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대의 동양고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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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의 격랑 속에서

 

한 사람이 그가 지금껏 살아 온 세상의 위기와 혼란에 직면해 있다. 마셔도 마셔도 갈증을 해소해 주지 못하던우물물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 보며 한숨짓던 사마리아여인이어도 좋고 구리거울을 바라보며 참회하던 시인 윤동주여도 좋다.

몸은 같은 몸일진데 이 어지러운 세상의 한 없는 고난과 고통 속에서, 정신은 이제 이전의 것이 될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무엇을 되돌려 생각할 수 있을 것이며, 또 무엇을 앞날에 꿈 꿀 수 있을 것인가. 아, 좌절한 자의 내일은 무엇이 될 것인가. 다시는 좌절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기다리며 말 할 것인가. 과연 새사람을 입을 가능성은 있는가.

명나라의 멸망과 청나라 만주족의 새로운 왕조 앞에서, 그 무엇을 기다리며(待訪), 초라해진 자신의 왕조(明夷)를 반성한 글이 바로 황종희(黃宗羲)의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이다.

 

황종희는 자신이 살아온 세상의 전부였던 왕조가 끝내 이민족에게 정복당하고, 이제 더 이상 현세적인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 채 이 모든 기구한 역사의 운명을 초래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명나라 말기의 부패한 정치현실을 개혁하고자 했던 동림당(東林黨)에 참가한 것으로 인해 옥사했으며, 그 자신 역시 온갖 방법으로 환관들의 폐정을 타파하려한 동시에 만주족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했건만, 결국은 모든 것을 상실할 수밖에 없게 된 까닭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개개인이 지키려고 해도 지킬 수 없었던 자신의 시대적 한계상황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서 우리는 비도덕적 사회를 읽을 줄 알았던 니버의 체취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미래의 그 무엇, 혹은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그는 그릇된 관습과 율법의 시대를 비판하고 있다.

 

2. 이상사회를 꿈꾸며

 

명나라 말기의 실정과 청나라 이민족의 지배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 황종희는 ‘명이대방록’에서 중국의 전통문화가 안고 있는 결점을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이상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이 책 속에서 전개된 그의 논리는 실로 ‘맹자(孟子)’가 왕도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것만큼이나 파격적이고 날카로운 것이었다.

그는 중국 전통문화를 모두 13개 항목으로 나누어 군주론, 신하론, 법제론, 학교론, 전제론, 병제론, 재정론, 환관론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해 언급하면서 총 21장으로 이 책을 구성하였다. 특히 이 중에서 정치체제에 대한 비판은 매우 날카로워서, 군주 및 신하의 전통적 관계를 완전히 다른 각도로 해석하였다.

 

그는 중국전통문화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측면을 고루 분석하였는데, 당시의 폐단이 지난 역사적 배경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잘못 전승되었는지를 날카롭게 비판함으로써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이상적 사회의 모범을 제시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전통적 군주제 비판

 

중국의 과거 전통적 정치 체제에 대한 황종희의 비판은 이 책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책의 구성상에 있어서도 군주론에 해당하는 ‘원군(原君)’, 신하론에 해당하는 ‘원신(原臣)’, 법제론에 해당하는 ‘원법(原法)’이 차례로 서두를 장식하고 있다. 이 세 항목에서만 ‘원(原)’이란 용어가 쓰이고 있는데. 그 의미는 ‘근본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정치체제에 대한 황종희의 반성이 의미 깊은 것을 알려준다.

그는 이 책의 첫 항목인 ‘원군(原君)’은 과거 군주제에 대한 도전적인 발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가 살아왔던 시대까지의 보편적인 관념은 모두 ‘군주가 천하의 주인이고, 천하는 군주의 손님’이라는 것이었으며, 이러한 관념에 바탕하여 군주제가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야말로 세상에 가장 큰 잘못이라고 역설한다. 원래 세상에 정해진 군주란 없는 것이며, 군주는 다만 천하를 이롭게 하기 위해 하나의 일꾼으로 추대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옛날 세상에서는 ‘천하가 주인이고, 군주가 손님’이었기 때문에 ‘자기 한 사람의 이익을 이익으로 삼지 않고, 천하로 하여금 그 이익을 받게 하고, 자기 한 사람의 해를 해로 생각하지 않고, 천하로 하여금 그 해를 면하게 하는 것’이 참다운 군주의 직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세의 군주들은 ‘천하의 이익을 모두 차지하고 천하의 해는 모두 남에게 돌리고도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며’, ‘천하를 얻은 후에도 천하의 사람들의 골수를 두들겨 쪼개고 천하의 자녀도 흩어지게 하고도,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 이것은 내 재산에서 나온 이자라고 말하는’ 자들이 되었다. 그래서 황종희는 극단적인 선언을 한다.

“천하에 큰 해를 끼치는 것은 군주뿐이구나”

그리하여 그는 군주가 제 직분을 분명하게 지킬 것을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과거에 행해진 봉전사회의 많은 잘못들의 뿌리가 군주들의 무도한 개인적 욕심에서 비롯되었음을 지적하였다.

