 말기의 부패한 정치현실을 개혁하고자 했던 동림당(東林黨)에 참가한 것으로 인해 옥사했으며, 그 자신 역시 온갖 방법으로 환관들의 폐정을 타파하려한 동시에 만주족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했건만, 결국은 모든 것을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된 까닭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개개인이 지키려고 해도 지킬 수 없었던 자신의 시대적 한계상황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서 우리는 비도덕적 사회를 읽을 줄 알았던 니버의 체취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미래의 그 무엇, 혹은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는 그릇된 관습과 율법의 시대를 비판하고 있다.

 

2. 이상사회를 꿈꾸며

 

명나라 말기의 실정과 청나라 이민족의 지배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 황종희는 ‘명이대방록’에서 중국의 전통문화가 안고 있는 결점을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이상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이 책 속에서 전개된 그의 논리는 실로 ‘맹자(孟子)’가 왕도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것만큼이나 파격적이고 날카로운 것이었다.

그는 중국 전통문화를 모두 13개 항목으로 나누어 군주론, 신하론, 법제론, 학교론, 전제론, 병제론, 재정론, 환관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언급하면서 총 21장으로 이 책을 구성하였다. 특히 이 중에서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은 매우 날카로워서, 군주 및 신하의 전통적 관계를 완전히 다른 각도로 해석하였다.

 

그는 중국전통문화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측면을 고루 분석하였는데, 당시의 폐단이 지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못 전승되었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함으로써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이상적 사회의 모범을 제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통적 군주제 비판

 

중국의 과거 전통적 정치 체제에 대한 황종희의 비판은 이 책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책의 구성상에 있어서도 군주론에 해당하는 ‘원군(原君)’, 신하론에 해당하는 ‘원신(原臣)’, 법제론에 해당하는 ‘원법(原法)’이 차례로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이 세 항목에서만 ‘원(原)’이란 용어가 쓰이고 있는데. 그 의미는 ‘근본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치체제에 대한 황종희의 반성이 의미 깊은 것을 알려준다.

그는 이 책의 첫 항목인 ‘원군(原君)’은 과거 군주제에 대한 도전적인 발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가 살아왔던 시대까지의 보편적인 관념은 모두 ‘군주가 천하의 주인이고, 천하는 군주의 손님’이라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관념에 바탕하여 군주제가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야말로 세상에 가장 큰 잘못이라고 역설한다. 원래 세상에 정해진 군주란 없는 것이며, 군주는 다만 천하를 이롭게 하기 위해 하나의 일꾼으로 추대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옛날 세상에서는 ‘천하가 주인이고, 군주가 손님’이었기 때문에 ‘자기 한 사람의 이익을 이익으로 삼지 않고, 천하로 하여금 그 이익을 받게 하고, 자기 한 사람의 해를 해로 생각하지 않고, 천하로 하여금 그 해를 면하게 하는 것’이 참다운 군주의 직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세의 군주들은 ‘천하의 이익을 모두 차지하고 천하의 해는 모두 남에게 돌리고도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며’, ‘천하를 얻은 후에도 천하의 사람들의 골수를 두들겨 쪼개고 천하의 자녀도 흩어지게 하고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 이것은 내 재산에서 나온 이자라고 말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래서 황종희는 극단적인 선언을 한다.

“천하에 큰 해를 끼치는 것은 군주뿐이구나”

그리하여 그는 군주가 제 직분을 분명하게 지킬 것을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과거에 행해진 봉전사회의 많은 잘못들의 뿌리가 군주들의 무도한 개인적 욕심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신하는 군주의 師友”

‘원군’에서 군주와 천하백성의 관계를 재정립한 것에 이어, 황종희는 ‘원신(原臣)’에서 역시 기존의 군신관계의 의례적 틀을 혁파한다. 그는 “우리가 나가서 벼슬을 하는 것은 처하를 위한 것이지, 군주를 위한 것은 아니다. 만인을 위한 것이지 일성(一姓)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과거에는 모든 신하된 사람들이 한 군주를 위해, 마치 집안 종처럼 봉사하면서, 군주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든 간에 그에게 복종하고 충성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신하가 천하의 주인인 백성을 제쳐두고, 오히려 백성의 이익을 독접하는 군주의 뜻만을 섬기는 것은 신하가 할 일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신하가 진정으로 세상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만민’에 대한 일이다. 황종희가 생각하는 군신관계는 수직적인 고나계가 아니라 오히려 천하의 만민을 도우기 위한 수평적 협력관계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에게 천하라는 책임이 없다면 우리는 군주에 대하여 상광이 없는 사람이다. 나아가 군주를 섬길 때에 천하의 일을 일삼지 않으면, 우리는 군주의 노비(奴婢)이다. 그러나 천하의 일을 일삼으면, 우리는 군주의 사우(師友)인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어떤 시대 어떤 나라의 정치체제라도 반드시 귀감으로 삼아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

