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대의 동양고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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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 29장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천하를 취하려고 욕심을 부려 무엇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을 보면 나는 그일이 불가능함을 본다.

천하는 신기한 물건이어서 억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억지로 하는 자는 망치고 잡으려고 하는 자는 놓칠 뿐이다.

사물은 앞서가는 것도 있고 뒤따라 가는 것도 있고

들여 마시는 것이 있으면 내뿜는 것도 있고

강한 것이 있으면 꺾이는 것이 있고

길러주는 것도 무너뜨리는 것도 있다.

성인은 극단적인 것과 사치스러운 것과 교만스러운 것을 멀리한다.


마지막 구절의 세 가지 피할 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세 가지를 말합니다. 극단은 이념적이고 정치적인 견해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에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만한 여유도 포함됩니다. 자유란 일체의 구속을 거부하는 것인데 자신의 표현의 자유에는 자유가 있고 다른 이의 표현의 자유에는 없다고 하는 것은 극단일 뿐입니다.

사치는 경제적인 것을 말합니다. 누구나가 누리고 싶은 만큼 누릴 권리는 있지만 그것에 의해 높고 낮음을 나누고 너와 나를 나눈다면 그것은 물질에 사로잡힌 인생입니다. 사치를 배격하는 일은 무조건적인 검소함도 아니고 인색함도 아닙니다. 그것에 잡히지 않음입니다.


키요자와 만시의 에세이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이 나옵니다.


"생선을 즐겨 먹지만 생선이 없다 해서 불평하지 않는다. 재물을 즐기되 그 모든 재물이 없어졌다 해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높은 벼슬자리에 앉기도 하지만, 그 자리에서 물러날 때 아까워하지 않는다. 지식을 탐구하되 남보다 더 안다 해서 뽐내지 않고 남보다 덜 안다 해서 주눅들지 않는다. 으리으리한 저택에 살 수도 있다. 그러나 산 속에서 밤하늘 별을 보며 잠자리에 드는 것을 경멸하지 않는다. 좋은 옷을 입지만 그 옷이 더러워지고 찢어져도 태연하다. 이와 같은 품성을 지녔기에 신심을 얻은 사람은 자유인이다. 아무 것도 그를 가두거나 가로막지 못한다."


사치의 반대말은 자족하는 삶입니다. 자족의 동의어는 결코 가난한 삶이 아닙니다. 자족은 우리가 능력이 된다면 누릴 수 있는 자유를 줍니다. 그러나 그것에 결코 매여살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빌립보 4:11-13)


교만스러운 것은 인간의 품성에 관계된 것입니다. 섬기는 삶보다는 내세우고 대접받는 삶은 우리를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만듭니다. 


이 세 가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인생의 가치가 좌우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관계를 잘 조절하지 못하고 극단으로 흐릅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 처음 부딪혔던 시험도 바로 이것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천하를 소유하고(정치)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먹이고(경제) 자신이 히니님의 아들인지 확인해 보는 것 은 모두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극단적인 방법으로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어나가길 원치 않았습니다. (마태 4:1-12)


그분은 극단을 피하고 삶의 자리 속으로 들어가 이웃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때 그분에게 천하를 소유하는 것보다,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는 것보다, 천사들이 수종드는 것보다 더 큰 능력이 생겨났습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세계와 역사는 내 마음 먹은대로 움직일 수 있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닙니다. 세상은 소유될 수 없는 것이고 내가 항상 앞서가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하에 자신을 맡겨갈 때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합한 사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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