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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대의 동양고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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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남 배우 브래드 피트가 나온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 1992년 작)  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브래드 피트는 폴이라는 이름으로 몬타나의 엄격한 장로교 목사(맥클레인)의 작은 아들로 나옵니다. 산골마을의 목사에게 유일한 오락은 플라이 낚시로 하는 송어 낚시였습니다. 맥클레인 목사는 오락이라기보다는 종교처럼 송어낚시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그의 종교적 엄격함이 아들들을 통해 계승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에 순종하는 큰 아들과 달리 작은 아들은 늘 모험을 좋아합니다. 폴은 아버지를 벗어나 늘 새로운 것을 꿈꾸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급튜타기를 즐기는 것도 폴이었습니다. 어느 날 형 노만은 동생의 플라이 낚시법이 아버지의 그것을 극복한 것임을 발견하고 묘한 열등감을 느낍니다. 모범생 형은 아버지가 가르쳐 준 낚시 방법  그대로를 못 벗어났는데 말이지요. 게다가 폴은 술 담배와 노름을 즐기고 인디언(native american)여인과 사랑에 빠집니다. 1900년대 초 백인 목사에게 인디언은 사람으로도 안보일 때였습니다. 목사 아들로 파격적인 생활을 하던 폴은 결국 사고로 죽게 됩니다.


어 느날 아버지는 큰 아들 앞에서 이렇게 설교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다 알고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를 사랑할 수는 있다...(We can love him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


여기서 흐르는 강물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강물은 늘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맡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물은 항상 새로운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무 관심도 없는 듯하지만 늘 새로운 곳을 찾아 흘러갑니다.  맥클레인 목사와 큰 아들은 나름대로 세상이라는 강물에 몸을 실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몸을 맡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혹시라도 떠내려갈까 강바닥에 발을 힘껏 디디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대로 폴은 강물이 흘러 도달하는 저 먼 곳에 가기 위해  몸을 맡겼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는 새로운 곳을 향하여 떠내려 가려고 하는데 주위에서는 그를 잡아두려고 합니다.


노자는 도덕경 8정에서 上善若水라는 표현을 씁니다. 지고의 선은 마치 물과 같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선을 추구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 선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도덕적 엄격함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이웃을 위한 베품으로 어떤 사람에게는 정의를 위한 투쟁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되었건 간에 우리가 인생에서 하려고 하는 일들이 물과 같은 성질을 유지하면 좋겠습니다. 만물을 이롭게 하고, 다투지 않고, 그러면서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물 수 있는 그 물처럼 말이지요.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그런데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곳이란 어떤 곳일까요?  대부분의 동양철학자들은 이것을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성질 때문에 낮은 곳이라고 해설합니다. 일종의 겸손함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바로 뒤에 나오는 “좋은 땅에 거한다”(居善地)라는 말을 보면 낮고 천한 곳과 좋은 땅은 서로 모순되는 것 같습니다.


노자가 무슨 뜻으로 썼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사람이 가기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그곳, 즉 변화가 머무는 미지의 그곳이 아닐까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해봅니다. 


그런 점에서 지고선이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흐르듯 조화하면서 늘 새로운 곳으로 향하려는 우리의 마음이 곧 지고선이 아닐까요? 그런데 그게 우리 마음대로 안된다는 데서 우리의 신앙이 출발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 점을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7:21)



저는 두 아들의 아버지로 또한 장로교 목사로 이 영화 DVD를 구입해서 보고 또 보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저의 두 아들도 이 영화를 여러 번 보아도 지루해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두 아이의 반응은 다릅니다. 큰 아이는 항상 목사의 큰 아들을 이해하는 입장이고 작은 아이는 폴을 해하며 심지어 영화에서 별 잘못도 없는 큰 아들을 나쁘다고까지 표현합니다. 나름대로 두 아이가 세계관이 다른 것이지요.


두 아이가 흐르는 강물처럼 세상의 흐름을 존중하며 동시에 새로운 곳을 향하여 자신 있게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영화에 나왔던 가족적 비극은 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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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ple 2006-04-25 10:58:21(AM)
이 영화 빌려 봐야 겠네요^^ 지루할 것 같아서 안봤는데.. 고인물은 썩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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