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대의 동양고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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企者不立(기자불립) 발돋움을 하면 제대로 오래 설 수가 없고

跨者不行(과자불행) 가랑이를 버리고 걷는 자는 오래 걸을 수 없다.

自見者不明(자견자불명) 스스로 드러내는 자는 밝게 나타나지 못하고

自是者不彰(자시자불창)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는 빛나지 아니하고

自伐者無功(자벌자무공) 스스로 자랑하는 자는 공적이 없고

自矜者不長(자긍자불장) 스스로 과시하는 자는 으뜸이 되지 못한다

其在道也(기재도야) 그러한 것들은 도에 있어서는

曰餘食췌行(왈여식췌헹) 음식찌꺼기요 군더더기일 뿐이다.

物或惡之(물혹악지)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싫어할 것이다.

故有道者不處(고유도자불처) 그러므로 도를 아는 사람은 그러한 일을 하지 않는다.

(도덕경 24장)

 

  예수의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은 훗날 하나님의 왕국에서 예수님의 좌우의 자리를 달라고 요구했다가 질책을 당합니다. 한술 더 떠 그 어머니조차 그것을 요구합니다. 오늘 도덕경 24장은 야

고보와 요한을 향한 이야기 같습니다.


  높아지려고 하는 사람, 결코 높아질 수 없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높아진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출세욕에 가득찬 사람은 분명이 다른 사람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사람, 분명히 먼저 목표에 도달합니다. 서구의 리더십 이론은 리더가 되기 위해 낮아지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그런 의도는 아니겠지만 높아지기 위해 의도적으로 낮아질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덕경은 다릅니다. 낮은 것은 그냥 영원히 낮은 것입니다. 높은 것은 정말 높은 것입니다. 그런데 높고 빠른 것이 정말 좋은 것이냐고 되묻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얻어진 것은 찌꺼기 인생일 뿐이라는 것이지요.

 

  찌꺼기는 우리 안 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찌꺼기로 가득찬 사람들이 오늘날 사회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잘 살펴 보십시오, 정말 세운 공이 있었습니까? 그들은 오래전 신동엽시인이 이야기 했듯이 껍데기일 뿐이지요.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기로운 흙가슴만 남고 모든 쇠붙이는 가라”


  4.19 이후 어쩌면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경험했을 “정신적 근대”의 공간에서 근대적 가치를 일찌감치 껍데기로 표현한 시인의 혜안이 놀라울 뿐입니다.


  멀리 보려고 까치발을 했던 키작은 삭개오가 있습니다. 그는 까치발로도 안되어서 나무 위에 올라갑니다. 나무위에 올라간 삭개오에게 예수께서는 내려오라고 말합니다. 높은 자리, 작은 키와 같은 것들이 인생에서 군더더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리와 마주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주님은 보여줍니다.  삭개오가 진리와 마주친 자리는 나무 밑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유대 사람이라고 하면서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그분의 뜻을 알며, 율법으로 가르침을 받아서 옳고 그른 것을 분간할 줄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스스로 눈먼 사람의 길잡이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라고 생각합니다. 율법에서 모든 지식과 진리의 근본을 터득하였다고 하면서,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으로 확신합니다." (표준새번역 로마서 2장)


  로마서는 유대인들의 헛된 자랑을 폄하했습니다. 유대인들은 自是者不彰(자시자불창, 스스로 옳다고 하는 자는 빛나지 아니하고)의 진리를 몰랐습니다. 제 눈 먼지 모르고 남의 눈 멀었다고 인도하는 꼴이 가랑이 벌리고 걷는 자들 모습 같습니다. 예수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할 수 없다고요(누가 6장). 


  발빠른 처세술로 살아가던 야곱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발빠르지 못하게 그냥 발뒤꿈치 힘줄을 끊어 놓지 않았습니까? 그는 더 이상 까치발을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가랑이를 벌리고 걸으며 그의 부귀를 자랑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정말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껍데기를 차지하기 위해서 길(道)을 달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리고 근대사의 껍데기들을 국가를 살릴 지도자라고 맹신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껍데기도 보내고 찌꺼기도 버립시다.  버려야 할 것들을 차지하기 위해 피로하게 달려가지도 맙시다. 그 순간  늘 우리 삶 속에 있어 왔던 도가 발견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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