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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Youth http://blog.kcmusa.org/globalyouth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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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6)  – 견고한  여리고성 무너뜨리기 (2)  

  우리 삶에는 피할 수 없고 반드시 함락시켜야만 하는 견고한 여리고성이 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현실 세계에서의 승리'는 여리고성 점령이 성취된 경로를 통하여 이해할 수 있다.  여리고는 가나안의 첫 관문으로써 그곳을 통과하지 않고는 가나안을 정복할 수 없다.  우리도 미국에서 생존하며 하나님 나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러한 여리고성 무너뜨리기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중 문화, 언어, (어떤이 에게는 삼중 언어), 만만치 않은 학교생활, 탐탁지 않은 타민족 학생, 이 모든 것들은 우리가 극복하고 대처해 나가야 할 삶의 여리고 들이다.
  다문화속에서 사는 2세와 1.5세들은 예기치 못한 일들을 당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장애물을 '여호수아처럼' 현실 돌파하며 배우고 믿고 순종함으로 지혜롭게 이겨낼 필요가 있다.  

내가 가는 길이 하나님 허락하시는 길이라면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견뎌야 한다.
  비록 하나님이 주신 굳건한 약속일 지라도 쉽게 저절로 되지 않는다.  그리고 한 순간에 되지 않는다.  급행열차가 아닌 완행열차를 태워 천천히 인도하시기도 한다.  오래 참고 기다리며 인내해야 그 열매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포기하거나 서두르지 말고 인내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믿음으로 걸어가야 한다.

하나님은 여리고성에 있는 가나안 문화를 하나도 남김없이 철저히 진멸하고라 하신다
.
  여리고는 달의 여신을 섬기는, 우상숭배가 만연한 성이었다.  잡신의 문제, 성적 음란의문제, 잔인과 동성연애, 문란한 성 생활등이 가나안 문화 깊숙히 자리잡고 있었다.  문화와 물건들을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게 오염될 터 였다. 하나님은 철저히, 완전히 진멸하라고 했다.  분명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까지 물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절대적 거룩의 방편이 요구된 까닭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거룩한 국가, 백성을 세우는 건국의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그 백성의
  ‘여호와 앞의 순결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안에 있는 가나안 문화를 뿌리째 뽑기를 원하신다.  나의 생활 가운데 완전히 뿌리째 뽑아야 할 나쁜 문화를 진멸하자.  파괴본능을 자극하고 탐닉하고 있는 컴퓨터 게임
, 지나친 채팅, 마약등 내게 있어서의 견고한 여리고성을 무너뜨리자.

Think and do it!
1. 지금 무너뜨려야 할 내면의 여리고성은 무엇인가?
  

2. 전쟁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기에. ‘네 손에 붙였다'는 무슨 의미인가?
3. 우리 앞에 놓인 견고한 여리고성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을까
?
4. 나의 안에 뿌리째 뽑아야 할 가나안 문화는 없는가
?
  있으면 모두 진멸해야 하나? 우리는 우리사회의 문화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5. 과거 불평투성이었던 이스라엘 군대가 어린아이처럼 순종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 삶 속에 적용해 보자
.
6. 전 세계의 위대한 리더들, 성공한 사람들의 한 가지 공통점은 자기가 꼭 이루기 원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 목표를 향하여 무섭도록 놀라운 열정으로 앞으로 밀고 나간다는 점이 다
.
  여호수아도 목표를 세우고 혼신의 힘을 쏟아 그 일에 열정을 쏟았다.  나에게도 이런 뚜렷한 목표와 열정이 있는가?

여호수아 (5)  – 견고한 여리고성 무너뜨리기  (1)