정치 체제를 구성하는 군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의 상관관계를 우선적으로 재정립함으로써, 황종희는 그가 꿈꾸는 이상사회에서의 구성원들의 조화를 기초하였다.

“법의 기초는 ‘만민평등’”

‘원법(原法)’에서 정치제제를 규제하는 법제에 대해서도 그는 ‘만민평등’의 정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가 과거의 이상사회로 상정하고 있는 ‘삼대(三代, 夏⦁殷⦁周시대)’의 법은 천하를 위한 법이었으나, 후세의 법은 일가(一家)의 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대의 법은 ‘천하를 천하 속에’ 두었으나, 후세의 법은 ‘천하를 광주리 안에’ 넣어 두었다. 따라서 삼대 시대에는 조정을 귀하게 여기거나 재야를 천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법을 가능한 많이 정하지 않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여 ‘무법(無法)의 법’이 될 수 있었다. 반면 후세에는 군주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천하 만민의 이익을 억제하기 위하여 세세한 법까지 모두 간섭하게 되어, 이른바 ‘비법(非法)의 법’이 된 것이다.

황종희는 봉건사회에서의 법제는 모두 군주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보았는데, 그 가장 커다란 이유는 앞의 논지와 마찬가지로 만민평등의 정신을 기초로 한 민주사상에 위배되기 때문이었다. 그의 정치론의 모든 핵심은 이러한 만민공영의 민주사상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그는 ‘중국의 루소’로 불리면서,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전개한 민주사상과 비교되고 있는 것이다.

‘명이대방록’은 이러한 정치적 개혁사상을 근거로 하여,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고대의 ‘정전제(井田制)’와 같은 토지분배방식을 원용하면서, 명말청초에 극심했던 농민반란전쟁의 해결책에 대해서도 민주평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황종희는 중국의 모든 전통문화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폐습은 과거에 지배적 역할을 해온 봉거군주제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 및 복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결코 그의 생각은 과거의 것을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을 오늘의 현실에 투영함으로써, 미래에는 보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희망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3. 맺음말

 

개인마다 자신의 시대 속에서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 또한 한 개인조차 시간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그 방법에 있어서 또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을 어떻게 선택하든 간에, 그 방법의 선택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과의 장(場)을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실존적 공동의식이야말로 모든 사랑의 출발점일 것이다.

황종희는 이미 멸망해가는 왕조를 다시 세우려다 결국 좌절했다. 그러나 그는 그 좌절의 현재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아가 그 좌절이 진정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내일은 또 무엇을 꿈꾸고 희망해야 하는지를 자신에게 물었다. 그 반성으로 인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중국인들의 과거를 반성하게 되었고, 그 치열한 ‘회개’를 통해서 비로소 ‘명이대방록’은 중국 역사의 반성적 지침서가 되었다.

오늘날의 한국사호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무엇을 혹은 어떤 것을 기다리며 생각할 수 있을까. 황종희의 명이대방록은 우리의 질문이 이미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작자 소개

황종희(黃宗羲, 1610~1695)

명말청초의 학자이며 자(字)는 태충(太沖)이고, 호(號)는 이주(梨洲) 또는 남뢰(南雷)이다. 절강(浙江)의 余姚사람이다. 아버지 황존태(黃尊泰)는 동림당(東林黨)의 사람이었는데 魏忠賢이 동림당을 탄압할 때 죽었다. 그는 崇禎 年間에 동림당의 희생자의 자제들을 모아 당시의 청년지식인들의 祰社인 復社에 참가하여, 정국의 추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명이 멸망한 후 향리의 자제들을 모아서 의용읰 관조직하고, 만주의 침략에 저항했으며, 지하운동에 참여해서 지명수배를 받아 생명의 위험을 여러번 만났다. 명 왕조를 회복할 가망이 끊기자 미래의 왕조를 위한 정치체제를 구상한 것이 유명한 ‘명이대방록’이다. 이 책은 통렬하게 군주를 비판하고 민주주의적 사상을 지니고 있어, 그를 윘 유명한 ‘명이대비견하게 하였다. 1678년 博學鴻儒에 추천되어 명사(明史)편찬사업의 협력을 요청받았으나 사퇴하고 아들 黃百家와 제자 萬斯同을 협력하게 했다

[출처] 명이대방록|작성자 theriverruns

 

도덕경 29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천하를 취하려고 욕심을 부려 무엇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그일이 불가능함을 본다.

