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대의 동양고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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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코드를 비롯해 기독교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위기 중에 기회가 찾아온다는 말이 있듯이 이 시대는 기독교가 자기 반성을 통하여 다시금 세상 속으로 달려나갈 수 있는 좋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여러 비판의 소리 중에는 기독교의 문자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습니다. 성경이 오늘날 우리 손에 오기까지 전승과정은 무시한채 글자 그대로 믿는 것에 대한 비판이지요. 우리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할 비판입니다.


그런데 동양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런 오류를 범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기독교의 문자주의에 대해서는 열을 올려 비판하면서 스스로는 동양고전의 일점 일획도 건드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는 텍스트가 곧 하나님이기 때문에 텍스트에 대한 경외감이 있습니다. 이것은 비판에 앞서 교리입니다. 그러나 동양학에서는 텍스트는 방편입니다. 그 방편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본래의 맛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기독교과 동양철학은 처음부터 텍스트에 대한 인식이 달랐던 것입니다.


노자의 도덕경은 노자가 주나라를 떠날 때 국경을 지키던 관윤이라는 사람이 노자를 알아보고 글을 청하자 노자가 81장 5200여자에 달하는 글을 남겨준데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 글이 여러 판본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상편은 도로 시작하고 하편은 덕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도덕경이라고 불립니다.


여러 판본 중에 대표적인 것은 도덕경을 주해한 왕필본입니다. 왕필은 교회사로 치자면 어거스틴이나 아퀴나스인 셈이지요. 우리나라에서 쓰여진 도덕경에 관한 글 대부분이 왕필의 해석을 따르고 있습니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의 강의도 마찬가지구요. 특히 노자에 관해서는 가장 명망가인 도올 김용옥도 왕필의 골수 팬입니다. 그러나 왕필 매니아들은 감히 왕필의 도덕경 해석을 건드리지 못합니다. 본래 텍스트인 도덕경 문자주의도 아니라 왕필 문자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도올같은 경우는 기독교의 문자주의는 비판하면서 왕필에 대해서는 상당한 경외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자를 웃긴 남자"로 유명해진 신비에 가려진 동양철학자 이경숙은 왕필에 천착하는 도올을 비판하고 있지요. 오히려 이경숙은 왕필의 노자 해석도 뛰어 넘고 있습니다. 물론 누구의 번역이 옳은지 저는 분석할만한 독해 능력이 저에게는 없습니다.


그런데 1973년 12월 중국의 남부지역에서 10만여자가 쓰여진 백서(帛書-비단에 쓴 글)가 발견되었는데 이중에 도덕경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특이할 것은 덕경이 앞에 도경이 뒤에 즉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의 형태로 발견되었지요. 1993년에는 중국의 호북성에서 많은 죽간(竹簡-대나무에 쓴 글)이 발견되었는데 여기도 도덕경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오늘날 도덕경을 연구하는 분들에게는 서로 다른 글자와 전승과정에서의 첨삭(添削) 등을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들입니다.


제가 참고로 삼는 한글 번역본은 세 가지입니다.


"노자와 21세기"(통나무)를 강의한 도올 김용옥의 번역본(말씀 드렸듯이 왕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노자를 웃긴 남자"의 이경숙 번역본(왕필도 우습게 보는 신비로운 분입니다)

그리고 백서본과 곽점본 왕필본을 비교한 "백서노자"(청계)의 젊은 동양학자 이석명의 번역본입니다.


왜 일관성없게 한 사람의 번역을 따르지 않고 그때 그때 다르냐구요?


지금 이 순간 도덕경이라는 텍스트를 읽는 주체는 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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