여호수아의 전반부는
  요단을 건너며 여리고성과 아이성  가나안 각 땅을 정복하는 전쟁 영화  같다.  모세가 죽은 후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다.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이 요단강을 건너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겠다고 약속한 땅으로 가라.  곧 광야와 레바논에서부터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헷 족속의 온 땅과 대해(지중해)까지 너의 영지가 되리라”고 약속하신다(1:1-4).   하나님이 약속하셨지만 쉽게 저절로 이루어 지지는 않았다.  약속을 얻기 위해서는 그 땅을 개간하고 땀을 흘리고 비싼 댓가를 치뤄야 한다.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숱한 장애물들을 어떻게 대처하고 극복해 나아갈까? 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 민족에 있어 하나님께서 약속하여 주신 땅은 땅따먹기정도의 일것이다. 가나안 정복의 원동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능과 인도하심이었다.
  그들은 특별한 군사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니다. 당연히 뛰어난 전술력도 없었다.  그런 민족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아가는  믿음의  행렬앞에  요단강을 건너고 가나안 땅의 철옹성 같은  견고한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기적이 펼쳐졌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성령충만한  지혜가 뛰어나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여호수아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그의 뛰어난 노련함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진것이 아니라, 모세 밑에서 40여년을 보고 듣고 몸소 현장속에서 체득한 경험이다.  가나안땅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팔레스틴의 관문이며 전략상의 요지인 여리고성을 함락해야만 했다.  군사 및 교통의 요충지로써 가나안의 중심으로 진입하는 교통의 핵심 지역이었다. 여리고성을 장악해야만 가나안 땅 중심부로 향한 거점을 확보 할 수 있다.  여리고성을 점령하고 점점 더 서쪽을 향함으로 남쪽의 적들과 북쪽의 적들을 분리시킬 수 있다.(6:-9:)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복종함으로써 가나안 정복을 완성하게 된다.  1차 대전 때 영국군의 총수 알렌비 장군도 이 탁월한 전술, 여호수아의 작전을  모방해 팔레스타인을 점령할 수 있었다. 매일 한번씩 성 주위를 행진하라는 것이다.  7명의 제사장이 언약궤 앞에 서서 양각나팔을 불라.  언약궤를 멘 사람들, 제사장들은 7일동안 일곱번 돌라.  


그리고 약각 나팔을 불때 길게 불어라.
  나팔소리를 듣거든, 온 백성이 각기 앞으로 올라가라는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린다. 군인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명령이었다. 여호수아는 즉시 지체치 아니하고 순종했다. 앞이 칠흑같이 어둡고 막막해 보이는 상황 이었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그 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는 지도자 여호수아의 모습이다. 그와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오늘날 나와 함께하심을 안다.  엄청난 장애물과 절박한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도 약속의 말씀을 가지고 싸워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기대하며 확인 할 수 있다.

여호수아 (4) -  밥파와 메뚜기파로 갈라진 이유는? (2)

마지막으로, 메뚜기파와 밥파의 차이점은 열등감과 자신감 때문이다.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다고 여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메뚜기처럼 초라하고 열등한 존재로 생각한 것이다.  완벽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그들은 전쟁을 치르기도 전에 완패한 것이나 다름 없었다.  열등감은 다른 사람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느낌으로 누구에게나 있는 감정이다.  그러나 열등감이 지나치면 문제가 되고 병이 된다.  메뚜기 컴플렉스를 가진자들은 자신의 장점은 보지 않고 약점에 촛점을 둔다.  자신의 잠재력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할 수 없는 일만 생각한다.  
        
특히 청소년시기에는 민감함으로 이런 열등감이 눈에 띄인다.  1.5세들은 2세에 비하여 언어가 부족하다. 미국에 비하면 외모와 신장도 열세다.  그래서 특히 1.5세 가운데는 머리에다 노란칠도 해보고 빨간칠도 해보며 유사성을 찾고자 안간힘도 써본다.  2세는 2세대로 열등감이 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다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그것이 지나칠 때이다.  

본문에서 보면 이 열등감은 단순한 열등감으로 끝나지 않는다.그  파급효과가 큰 것을 본다.   결국 공동체를 좌절의 깊은 수렁으로 빠뜨리게 한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부정적인 정탐꾼의 말 때문에 이스라엘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든다.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다.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만 열 번이나 그리한다.   우리에게도 똑같은 면이 있지 않는가?  조금만 우리 뜻대로 되지 않으면 불평하고 투정을 잘 부리지 않는가?  우리 또한 이웃을 향해, 부모님에게,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분노를 드러낸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불평과 원망의 뿌리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는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여기는 열등감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10명은 열등감에 사로 잡혔지만 2명은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졌을까?
자신감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재를 잊으면 장애물은 크게 보이고 두려워하게 된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편에 계신 하나님이 어떤 문제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거인보다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우리모두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이 우리 삶 속에 개입하셔서 문제를 능히 이기게 하실 수 있는 분을 바라보자.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께서 주시는 자신감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자.  
        
밥파인 여호수아처럼 믿음의 안경을 쓰자. 

하나님의 안목으로 땅을 보고 환경을보자.

하나님의 안목으로 사람을 보고, 사건을 보며 해석하고 반응하자.  

다른 가치관들을 나의 유익대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리가 안고 있는 뿌리깊은 열등감을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담대히 나아가자. 어떠한 환경이든지 믿음의 눈으로 보고 문제 뒤에 계시는 거대하신 하나님만 보자.  메뚜기파가 아닌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승리의 밥파가 되자. 우리 모두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믿음의 용사가 되자.
  
Think and do it!
1.  미국땅에서 승리의 밥파인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가 필요한가?
2. 나에게 10명의 정탐꾼들처럼 불신앙이 있다면 어떻게 시각교정을 해야 하나?
3. 우리 모두에게는 정도차이일뿐 누구나 열등감이 있다. 어떻게 극복할까?