천하는 신기한 물건이어서 억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하는 자는 망치고 잡으려고 하는 자는 놓칠 뿐이다.

사물은 앞서가는 것도 있고 뒤따라 가는 것도 있고

들여 마시는 것이 있으면 내뿜는 것도 있고

강한 것이 있으면 꺾이는 것이 있고

길러주는 것도 무너뜨리는 것도 있다.

성인은 극단적인 것과 사치스러운 것과 교만스러운 것을 멀리한다.


마지막 구절의 세 가지 피할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를 말합니다. 극단은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견해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만한 여유도 포함됩니다. 자유란 일체의 구속을 거부하는 것인데 자신의 표현의 자유에는 자유가 있고 다른 이의 표현의 자유에는 없다고 하는 것은 극단일 뿐입니다.

사치는 경제적인 것을 말합니다. 누구나가 누리고 싶은 만큼 누릴 권리는 있지만 그것에 의해 높고 낮음을 나누고 너와 나를 나눈다면 그것은 물질에 사로잡힌 인생입니다. 사치를 배격하는 일은 무조건적인 검소함도 아니고 인색함도 아닙니다. 그것에 잡히지 않음입니다.


키요자와 만시의 에세이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이 나옵니다.


"생선을 즐겨 먹지만 생선이 없다 해서 불평하지 않는다. 재물을 즐기되 그 모든 재물이 없어졌다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높은 벼슬자리에 앉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서 물러날 때 아까워하지 않는다. 지식을 탐구하되 남보다 더 안다 해서 뽐내지 않고 남보다 덜 안다 해서 주눅들지 않는다.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산 속에서 밤하늘 별을 보며 잠자리에 드는 것을 경멸하지 않는다. 좋은 옷을 입지만 그 옷이 더러워지고 찢어져도 태연하다. 이와 같은 품성을 지녔기에 신심을 얻은 사람은 자유인이다. 아무 것도 그를 가두거나 가로막지 못한다."


사치의 반대말은 자족하는 삶입니다. 자족의 동의어는 결코 가난한 삶이 아닙니다. 자족은 우리가 능력이 된다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그러나 그것에 결코 매여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립보 4:11-13)


교만스러운 것은 인간의 품성에 관계된 것입니다. 섬기는 삶보다는 내세우고 대접받는 삶은 우리를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이 세 가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인생의 가치가 좌우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관계를 잘 조절하지 못하고 극단으로 흐릅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 처음 부딪혔던 시험도 바로 이것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천하를 소유하고(정치)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먹이고(경제) 자신이 히니님의 아들인지 확인해 보는 것 은 모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어나가길 원치 않았습니다. (마태 4:1-12)


그분은 극단을 피하고 삶의 자리 속으로 들어가 이웃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때 그분에게 천하를 소유하는 것보다,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는 것보다, 천사들이 수종드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세계와 역사는 내 마음 먹은대로 움직일 수 있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닙니다. 세상은 소유될 수 없는 것이고 내가 항상 앞서가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하에 자신을 맡겨갈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합한 사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27장


善行無轍迹(선행무철적) 잘 가는 사람은 흔적을 남기지 아니하고 

善言無瑕謫(선언무하적) 좋은 말은 허물이 없다. 

善數不用籌策(선수불용주책) 셈에 능한 사람은 주산을 쓰지 않는다.

善閉無關楗而不可開(선폐무관건이불가개) 잘 잠그는 사람은 빗장을 걸지 않아도 열지 못하게 한다.

善結無繩約而不可解(선결무승약이불가해) 잘 묶는 사람은 노끈으로 묶지 않아도 풀지 못하게 한다.

是以聖人常善求人故無棄人(시이성인상선구인 고무기인) 그러므로 성인은 사람을 구하기를 즐겨하며 그러므로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常善救物 故無棄物(상선구물 고무기물) 사물도 잘 찾아 써서 버리는 일이 없다.

是謂襲明(시위습명) 이것을 밝은 지혜라고 한다. 

