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대의 동양고전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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絶聖棄智, 民利百倍 (절성기지 민리백배)

絶仁棄義, 民復孝慈 (절인기의 민복효자)

絶巧棄利, 盜賊無有 (절교기리 도적무유)

此三者以爲文不足(차삼자이위문부족)

故令有所屬, 見素抱樸, 少私寡欲 (고령유소속 견소포박 소사과욕).


거룩함을 끊고 슬기로움을 버리면 백성의 이익은 백배가 되고

어짐을 끊고 의로움을 버리면 백성이 효도와 자애를 회복하고

기교를 버리고 이로움을 버리면 도적이 없어질 것이다.  


이 세 마디도 여전히 꾸미는 것이라 충분치 않네

그러므로 백성을 귀속시켜야 할 곳이 있으니

소박함을 지향하고 질박함을 품으며

사사로움을 적게하고 욕심을 줄이는 것이네 (도덕경 19장)


세상 속에서 우리를 평안하게 하는 것들이 있고 불안하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평안한 것이 평안하게 느껴지고 불안한 것이 그냥 불안하게 느껴지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평안하게 만드는 것에 가까이 가려고 하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멀리하고 피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변장을 하고 우리에게 올 때 문제가 됩니다. 전쟁을 일으켜 놓곤 평화를 위한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사회의 통념 앞에서 자신의 개성을 꾹 참고 있는 것이 순종이요 화평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노자시대에도 그럴듯하게 보이면서 실제로는 문제를 일으키는 것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노자는 그것을 세 가지로 이야기 합니다.


성지(聖智) 인의(仁義) 교리(巧利) 세 가지입니다. 이것은 문화적 가치의 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성지는 종교적 현존의 가치를, 인의는 윤리적 판단의 가치를 교리는 경제적 노동 가치를 뜻합니다(김형효, 노장사상의 해체적 독법).  그런데 종교는 물질과 영혼을 분리함으로써 백성들의 경제적 이익 추구를 속된 것으로 깎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도 종교 자신은 경제적 이득의 가장 큰 혜택을 본 조직이 되어 버렸습니다. 슬기로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계층에게 독점된 슬기로움은 백성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인의가 무엇입니까? 성지(聖智)를 독점한 사람들이 내세운 도구일 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도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기준은 도덕적이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오늘날도 도덕주의자들은 동성애, 미혼모 등의 문제에 대해 극도의 엄격함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는 실상 그들 자신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생활양식에 적대감을 표출하는 개인적인 것일 뿐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굶주림이나 전쟁의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합니다 (A.C. 그레일링, 미덕과 악덕에 대한 철학사전). 그러다 보니 그들이 아무리 효자(孝慈)와 같은 도덕을 강조해도 듣는 이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정말 지켜져야 할 가치들이 돌아올 수 없을 만큼 멀리 나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기교를 부려 이득을 취하는 행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말은 첫째 줄의 민리백배와 연결됩니다. 위의 두 줄이 지도자들을 향한 것이라면 이 줄은 우리 스스로를 향한 것입니다. 우리 삶의 자리에서도 지나치게 이득을 탐하는 행위가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성인들이 말해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깨달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주변에 소외된 이웃들이 사라지고 도적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듣는 데만 익숙했습니다. 잘 듣는 것도 물론 중요한 것이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된 어떤 “귄위”들의 계몽에 그냥 우리를 맡겨 살았습니다. 그래서 fact와 opinion을 구별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행동은 자신을 속이는 행동입니다 (야고보 1:21). 우리 는 우리 자리를 들고 스스로 걸어가야 합니다(요한 5:8).  


노자는 유가(儒家)의 견해가 그 시대에 진리처럼 여겨지는 것이 안타까워 하면서 이 말을 하고 있지만 노자는 자신의 견해 또한 어떤 꾸밈이나 기교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소박함과 단순함, 사사로움을 적게 하고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 안에 진리가 있습니다. 설명이 덕지 덕지 붙어 있거나 강요하는 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소(素-물감을 들이기 전의 하얀 실)와 박(樸-어떤 것으로 만들어 지기 전의 통나무)은 분리되기 이전의 상태를 말합니다. 나와 너를 나누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이 내 안에 있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에서 하나님과 분리된 나의 견해가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된 나의 견해를 갖고 세상과 역사를 바라 볼 때 우리의 영혼은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 동안 너무 성찰이 부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저 전해오던 이야기, 통념들, 베이컨이 이야기 했던 4가지 우상 속에서 무엇이 진리인지 어떤 삶이 우리를 정말 풍요롭게 하는지 성찰없이 살았습니다. 이제 성찰이 필요한 때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명언처럼 명언처럼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개역개정 갈라디아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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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sign 2006-09-06 12:19:00(PM)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취한 저녁다음에 아침을 맞는 것은...

돌이켜보면 내가 뭘 알고 중얼 거린건지..
내가 나를 보면 컴플렉스의 덩어리임을 압니다.
나만 못한 지식자가 어디있으며 나만 못한 지혜가 어디없겠습니까만, 스스로릐 컴플렉스로 인해 천박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려..
진실로 현명한 자는 입을 다물고 내안에 든생각을 이미 낡은 것으로 보고 항상 새로움으로 채워야 하거늘 항상 부끄러움을 모르고 교만이 내 안에서 춤을추니 이놈을 어찌 죽일꼬..
날마다 새로움을,진리를,타는 목마를으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자유가. 자유가 내게 진실을 주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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