 

“신하는 군주의 師友”

‘원군’에서 군주와 천하백성의 관계를 재정립한 것에 이어, 황종희는 ‘원신(原臣)’에서 역시 기존의 군신관계의 의례적 틀을 혁파한다. 그는 “우리가 나가서 벼슬을 하는 것은 처하를 위한 것이지, 군주를 위한 것은 아니다. 만인을 위한 것이지 일성(一姓)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하였다. 과거에는 모든 신하된 사람들이 한 군주를 위해, 마치 집안 종처럼 봉사하면서, 군주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든 간에 그에게 복종하고 충성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신하가 천하의 주인인 백성을 제쳐두고, 오히려 백성의 이익을 독접하는 군주의 뜻만을 섬기는 것은 신하가 할 일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신하가 진정으로 세상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만민’에 대한 일이다. 황종희가 생각하는 군신관계는 수직적인 고나계가 아니라 오히려 천하의 만민을 도우기 위한 수평적 협력관계에 가깝다. 그래서 “우리에게 천하라는 책임이 없다면 우리는 군주에 대하여 상광이 없는 사람이다. 나아가 군주를 섬길 때에 천하의 일을 일삼지 않으면, 우리는 군주의 노비(奴婢)이다. 그러나 천하의 일을 일삼으면, 우리는 군주의 사우(師友)인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어떤 시대 어떤 나라의 정치체제라도 반드시 귀감으로 삼아야 할 말이 아닐 수 없다.

정치 체제를 구성하는 군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의 상관관계를 우선적으로 재정립함으로써, 황종희는 그가 꿈꾸는 이상사회에서의 구성원들의 조화를 기초하였다.

“법의 기초는 ‘만민평등’”

‘원법(原法)’에서 정치제제를 규제하는 법제에 대해서도 그는 ‘만민평등’의 정신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가 과거의 이상사회로 상정하고 있는 ‘삼대(三代, 夏⦁殷⦁周시대)’의 법은 천하를 위한 법이었으나, 후세의 법은 일가(一家)의 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대의 법은 ‘천하를 천하 속에’ 두었으나, 후세의 법은 ‘천하를 광주리 안에’ 넣어 두었다. 따라서 삼대 시대에는 조정을 귀하게 여기거나 재야를 천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법을 가능한 많이 정하지 않을수록 좋다고 생각하여 ‘무법(無法)의 법’이 될 수 있었다. 반면 후세에는 군주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천하 만민의 이익을 억제하기 위하여 세세한 법까지 모두 간섭하게 되어, 이른바 ‘비법(非法)의 법’이 된 것이다.

황종희는 봉건사회에서의 법제는 모두 군주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보았는데, 그 가장 커다란 이유는 앞의 논지와 마찬가지로 만민평등의 정신을 기초로 한 민주사상에 위배되기 때문이었다. 그의 정치론의 모든 핵심은 이러한 만민공영의 민주사상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그는 ‘중국의 루소’로 불리면서,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전개한 민주사상과 비교되고 있는 것이다.

‘명이대방록’은 이러한 정치적 개혁사상을 근거로 하여, 경제문제에 있어서도 고대의 ‘정전제(井田制)’와 같은 토지분배방식을 원용하면서, 명말청초에 극심했던 농민반란전쟁의 해결책에 대해서도 민주평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황종희는 중국의 모든 전통문화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폐습은 과거에 지배적 역할을 해온 봉거군주제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 및 복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결코 그의 생각은 과거의 것을 없애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을 오늘의 현실에 투영함으로써, 미래에는 보다 새로운 세상을 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희망에 있었다고 보여진다.

 

3. 맺음말

 

개인마다 자신의 시대 속에서 고난을 극복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다 또한 한 개인조차 시간에 따라 혹은 상황에 따라 그 방법에 있어서 또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방법을 어떻게 선택하든 간에, 그 방법의 선택은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들과의 장(場)을 벗어날 수 없으며, 그 실존적 공동의식이야말로 모든 사랑의 출발점일 것이다.

황종희는 이미 멸망해가는 왕조를 다시 세우려다 결국 좌절했다. 그러나 그는 그 좌절의 현재태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나아가 그 좌절이 진정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내일은 또 무엇을 꿈꾸고 희망해야 하는지를 자신에게 물었다. 그 반성으로 인해 자신을 포함한 모든 중국인들의 과거를 반성하게 되었고, 그 치열한 ‘회개’를 통해서 비로소 ‘명이대방록’은 중국 역사의 반성적 지침서가 되었다.

오늘날의 한국사호를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무엇을 혹은 어떤 것을 기다리며 생각할 수 있을까. 황종희의 명이대방록은 우리의 질문이 이미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 작자 소개

황종희(黃宗羲, 1610~1695)

명말청초의 학자이며 자(字)는 태충(太沖)이고, 호(號)는 이주(梨洲) 또는 남뢰(南雷)이다. 절강(浙江)의 余姚사람이다. 아버지 황존태(黃尊泰)는 동림당(東林黨)의 사람이었는데 魏忠賢이 동림당을 탄압할 때 죽었다. 그는 崇禎 年間에 동림당의 희생자의 자제들을 모아 당시의 청년지식인들의 祰社인 復社에 참가하여, 정국의 추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명이 멸망한 후 향리의 자제들을 모아서 의용읰 관조직하고, 만주의 침략에 저항했으며, 지하운동에 참여해서 지명수배를 받아 생명의 위험을 여러번 만났다. 명 왕조를 회복할 가망이 끊기자 미래의 왕조를 위한 정치체제를 구상한 것이 유명한 ‘명이대방록’이다. 이 책은 통렬하게 군주를 비판하고 민주주의적 사상을 지니고 있어, 그를 윘 유명한 ‘명이대비견하게 하였다. 1678년 博學鴻儒에 추천되어 명사(明史)편찬사업의 협력을 요청받았으나 사퇴하고 아들 黃百家와 제자 萬斯同을 협력하게 했다

[출처] 명이대방록|작성자 theriverru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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