故善人者 不善人之師(고선인자 불선인지사)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 되며

不善人者 善人之資(불선인자 선인지자)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거울이 된다

不貴其師 不愛其資(불귀기사 불애기자) 그 스승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그 거울을 아끼지 않으면

雖智大迷 是謂要妙(수지대미 시위요묘) 지식이 있더라도 크게 미혹될 것이니 이것을 오묘한 도리라고 한다.


잘 가는 것, 잘 말하는 것, 잘 세고, 잘 닫고, 잘 묶는 것 이 다섯 가지만 잘하면 성공한 인생일겁니다. 행함으로써 덕을 보이고 말로써 상대방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산(可算)의 것들을 잘 세며, 필요 없이 빠져나가는 것들을 잘 막아버리고, 여러 가지 인연들을 잘 묶는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런데 과연 “잘”이 어떤 것일까요? 노자는 역시 그답게 역설적으로 대답합니다.


먼저 잘 간다는 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감이라는군요. 여기서 우리는 서산대사 휴정의 답설( 踏雪)이라는 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 걸을 때   어지러이 걷지 마라

오늘의 내 발자취 후세 사람들의 이정표 되나니


김구 선생께서 백범일지에 소개해서 더욱 유명해진 이 시와 노자의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노자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눈길을 걸을 때 우리는 발걸음을 흩트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후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나의 만족 나의 성장을 위해 바르게 걸을 뿐 후세를 위한 것이라고 우기면 그것은 ‘자취의 남김’이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났던 그 분은 더 이상의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습니다. 자연주의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준 다음에는 묵묵히 신발끈을 매고 떠나라고 이야기합니다. 보답을 기다리는 선행만큼 악취나는 것은 없다는 것이지요.


말은 늘 허물을 담고 있습니다. 사가랴에게 나타난 천사는 아들 요한의 탄생을 예고하고서는 사가랴의 입을 닫아 버렸습니다. 요한의 역할은 예수보다 앞서 그의 길을 닦는 것인데, 다시 말해 예수 보다 쉬운 역할인데 그것조차 고민하는 사람이 어찌 예수를 이해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말은 생각의 표현입니다. 내 생각은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공부조차 하지 않으면 생각은 진보하지 않습니다. 그 전제를 모른 채 우리는 오늘도 진보안된 말을 그냥 쏟아내고  있습니다.


요즘 무인가게라는 것이 TV를 타는 것을 본적이 있습니다. 주인이 없는 가게에 와서 필요

한 물건을 사고서는 양심적으로 돈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주산없이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아름다운 현장인데요. 곧 실패했다는군요. 왜 실패했을까요? TV나 신문에다 자취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다섯 가지 삶의 진리는 함께 엮여 가야 합니다.


아무도 풀 수 없는 결박은 없습니다. 마치 인내심을 시험하듯 푸는 데 시간만 잡아먹을 뿐 모든 것은 풀립니다. 정 안되면 알렉산더의 매듭이라는 유명한 일화처럼 칼로 끊어버리면 됩니다. 그러니 필요없이 묶으려고 하지 맙시다. 자녀도 내 틀 안에 묶으려고 하지 말고, 사랑하는 연인도 내 방식 안에 묶으려고 하지 맙시다. 나 자신도 내 안에 묶으려고 하지 맙시다. 그때 모든 것은 정말 내 존재가 되고 소유가 됩니다.


이렇게 살면 모든 사람이 나와 더불어 살게 됩니다. 군림과 예속이 없어지고 미움과 질투가 없어집니다. 나를 따르라고 말하지 않고 나에게 묶여 있으라고 하지 않는데 어떤 갈등이 존재하겠습니까?  그것이 모두가 구원받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한 사람도 남김없이 구하는 것이 그분의 사명이라고 이야기합니다(요한 6:40)


이런 상태를 습명이라고 합니다. 습명이란 삼라만상이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있는 결연(結緣)의 세계에 진입함을 뜻합니다.

 

 서로 묶지 말고 물질이건 사람이건 대상을 셈의 상대로만 파악하지 맙시다. 억지로 남기거나 가르치려 하지 말고 세상에서 가장 하기 쉬운 것이 말이 아니라 가장 어려운 것이 말임을 기억합시다. 이러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물과 사람은 서로를 비추어 나갈 것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 되며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거울이 된다"에서  너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마태 5:44)하라는 말씀을 생각해 내셨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